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길 개척 또 개척 “무척 힘들지만 재밌어요”
이슬아(32) 작가는 요즘 드라마 대본을 쓰고 있다. 지난해 출간한 첫 소설 ‘가녀장의 시대’의 드라마 제작이 확정됐고 원작자가 대본까지 맡게 된 것이다. 지난 9일 이 소설의 공간적 배경이자 자신의 주거 겸 업무 공간인 서울 성북구 헤엄 출판사에서 이슬아는 “완전히 새로운 장르에 도전하는 중”이라며 “너무 힘들고, 너무 재미있다”고 말했다.
이슬아는 이 소설로 온라인서점 예스24가 독자 투표로 선정하는 ‘2023년 한국 문학의 미래가 될 젊은 작가’ 1위에 뽑혔다. 에세이로 출발한 이슬아의 글쓰기는 소설과 드라마로 확장되고 있다.
지난달 나온 이슬아의 수필집 ‘끝내주는 인생’은 한 달 만에 4쇄를 찍으며 베스트셀러 대열에 합류했다. 이 책은 2018년 ‘일간이슬아 수필집’이라는 제목으로 첫 책을 낸 이슬아의 열세 번째 책이다. 그는 지난 5년 간 해마다 두세 권씩 책을 냈다.
이슬아가 보여주는 생산성과 변화, 확장력은 놀랍다. 그는 인디와 주류, 비문학과 문학, 책과 영상, 작가와 셀렙 사이의 경계를 사뿐하게 넘나들며 이슬아라는 이름을 하나의 브랜드로 구축했다.
말린 감귤 슬라이스를 띄운 물 한 잔을 옆에 놓아주고 맞은 편에 앉는 작가에게 그동안 많은 인터뷰를 했을테니 이번에는 ‘이슬아의 방식’에 대해서 얘기해보면 어떻겠냐고 말을 꺼냈다. 그는 흥미로워하면서 얘기를 시작했다. 1시간 반 정도의 인터뷰를 끝내고 정릉의 산동네를 내려가는 길에 좀 전의 얘기들이 몇 개의 단어들로 정리됐다. 행동파, 창안가, 퍼포머. 작가에 대한 설명으로서는 이례적이라고 할 단어들이었다.
이슬아는 기다리지 않는다. 먼저 행동한다. 그는 독자들에게 돈을 내고 자기 글을 읽어달라고 부탁했다. 구독료를 내는 회원들을 모집해 매일 글 한 편을 보내주는 ‘일간이슬아’라는 구독모델을 창안했다. 그는 “작가랑 독자 사이에 직거래하는 방법을 발견한 것은 제가 망설임 없이 자랑할 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매체의 청탁을 기다리는 대신 독자님을 향해 돈을 주시면 제가 글을 보내주겠다고 했다. 그동안에는 작가가 독자들에게 직접 글을 판매하는 모델이 없었다. 저는 상인의 딸이기도 하고 뭔가를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것에 부끄러움이 없다. 사실 자기가 만든 것을 파는 건 숭고한 일이기도 하다. 지금은 다른 작가들도 이 구독모델을 사용하게 됐다는 게 진짜 뿌듯하다.”
이슬아는 매체들에게는 원고료를 정확하게 정산해 달라고 요구했다. 자기 글을 받아가면서 원고료 얘기를 뭉개는 매체들을 향해서 원고료를 요구하기 위해 그가 만들어낸 게 ‘연재노동자’라는 말이다.
“청탁 메일이 올 때 원고료가 안 적혀 있는 경우가 많다. 원고료가 너무 적을 때도 있고, 지급도 들쭉날쭉하다. 아, 글쓰기가 노동의 영역으로 취급되지 않는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글쓰기가 예술의 영역에서만 얘기될 때 작가들의 생계가 어려워진다. 원고청탁 메일에 답장을 쓰면서 ‘저는 작가이자 연재노동자입니다’ 이렇게 소개했다. 그리고 ‘원고료를 적어주세요, 지급일도 써주세요, 돈이 언제 들어올지 알아야 저도 지출 계획을 세울 수 있답니다’ 이렇게 써서 보냈다.”
이슬아는 청탁도 앉아서 기다리지 않았다. 그는 “데뷔 전부터 좋아하는 출판사의 편집자들에게 되게 얼쩡대는 스타일이었다”면서 “SNS에서 그 편집자를 팔로잉하고, 오직 편집자를 만나기 위한 목적으로 북콘서트에 가기도 했다. 기회가 되면 회식 자리에 끼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런 자리에서 이슬아는 편집자들에게 자기를 세일즈했다. “저는 이런 글을 쓰는 사람인데, 원고가 펑크 날 때면 언제든지 전화주세요, 그렇게 얘기했다. 매수별로 원고가 다 준비돼 있다면서.”
그는 책을 낼 때도 자기가 먼저 프러포즈를 한다. 편집자를 찾아가 내 책을 내달라고 졸라댄다. 꽤 잘 팔리는 작가가 된 지금도 그렇다. ‘가녀장의 시대’도, ‘끝내주는 인생’도 그렇게 출판됐다.
“김진형 편집자는 데뷔 전부터 좋아했다. 그가 어떤 책들을 만들어왔는지 다 알 정도로. 나중에 유명해지면 꼭 이 사람과 작업을 해야지, 그런 꿈이 있었다. 이번에 ‘끝내주는 인생’을 낼 때 그에게 이 책을 꼭 만들어달라고 부탁하는 메일을 되게 길게 써서 보냈다.”
그는 작가 지망생들이 어떻게 책을 낼 수 있느냐고 물을 때마다 왜 편집자의 팬이 되지 않느냐고, 편집자를 사랑하는 게 먼저인 것 같다고 조언한다고 한다. 그는 편집자를 덕질하는 작가다. 편집자들과 얘기하는 걸 너무나 좋아한다. 그래서 출판사와 편집자들을 주인공으로 하는 소설을 꼭 쓸 거라고 했다.
이슬아는 “거절당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별로 없는 편”이라고 했다. “물론 거절당할 수 있다. 그 분의 사정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하지만 거절당한다는 게 내가 다시 못 일어날 정도의 상처는 아니기 때문에 괜찮다.” 그는 먼저 요구하는 것에 대해 과감하다거나 용감하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그보다는 “내가 좋아하니까 먼저 믿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슬아는 관행이나 시선에 사로잡혀 기다리는 대신 먼저 요구하고, 필요하다면 모델이나 개념을 창안하면서 앞으로 나아간다. 이슬아는 어떤 등단 절차나 출판사도 거치지 않고 작가가 되었다. 누드모델을 하면서 글을 썼고, 자신을 대중들에게 보여주는 데도 능숙하다. 이슬아는 그렇게 작가가 되는 길, 작가로 살아가는 길을 새로 만들고 있다.
이슬아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작가와 글쓰기에 대해 그가 다듬어온 독특한 관점도 발견하게 된다. 그는 글쓰기를 공연이나 전시 행위처럼, 작가를 퍼포머(공연자)처럼 여긴다. 그래서 “솔직하다는 평을 들을 때가 가장 당황스럽다”고 한다.
“직설적으로 말하고 빈 말이 없는 편이긴 하지만 제 글이 솔직하다는 평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솔직함과 탁월함과는 상관이 없다. 솔직해서 꼴 보기 싫은 글도 많지 않나. 나를 가지고 어떻게 재미있는 연극을 할 것인가, 내가 갈고 닦아온 것은 그것에 가깝다. 같은 일을 겪어도 사람마다 다르게 쓰게 된다. 편집과 가공 능력이 글쓰기의 관건이다. 솔직함보다 과장하고 축소하는 능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는 에세이에 대해서도 “조금은 픽션”이라고 말했다. “사건 순서도 미세하고 바뀌고 대사도 미세하게 바뀐다. 좋은 글은 거짓말을 마구 하면서 진실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서. 그는 “에세이 쓰기에는 연극적인 데가 있다”는 말도 했다. “에세이 작가도 어떤 롤을 수행한다. 일종의 무대이기 때문에 나에 대해 얘기하고 있지만 꾸며낸 자아를 전시하는 일이다. 에세이스트를 저는 기본적으로 퍼포머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리듬감 있는 글을 추구한다. “글을 쓸 때 빼기를 되게 열심히 한다. 군더더기가 없을 때까지 빼려고 한다. 그건 문장의 리듬감 때문인 것 같다. 잘 쓴 문장들은 눈으로만 읽어도 경쾌한 리듬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 리듬감을 굉장히 중시한다.”
이슬아는 책을 사진이나 영상과 연결하는 작업에도 능숙하다. ‘끝내주는 인생’은 사진가 이훤과의 공동 작업이다. 이슬아는 책에 실린 이훤의 사진들에 대해 “문장이 이미지를 타고 더 멀리멀리 가는 걸 목격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책이 팔리지 않는 건 너무 외로운 일이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더 많이 팔 수 있을까 고민한다. 또 종이책의 위기가 깊은 시대에 책 쓰는 사람으로서 어떻게 계속 살아갈 수 있을까 고민한다”고 덧붙였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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