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필 간판스타, 한국 어린이들에 레슨 “재미가 첫째”
안드레아스 오텐잠머(34)의 프로필은 어딘지 비현실적이다. 오스트리아 태생인 그는 클라리넷을 14세에 처음 배웠다. 그런데 시작한 지 8년 만인 22세에 베를린 필하모닉의 수석 주자로 뽑혔다. 당시 미국 하버드대 신입생이었던 그는 베를린필에 오게 되면서 학교를 그만뒀다.
가족마저 놀랍다. 아버지 에른스트는 빈 필하모닉의 이전 수석이었고, 형 다니엘은 현재 빈 필하모닉의 수석이다. 안드레아스 오텐잠머는 첼로로 음악을 시작해 피아노를 치다 클라리넷으로 바꿨다. 지금은 베를린필의 간판 스타이자 세계의 시선을 받는 음악가다.
그런 그가 한국의 어린 클라리네티스트들 앞에 섰다. 지난 7일 오전 서울 잠실의 롯데월드타워. 초등4~중2 아이들이 클라리넷을 들고 오텐잠머의 앞에 앉았다. 롯데백화점이 올해 창단한 키즈 오케스트라의 클라리넷 단원들이다. 오텐잠머는 이들의 창단 연주회에서 지휘를 맡았다. 그는 이 자리에서 “오케스트라 연주는 독주보다 훨씬 어렵다. 하지만 정말 재미있다”고 말했다.
첫 곡은 에드바르드 그리그 ‘페르귄트 모음곡’ 중 ‘아침 기분’. 고향을 떠나 유랑하는 주인공이 잠에서 깨어나 맞이하는 아침을 그린 음악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멜로디는 플루트 주자들이 연주한다. 클라리넷 연주자들은 네 마디 동안 화음을 일제히 불고 있어야 한다. 오텐잠머의 손짓에 맞춰 어린이들이 잔뜩 긴장한 얼굴로 화음을 시작했다. 길게 한 음씩 불면 되는 간단한 연주였지만 쉽지 않았다. 각자의 소리가 따로 들렸다.
오텐잠머가 웃음을 지으며 손을 들어 연주를 멈췄다. “다시 한번 해봅시다. 음이 시작할 때 연주를 시작하는 게 아니에요.” 그는 음을 내기 전에 숨을 미리 쉬고 있으라고 했다. “숨을 쉬면서 모두가 서로를 보고, 첫 음을 숨 쉬듯이 불어내는 거죠.” 그는 어린이 단원들에게 서로의 호흡을 의식하며 함께 하는 중요성에 관해 설명했다. “오케스트라 연주는 사회적이에요. 축구 경기처럼 한 팀으로 움직여야 하지.”
아이들의 화음은 점점 나아졌다. 이번에는 좀 더 하나가 된 호흡으로 소리가 뻗어 나왔다.
음악적 상상력을 전수하는 시간도 있었다. “우리는 음표 하나하나를 연주하지만, 사람들에게는 캐릭터가 들려야 합니다. 지금 연주하고 있는 이 부분이 어떤 캐릭터인지 설명해볼 사람?” 이때 연주하고 있었던 작품은 ‘페르귄트 모음곡’ 중 ‘산속 마왕의 궁전에서’. 4분음표가 연주되는 동안 낮은 소리를 내는 악기들이 절뚝거리듯 이끌어가는 음악이다. 아이들이 대답을 머뭇거리자 오텐잠머는 “도둑이 집에 들어 물건들을 몰래 훔쳐가는 것 같지 않아?”라며 웃음을 불러냈다. 그는 “클라리넷이 표현할 수 있는 캐릭터는 많다”며 ‘피터와 늑대’에서 고양이, 베토벤 ‘전원’ 교향곡의 뻐꾸기를 예로 들었다.
레슨을 끝낸 오텐잠머는 본지와 인터뷰에서 “오케스트라 연주는, 특히 아이들의 경우엔 정말 재미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혼자 하는 독주보다 잘하기가 몇 배는 어렵기 때문에 재미를 찾아내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오텐잠머는 이들을 비롯한 키즈 오케스트라 77명과 함께 16일 롯데콘서트홀 무대에 선다. 올여름 롯데콘서트홀 여름 음악제인 ‘클래식 레볼루션’의 예술감독을 맡아 지난 11일 서울시향을 지휘한 데 이어 20일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함께 레너드 번스타인의 심포닉댄스 등을 들려줄 예정이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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