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없이 다가오는 종말…‘매의 눈 AI’가 막는다

이정호 기자 2023. 8. 13. 20:28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미 워싱턴대 우주관측용 AI ‘지구 스친 지름 180m 소행성’ 발견
NASA 등 기존 탐지 프로그램은 분석 위한 사진 수 모자라 놓쳐
2025년까지 칠레 ‘루빈 천문대’에 32억화소 카메라와 함께 설치
지구 옆을 스치며 우주를 비행하는 소행성 상상도. 미국 워싱턴대 연구진은 최근 밤하늘을 찍은 사진에서 소행성을 찾아내는 인공지능(AI)을 개발했다. 이 AI를 이용하면 자칫 못 보고 놓치는 소행성을 최소화할 수 있다. 픽사베이

# 미국 뉴욕의 한 길거리, 상점에 놓인 텔레비전에서 우주왕복선 아틀란티스호가 지구 궤도에서 임무 수행 중 폭발했다는 뉴스가 긴급히 방송된다.

전에 없던 ‘이상한’ 소식에 시민들의 이목이 집중된 순간, 갑자기 그들의 머리 위로 불덩어리 수십 개가 연달아 쏟아진다. 빌딩에는 거대한 구멍이 뚫리고, 자동차는 장난감처럼 날아간다.

적국의 미사일 공습 같아 보였지만, 사실은 우주에서 임무 중이던 아틀란티스호를 파괴한 운석이 지구 표면까지 떨어진 것이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 유성우는 거대한 소행성이 뿌린 부스러기였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정확히 18일 뒤, 지름이 수백㎞에 이르는 거대 소행성이 지구와 충돌할 것이라는 절망적인 계산 결과를 받아든다. 지구 생물의 ‘완전 멸종’이 눈앞에 다가온 것이다.

브루스 윌리스가 주연한 미국 영화 <아마겟돈>의 줄거리다. <아마겟돈>에서 NASA는 굴착 기술자들을 우주선에 태워 소행성에 보낸다. 그리고 폭탄을 묻게 한 뒤 터뜨린다. 그렇게 지구는 가까스로 위기를 벗어난다.

하지만 현실에서 소행성과 지구 충돌을 막는 최선의 대책은 ‘용감한 특공대’ 파견이 아니다. 최대한 이른 시점에 소행성을 발견하는 일이다. 그 뒤 정확한 계산을 통해 소행성 진로를 바꿔야 한다. NASA는 지난해 지구에서 멀리 떨어진 소행성에 우주선을 충돌시켜 진로를 바꾸는 실험에 성공했다.

소행성 충돌은 공상이 아니라 언젠가 닥칠 수 있는 재앙이다. 비교적 소형에 속하지만, 지구와 충돌하면 엄청난 피해를 줄 지름 140m짜리 소행성은 지구에 2만년에 한 번꼴로 떨어진다. 지구의 나이가 45억살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매우 잦은 충돌이다.

이런 가운데 최근 우주 과학계에서는 정확하고 빠르게 소행성을 찾을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핵심은 우주 관측용 인공지능(AI)이다.

■ AI로 훑다가 1년 전 소행성 발견

미국 워싱턴대 연구진은 최근 공식 발표자료를 통해 그동안 존재를 몰랐던 한 소행성을 자신들이 개발한 우주 관측용 AI로 지난달 발견했다고 밝혔다.

새로 확인된 소행성 이름은 ‘2022 SF289’이다. 지름이 180m다. 고층 빌딩 덩치다. 지구와 충돌한다면 대도시에 커다란 인명·재산 피해를 줄 수 있다.

2013년 2월 러시아 첼랴빈스크에 떨어진 소행성은 지름이 17m에 불과했다. ‘2022 SF289’보다 훨씬 작았지만, 대기와 충돌할 때 생긴 폭발력으로 건물 유리창과 벽 등을 파손했고 1000여명의 부상자를 만들었다.

주목할 점은 ‘2022 SF289’가 이미 1년 전인 지난해 9월, 지구 옆을 지나쳤던 소행성이라는 사실이다.

당시에는 어떤 우주 기관도, 천문학자도 ‘2022 SF289’를 발견하지 못했다. 지구와 거리는 720만㎞였다. 지구와 태양 사이 거리가 1억5000만㎞라는 점을 감안하면 720만㎞는 우주적인 관점에서 상당한 근거리인데도 그런 일이 일어났다.

‘2022 SF289’의 존재를 세계 과학자들이 놓친 이유는 이동 경로가 은하수와 겹쳤기 때문이다. 밝은 자동차 전조등 앞을 지나치는 반딧불이를 눈으로 식별하기 어려운 것과 비슷한 일이 발생한 셈이다. 이러한 ‘2022 SF289’를 예전에 찍었던 밤하늘 사진을 AI로 재분석해 찾아냈다.

2025년 완공을 목표로 칠레에서 공사 중인 루빈 천문대 전경. 32억화소의 고성능 카메라와 우주 관측용 인공지능(AI)이 들어갈 예정이다. 루빈 천문대 제공

■ 신속·정확하게 ‘지구 방위’

AI 없이 밤하늘을 촬영했던 지난해 9월 당시에도 ‘2022 SF289’의 존재를 까맣게 몰랐던 건 아니다. ‘2022 SF289’의 모습이 망원경을 통해 총 3장 찍혔다.

하지만 현재 NASA 등 미국 과학계가 운영하는 소행성 탐지 컴퓨터 프로그램인 ‘아틀라스’는 하룻밤 사이에 소행성으로 의심되는 사진을 연속으로 4장 찍어야 가동된다. 4장 촬영은 연속 촬영된 ‘점’이 명확한 ‘직선’을 그리며 이동하는지를 가려내기 위한 조건이다.

‘2022 SF289’는 지난해 9월 당시 아틀라스에 의해 촬영된 사진 개수가 기준에 1장 모자라서 소행성 심사 대상에 오르지 못했다는 뜻이다.

반면 AI는 사진을 총 2장만 찍어도 소행성 여부를 판단한다. 사진 촬영 개수가 모자라 소행성 여부 판단이 보류되는 일이 대폭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사진 촬영을 적게 해도 되기 때문에 소행성인지 아닌지를 가리는 속도도 끌어 올릴 수 있다.

이번 ‘2022 SF289’ 발견은 우주 관측용 AI가 시험 가동 중에 만든 성과다. 이 AI는 미국 국립과학재단(NSF)이 주도해 2025년 칠레에 완공할 ‘루빈 천문대’에 정식 설치될 예정이다.

또 루빈 천문대에는 무려 32억화소짜리 최첨단 카메라가 장착된다. 꼼꼼한 소행성 탐사에 제격이다. 연구진은 “AI로 인해 인류는 지금보다 더 크고, 더 나은 성능을 가진 망원경을 가진 것과 같은 효과를 누리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정호 기자 run@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