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 없는 교사, 학부모 타깃 되면…'아동학대 누명' 2년 시달린다 [강주안 논설위원이 간다]

강주안 2023. 8. 14. 0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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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성 신고에 나락으로 떨어지는 선생님〉

아동학대방지법 24조에 따라 경찰 수사 뒤 검찰 송치 의무
학생 지도하다 발생한 문제에도 ‘아동학대’ 남발은 부적절
법원서 무죄 받아도 피해 극심… “교육청 거친 뒤 수사해야”

수도권의 한 초등학교에서 예능을 지도하는 선생님 A씨는 2019년 다른 아이의 수업을 방해하는 아이를 책상에 엎드려 있게 했다는 등의 이유로 아동학대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재판에 넘겨졌다. 법원은 형사처벌 대상이 아니라며 무죄를 선고했지만 2심·3심까지 계속돼 대법원에서 최근 무죄가 확정되기까지 2년 넘는 시간이 걸렸다.
현행 제도가 빚어낸 비극이다. 교사가 별 잘못이 없어도 아이나 학부모가 ‘정신적 학대’를 당했다며 신고하면 ‘아동학대 피의자’가 돼 고통스러운 시간을 감당해야 한다. 교사나 교원단체는 물론 수사기관에서조차 말이 안 되는 법규라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12일 오후 서울 종각역 인근에서 교사 3만여명이 서울 서이초등학교 교사의 죽음을 추모하고 교육권 보장을 요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비가 오는 가운데 열린 이날 집회에서 교사노동조합연맹 등 6개 교원단체는 “무분별한 아동학대 신고로부터 교원을 보호할 수 있도록 초·중등교육법 등 관련 법안을 즉각 개정하라”고 주장했다. [연합뉴스]

경찰관 대화 중에도 학부모 문자


지난 10일 오후 1시 30분쯤 수도권의 한 경찰서를 찾아갔다. 교사의 아동학대 사건 수사 경험이 많은 한 수사관은 “교사가 아동학대로 신고나 고소를 당하면 일단 조사를 해야 한다”며 “불러서 조사하는 순간 선생님은 법적으로 아동학대 피의자가 된다”고 말했다.
문제는 대다수 신고나 고소 건이 무혐의로 결론 난다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경찰은 사건을 종결할 수 없다.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때문이다. 이 법 24조는 ‘사법경찰관은 아동학대범죄를 신속히 수사하여 사건을 검사에게 송치하여야 한다’고 규정한다. 교사가 ‘정신적 학대’를 했다고 신고당하면 죄가 되든 안 되든 경찰은 수사를 마친 뒤 검찰에 보내야 한다.
교사 수사에 관해 얘기하는 사이 수사관의 휴대전화로 문자 메시지가 계속 날아들었다. 무슨 문자냐고 묻자 “교사 고발 건을 수사한 뒤 무혐의로 검찰에 송치하자 학부모가 항의 문자를 계속 보내는 것”이라고 했다.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이 장난하다가 한 명이 다쳤는데 다친 학생의 부모가 상대 아이와 관련해 갖가지 문제를 제기하더니 급기야 담임교사를 아동학대 혐의로 신고한 사건이라고 했다.

급증하는 교사 ‘아동학대’ 신고


지난달 18일 학교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서울 서이초등학교 1학년 담임선생님이 떠올랐다. 이 교사도 학생들끼리 다투다 한 아이가 연필로 머리에 상처를 입은 사건 때문에 고통을 받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서이초 비극이 터진 뒤 교사노동조합연맹이 취합한 피해 사례와 교사가 아동학대 혐의로 신고돼 재판을 받고 무죄가 선고된 판례를 찾아보니 비슷한 경우가 부지기수다. 학부모 때문에 정신과 치료를 받은 교사가 한두 명이 아니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에 따르면 교원의 아동학대 사건은 2018년 220건에서 2022는 547건으로 두 배 넘게(148.6%) 늘었다. 교사에 대한 아동학대 신고와 고소가 급증한 것이다.
교권 논란을 촉발한 서울 서이초등학교를 지난 8일 오후 7시쯤 돌아봤다. 학교 주변이 겹겹의 조화로 둘러싸였다. 교문 앞에 서 있는 ‘끝까지 함께 하겠습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전국 교사 일동’ 명의의 조화를 제외하곤 추모 문구 리본이 전부 잘린 상태다. 아직 추모객 방문을 허용하고 있지만, 선생님이 마지막으로 근무했던 교실 외벽 앞을 제외하곤 추모와 관련한 쪽지와 조화가 전부 사라졌다. 선생님이 학생들을 가르쳤던 교실은 창을 블라인드로 가려 안을 들여다보기 힘들었다. 좁은 틈으로 보니 교실 앞쪽에 근조 깃발이 눈에 띄고 교탁엔 국화꽃 몇 송이가 놓여있다.

날이 어두워지자 교문 입구에선 추모 공간의 불빛조차 잘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발걸음도 뜸했다. 오후 7시 30분이 지나면서 서울과 경기도에서 근무하는 선생님들이 한두 명씩 찾아와 추모했다. 교사들은 주변에서 비슷한 일로 힘들어하는 동료를 봤다고 했다. 특히 “선생님에게 ‘아동학대’라고 낙인을 찍으면 삶 전체가 무너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12일 오후 서울 종각역 인근에서 집회를 연 교사노동조합연맹 등 교원 6단체는 “무분별한 아동학대 신고로부터 교원을 보호할 수 있도록 초·중등교육법 등 관련 법안을 즉각 개정하라”고 요구했다. 황수진 교사노조 부대변인은 “증거도 없이 수사가 시작되는데 무죄라는 것을 교사가 입증해야 한다”며 “유죄 추정이 적용되는 유일한 법”이라고 주장했다.


교사 ‘정신적 학대’ 신고도 긴급 출동


교사 고발 사건을 많이 접하는 사람들은 공통으로 ‘아동학대’라는 용어가 지극히 부적절하다고 지적한다. 학교에서 학생을 지도하다 발생하는 일에 ‘아동학대’라는 죄명을 붙이는 게 말이 되느냐는 것이다.
명예퇴직을 앞둔 교사의 아동학대 사건 변론을 맡았던 변호사 B씨는 ‘아동학대 피고인’이 된 교사의 분노와 허탈감을 설명했다. B변호사는 “만에 하나 유죄가 나오면 연금 등 불이익이 있으니 학생 측과 합의하면 어떻겠냐고 제안해봤지만, 선생님이 완강히 거절했다”고 말했다. 무죄가 확정될 때까지 3년간 정신적 고통을 받았고 교사의 피해는 회복할 방법이 없었다. B변호사는 “교사를 고소해놓고 학생 측은 경찰 조사도 안 받으면서 시간을 끈다”며 “경찰이 조사를 못 해 종결하겠다고 하면 그제야 ‘조사받겠다’는 식이어서 선생님의 고통만 길어진다”고 설명했다.
경찰 관계자는 “훈육이 명백한 사안도 신고나 고발이 들어오면 선생님을 아동학대 피의자로 입건해야 하는 현실”이라고 말한다. 교사에 대한 아동학대 신고가 들어가면 ‘코드 0’이나 ‘코드 1’ 등 최고 수준으로 대응하는 방식도 재고가 필요하다. 선생님이 학교에서 지도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는 촌각을 다툴 사안이 아닌데도 긴급 출동한다. 경찰관이 갑자기 나타나면 교사는 충격을 받게 된다.
아동학대 신고를 당한 교사가 조사받는 진술 녹화실을 가봤다. 방에 테이블이 하나 놓여있고 프린터와 컴퓨터가 설치돼있다. 교사 자리에 앉아 보니 마주 앉은 수사관 뒤로 커다란 유리가 보인다. 여기선 유리 너머를 볼 수 없지만, 반대편에선 이곳을 볼 수 있다. 교사의 당혹감이 그려진다.

맘 카페 올리고 학부모끼리 짜고


일부 학부모는 서로 짜고 교사를 궁지로 몬다. 변호사 B씨는 “학부모가 친한 학부모를 통해 다른 학생의 진술을 추가로 제출하는 바람에 굉장히 힘들었다”며 “이 진술이 사실이 아님을 밝혀내 무죄는 받았지만 이미 선생님은 명예가 실추했다”고 말했다. 최근 경찰에서 무혐의 판단을 받은 교사 D씨는 “법적 판단이 나오기도 전에 학부모가 맘 카페에 일방적인 주장을 올렸다”며 “차라리 나에게 보디캠을 달아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서정일 광양교육청 위센터 전문상담교사는 “작년에도 학부모에게 시달리던 선생님이 사직한 일이 있었다”며 “사명감으로 대안학교를 자원한 선생님이 아동학대 고소를 당해 학교를 떠나는 안타까운 일도 벌어진다”고 했다.

교장 도움 없이 교사 혼자 감당


학부모의 타깃이 된 교사가 혼자 모든 걸 감당하는 것도 문제다. 아동학대 피의자가 됐다가 최근 무혐의가 결정된 교사 C씨는 “학부모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동안 너무 힘들었는데 교장 선생님 등 누구에게도 도움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정신적 고통이 커서 교직을 그만두려 했는데 다른 학교로 전학 간 제자가 ‘선생님이 보고 싶었다’며 찾아왔다”면서 “이 아이를 보는 순간 참아왔던 울음이 터졌고, 버텨보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미국에 체류 중인 김예원 장애인권법센터 변호사는 페이스북에 “(미국에서도) 진상 보호자가 선생 얼굴을 보겠다고 학교에 찾아오는 경우도 있긴 한데, 그 자리에 교장은 꼭 동석하여 선생님 보호하면서 민원을 해결한다”고 말했다.
김후곤 전 서울고검장은 “학부모가 교사를 고발할 때는 교육청 등에서 일차적으로 중재를 해서 함부로 선생님을 고발하지 못하게 하는 법적 솔루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아동학대’ 죄명에 대해선 “무혐의를 받더라도 아동학대죄로 조사받았다는 사실만으로 의심의 눈초리를 받을 수 있다”며 “선생님에 대해선 죄명을 신중하게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교사 아동학대 수사 전에 교육청 판단 받아야"


이태규 의원

국회 교육위원회 국민의힘 간사인 이태규(사진) 의원은 13일 “교권이 짓밟혀 엉망이 된 데는 소극적으로 대응해온 정치권에도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교권 보호를 강화한 초·중등교육법 등 개정안을 지난 5월 발의했다.

Q : 개정안의 핵심은.

A : 교사의 정당한 학생 지도 부분에 대해선 아동학대로 보지 않는다

Q : 현행법의 문제는 뭔가.

A : 일부 학부모가 법을 남용해 무조건 고소·고발해버리면 교사를 직위해제하니까 교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법원에서 무죄 판결이 날 때까지 오랜 시간 동안 고통에 빠져있고 무죄를 받아도 엄청난 상처가 남는다.

Q : 제시한 대안의 골자는.

A : 학부모가 고소해도 수사기관이 나서기 전에 먼저 교육청 의견을 듣도록 한다. 수사 여부를 결정할 때까진 교원의 신분을 철저히 보장한다.

Q : 아동학대라는 죄명에 반감이 큰데.

A : 학부모가 고소해도 수사 전에 아동학대가 아니라는 1차 판정을 받을 경우 수사를 하지 않으면 된다.

Q : 교사 혼자 고통을 감당하는 문제는.

A : 악성 민원은 교장·교감 책임 아래 대응해야 한다. 일부 부모는 교사를 ‘내 새끼’를 위한 하나의 도구로 생각한다. 교사 개인에게 떠넘기면 안 된다.

강주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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