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기야 LH 해체론까지…덩치도 권한도 큰데, 윤리의식 바닥 왜

황의영 2023. 8. 13.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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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오전 서울 강남구 한국토지주택공사(LH) 서울지역본부에서 열린 무량판 구조가 적용된 아파트 전수조사 관련 기자회견에서 이한준 사장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또다시 존폐 위기에 몰렸다. 2021년 3월 직원 땅 투기로 물의를 빚은 지 2년 반 만에 아파트 철근 누락 사태가 터지면서다. 단순히 아파트 주차장에 철근을 빠뜨린 것도 모자라 조사와 보고, 통계 누락까지 드러났다. 일각에선 LH 해체론까지 나온다.

LH는 지난 4월 인천 검단 아파트 주차장 붕괴를 계기로 2017년 이후 착공한 무량판(보 없이 기둥만으로 천장을 지탱하는 방식) 구조 아파트에 대해 3개월간 전수조사를 벌였다.

지난달 30일 발표된 조사 결과는 91개 단지 중 15곳에서 철근이 누락됐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지난 9일 무량판 아파트 10곳이 조사 대상에서 빠졌다는 사실이 드러났고, 11일엔 추가로 5곳에서 철근 누락이 확인됐다. 무량판 구조인데도 조사에서 빠진 1개 단지도 나왔다. 2주 만에 LH 조사 결과가 3번이나 뒤집힌 것이다. 결과적으로 무량판 구조 102개 단지 중 20곳에서 철근이 빠진 셈이다.

이 과정에서 조직 내부의 보고 체계 부실도 드러났다. 특히 LH는 아파트 5곳에서 철근이 누락된 점을 알고도 ‘부실이 경미하다’는 이유로 이한준 LH 사장에게 보고하지 않았다. LH 출신의 한 업계 관계자는 “입이 열 개여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LH가 ‘부실 집합소’가 된 데는 우선 조직 비대화가 꼽힌다. LH는 2009년 한국토지공사와 대한주택공사가 합병해 덩치를 키웠다. 출범 당시 6000명 수준이었던 직원 수는 지난 6월 기준 8885명에 달했다.

신도시 조성부터 공공주택 사업까지 독점적 권한도 주어졌다. 그러나 내부에선 여전히 ‘토공’과 ‘주공’ 조직이 자리를 나눠 갖는 ‘한 지붕 두 가족’ 문화가 팽배했다. 이한준 사장은 이를 ‘무늬만 통합’이라 지적했다.

김영옥 기자

조직 문화도 문제다. 최명기 대한민국산업현장교수단 교수는 “직원의 윤리의식 부족 등 LH 문화가 이번 사태를 촉발했다”며 “내부 통제 시스템 문제보단 수십년간 바뀌지 않은 관행이 철근 누락, 보고 부실 등을 키운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LH가 2년 전 직원 땅 투기 논란 때도 혁신안을 내놨지만, 달라진 건 거의 없다. LH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LH가 2021년 6월 퇴직자 취업 제한 강화를 담은 혁신안을 꺼냈지만, 지난 2년간 심사 대상자 21명 중 실제 취업이 제한된 건 1명뿐이었다.

고질적 병폐로 지목되던 전관예우를 비롯해 임직원 비위도 그대로다. 박상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LH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8년부터 올해 8월 1일까지 LH 임직원의 내부 징계 건수는 299건이었다. 일부는 뇌물과 금품 수수, 음주운전 혐의로 처벌됐다.

이 때문에 ‘해체 수준’의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과거처럼 ‘토공’과 ‘주공’으로 분리하거나, LH가 담당하는 기능별로 조직을 쪼개란 것이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조직이 너무 비대해져 관리·감독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며 “택지를 공급하는 택지공사, 주택을 공급하는 주택공사, 준공된 주택을 관리하는 주택관리공사로 분리하는 안을 고려할 만하다”고 말했다.

반면 최명기 교수는 “조직을 분리하면 업무 효율성이 떨어질 수 있고, 추후 다른 정권에서 재통합할 가능성도 있다”며 “조직 분리보단 조직에 끼친 손해에 대해 구상권을 청구하는 식의 처벌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전관예우 관행에 대해선 재직자가 퇴직자와 일대일로 만나는 걸 제한하는 등 불법과 합법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LH는 쇄신안으로 인력 축소와 함께 자체 설계와 시공 권한을 줄이고 감리 기능을 떼어내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황의영 기자 apex@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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