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적없이 CB만 발행?...증권가 CB 주의보 [MONEY톡]
조사 기업 39개사 중 29곳, 상장폐지 등 경영 악화
기업 사냥꾼 3명은 허위 사실로 주가를 띄우기로 공모했다. 이들은 A사 전환사채(CB·Convertible Bond)를 미리 보유해놨다. 그리고 A사가 개발한 신약이 임상시험을 통과한다는 정보를 띄웠다. 하지만 그 정보는 가짜였다. 임상은 엎어졌다. 이 과정에서 이들 일당은 CB를 주식으로 전환한 뒤 높은 가격에 팔아 120억원의 부당이득을 챙겼다.
CB를 활용한 불법 사례는 다양하다. 주로 시장에서 유행하는 테마 사업에 신규 진출한다고 선언하는 등 대규모 투자를 유치한다고 투자자를 속여 돈을 끌어모으는 식이다. 납입 가능성이 없는 사모 CB를 발행한 뒤 자금 조달에 성공한 것처럼 꾸며 투자자를 현혹하기도 했다. 불공정 세력이 CB로 ‘장난질’을 치며 개인 투자자 피해가 크게 늘었다.
금감원 조사 결과, 불공정 거래에 활용한 기업 39개사 중 29개사가 상장폐지, 관리종목 지정, 경영 악화 등의 상황에 빠졌다. 이렇게 사모CB가 악용되는 이유는 발행이 쉽기 때문이다. 현재 사모CB는 증권신고서를 제출하지 않고 이사회 결의만으로 발행할 수 있다.
원래 CB는 기업이 자금을 조달하는 아주 중요한 창구였다. CB는 회사의 주식으로 전환될 수 있는 권리가 부여된 채권이다. 한마디로 ‘자본’으로 바꿀 수 있는 ‘부채’다. CB는 비교적 안전한 자산인 채권의 성격에다 수익성 높은 주식 특징까지 갖고 있어 투자자에게 인기가 있다. 예를 들어 CB 보유자는 해당 회사 주가가 오르면 주식으로 전환해 차익을 누린다.
주가가 하락한다고 하더라도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가격(전화가액)을 낮출 수 있어 나름대로 ‘안전판’이 마련돼 있는 구조다. 차입자인 CB 발행 기업은 부채가 주식으로 전환돼 갚아야 하는 부담을 덜어낸다는 점에서 CB의 주식 전환이 나쁘지 않았다. 상호 간 윈윈이 가능한 상품인 셈이다.
그러나 CB 발행은 기존 투자자에게는 ‘독’이 되기도 한다. CB 투자자가 전환권을 행사해 채권을 주식으로 전환해달라고 신청하면 회사는 그만큼 주식을 더 발행한다. 이 경우 기존 주주가 보유한 주식 가치는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 CB 전환가액은 시세에 맞춰 주기적으로 조정(리픽싱)된다. 전환청구권이 행사되는 때는 통상 전환가액이 시세보다 저렴한 경우가 일반적이라, 주가 하락(희석) 요인으로 작용한다.
CB는 공모주 시장을 뒤흔들기도 한다. 공모주의 가격 제한폭이 확대로 변동성이 커진 가운데, CB 물량이 대거 쏟아져나올 수 있어서다. 최근 상장한 필에너지가 대표적인 사례다. 필에너지는 7월 14일 공모가(3만4000원)보다 237%(종가 기준) 오르며 화려하게 코스닥 시장에 입성했다. 장중 13만2000원까지 오르며 공모가 대비 4배에 근접했다.
하지만 장 마감 후 ‘2021년 발행한 160억원 규모의 사모CB가 주식으로 전환된다’고 공시하며 하락세가 시작됐다. 대규모 물량이 시장에 풀릴 수 있다는 우려에 시간외거래에선 하한가를 찍었고, 7월 17일 최고 24.17% 떨어졌다. 실제 사모CB에 투자한 기관 투자자의 전환가액은 1만3333원에 불과하다. 이미 상당한 시세 차익을 거둔 기관 투자자가 투매에 나설 가능성이 높았던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금융위는 CB 발행과 유통과 관련된 공시의무를 강화한다. 특히 전환권이나 콜옵션과 같은 기업의 지배 구조와 지분 가치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정보를 중심으로 투명성을 높일 계획이다. 또한 CB가 무분별하게 발행돼 시장에서 과도하게 누적되며 투자자 피해로 이어지는 문제 또한 검토·개선하기로 했다. 주가 조작을 반복하는 경우도 있어 적발 시 엄중 제재하기로 했다.
[글 명순영 『매경이코노미』 기자 사진 매경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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