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한 나태주 시를 초1 딸에게 보여주었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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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여울 기자]
▲ 글을 잘 쓰고 싶어서 필사를 시작한 바로 그 시집 |
ⓒ 박여울 |
국어교육을 전공한 남편도 그리고 오마이뉴스 편집기자님도 나의 글 고민에 대해 비슷한 조언을 해주셨다. 글쓰기 실력을 향상시키려면 좋아하는 작가의 문장을 읽거나 필사를 하는 게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것 말이다.
나는 그 솔루션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좋아하는 문장, 잘 쓰인 문장을 눈과 손에 익히면 아무래도 이전보다는 글 솜씨가 좋아지지 않을까 하는 속이 훤이 보이는 욕심으로부터 시작된 일상의 도전이었다.
그런 마음으로 써내려간 시는 지난주에 세 편, 이번 주에 세 편 이렇게 총 6편이다. 신기한 건 이렇게 시를 하루하루 적다보니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시'의 매력에 빠져들었다는 것이다. 짧디 짧은 문장이 모인 시 한 편을 읽다 보면 어떻게 이렇게 간결한 문장 속에 삶의 지혜를 깊이 있게 담을 수 있는 건지 그저 감탄할 뿐이다.
▲ 딸에게 들려 주고 싶었던 시 <어린 벗에게> |
ⓒ 박여울 |
오늘도 어떤 시를 필사할까 고민하며 시집을 한 장 한 장 넘겨보았다. 한 시가 내 눈에 들어왔다. 보자마자 '이 시는 어제 한참을 눈물지으며 잠들었던 첫째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딸은 지난 3일간 할아버지, 할머니 댁에서 머물고 왔다. 홀로 두 분의 사랑을 넘치게 받다가 집으로 돌아오니 마음이 불편했나보다. 두 살 어린 여동생과 투닥하기 시작하더니 이내 동생에 대한 불만을 끊임없이 쏟아냈다. 오랜만에 만나서 반가운 마음도 잠시, 나는 아이를 바라보며 훈육해야 하는 상황이 그저 속상하기만 했다.
서러움이 폭발해서 눈물을 뚝뚝 흘리는 딸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아이는 동생에 대한 경쟁심도 컸고 그간 있었던 동생과 관련한 속상한 일들도 마음에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겨우 아이와의 대화를 마무리 짓고 나란히 누웠는데 어느새 잠든 딸을 바라보니 엄마로서 마음이 아렸다. 쉽게 잠들 수가 없는 그런 밤이었다.
비록 '시'라는 것에 대해 잘 모르는 초등학교 1학년이지만 어제 있었던 일에 대한 하나의 답이자 응원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엄마인 내가 아이에게 하고픈 말을 시의 힘을 빌려 이야기해 주고 싶었다. 내가 느꼈던 삶에 대한 위로를 아이도 작게나마 느끼길 바라며.
아이가 밥을 먹으려고 식탁 의자에 앉았을 때, 나는 필사한 시를 쓰윽 내밀었다.
"이 시를 읽고 나니까 OO이가 생각났어."
아이는 처음에는 "시가 뭐에요?"라고 질문하며 어리둥절해 하더니 이내 집중해서 찬찬히 읽어 내려갔다. 다 읽고 고개를 드는 아이에게 나는 곧장 어떤 생각이 드는지 물었다. 아이의 반응이 진심으로 궁금했기 때문이다.
"약간.... 뭔가..... 감싸주는 느낌? 그런 느낌이 들어요. (조금 더 고민하더니) 엄마의 마음을 알게 된 것 같아요."
꿈보다 해몽이다. 아 아니다. 청출어람인가? 나의 글을 위한 시 필사하기가 오늘은 아이에게까지 가닿았다. 생각지도 못한 의외의 수확이었다. 시 한 편을 두고 아이와 나눈 짧은 대화를 잊고 싶지 않아 이렇게 글 한 편을 써내려가게 되었다. 시를 읽고 적는 행위의 효용은 내가 생각하는 것 그 이상이라는 점을 알게 된 순간이기 때문이다.
일상에서 '나'의 글쓰기를 위해 실천한 작은 도전이 딸에게까지 영향을 미쳤다. 글로 아이를 위로한 게 아니라 글을 잘 쓰기 위해 시작한 노력이 딸에게 영향을 미쳤다. 참으로 놀라운 변화이다.
다음으로 필사할 시는 또 내 삶에 그리고 누군가에게 어떤 의미를 남기게 될지 궁금하다. 거창한 욕심을 부리지 말고 처음 마음 그대로 그저 (마음에 들어오는 문장을) 읽고 쓰는 삶을 이어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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