[뉴스룸에서]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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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의 익명성에 대해 친구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친구의 지인이 강력사건 피해자로 한창 언론에 보도되던 때였다.
친구는 뭇사람들이 지인을 '피해자 A씨'라고 부르는 걸 힘들어했다.
언론 보도에서 익명성은 피해자를 보호하려는 차원에서 선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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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의 익명성에 대해 친구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친구의 지인이 강력사건 피해자로 한창 언론에 보도되던 때였다. 거의 모든 언론이 피해자를 ‘A씨’ 또는 ‘ㄱ씨’라고 적었다. ‘A씨’라는 표현은 전혀 다른 종류의 기사에도 등장했다. 사건의 피해자도, 연예인 가십 기사의 주인공도 모두 A씨였다. 친구는 뭇사람들이 지인을 ‘피해자 A씨’라고 부르는 걸 힘들어했다. 생명력을 완전히 꺼뜨리는 표현인 것 같다고도 했다.
연령대, 성별 그리고 A씨. 그 사건에서 피해자를 설명하는 단어는 그게 전부였다. 쉽게 언급되고, 금세 잊히고, 누구든 될 수 있는 A씨. 한 사람을 A씨로 부르게 되면 많은 것이 누락된다. 사건 그리고 사건을 설명하기 위한 맥락만 남는다. 그마저도 충분하지 않을 때가 많다. 피해자 A씨라는 표현 대신 완성된 형태의 이름을 쓰면 많은 게 달라진다. 심지어 가명일지라도 그렇다. 실존하던 사람이 실제로 겪은 비극이라는 게 실감 난다. 그래서 친구는 기사를 읽을 때마다 A씨를 지인의 이름으로 고쳐 읽었다.
언론 보도에서 익명성은 피해자를 보호하려는 차원에서 선택된다. 하지만 익명성을 지키다 보면 ‘사건 너머에 한 사람이 살아있었다’는 사실로부터 멀어지게 된다. ‘A씨’라는 표현은 최소한의 상상력조차 말소시킨다. 온기 넘치는 삶이 있었고, 누군가의 가족이자 친구였고, 저마다 특별한 인생을 살고 있었다는 사실을 떠올리지 못하게 만든다.
최근 두 노동자의 사망 사고가 잊고 있던 이날의 대화를 다시 끌어올렸다. SPC 샤니 공장 직원의 작업 중 사망과 코스트코 카트 노동자의 폭염 속 사망이 익명성과 함께 ‘과거의 사건’으로 떠밀려가는 듯해서다. 허망하게 생을 마쳐야 했던 두 이웃에 대해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서 이 글을 쓴다. 기록으로써 이들을 기억하고자 한다.
지난 8일 경기도 성남시 SPC 샤니 제빵공장에서 사고를 당한 직원은 수술을 받고 회복을 기다렸지만 이틀 뒤 숨졌다. 이분에게도 이름이 부여되지 않았다. 취재가 간단치 않아 피해자에 대한 정보도 거의 없다. 50대이고, 여성이고, 10년쯤 샤니 공장에서 근무했다는 정도의 정보가 알려졌을 뿐이다.
평범하게 하루를 열었을 이분의 마지막 출근길을 상상해 본다. 살아 숨 쉬던 한 사람으로 이분을 기억했으면 싶어서다. 바쁘게 집을 나서면서 되돌아오지 못할 거라는 생각은 한시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언제나처럼 평범한 출근길이었으리라. 점심시간에는 동료들과 휴가 계획을 나누고, 10년 뒤엔 어떻게 살지 그려봤을지도 모른다. 퇴근길 마트에 들러서 삼계탕 거리를 사야겠다고 마음먹었을 수도 있다. 모든 계획은 그러나 무위로 돌아갔다.
최고기온이 35도에 이른 6월 19일 경기도 하남시 코스트코에서 쇼핑카트를 정리하던 29세 김동호씨는 ‘폐색전증 및 온열에 의한 과도한 탈수’로 숨졌다. 동호씨는 카트를 관리하며 하루에 많게는 26㎞ 거리를 4만3000보씩 걷기도 했다. 폭염에 쉬지도 못하며 무거운 철제 카트를 끌고 다녔다.
주차장 한쪽에서 홀로 생을 마감한 동호씨는 숨진 뒤에도 코스트코의 사과 한마디를 제대로 받지 못했다. 그래서 이 사고는 아직 수습되지 않았다. 동호씨도 처음엔 익명의 A씨였다. 수습이 길어지면서 이름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름을 찾으며 가족이 있고, 친구가 있고, 꿈이 있던 그의 삶이 황급히 끝났다는 사실이 절감됐다. 이 비극은 코스트코가 진심으로 사과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하기까지 기억돼야 한다. 그때까지 많은 이들이 김동호씨를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문수정 산업2부 차장 thursda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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