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G 없이 핵폭발 찍었다…'오펜하이머' 23일만에 7696억 대박

나원정 2023. 8. 13.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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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개봉 영화 '오펜하이머'
원자폭탄 아버지 과학자 실화
2차 대전 소재 영화 최고 흥행
놀런 "그의 머릿속 체험시키고파"
영화 '오펜하이머'(15일 개봉)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 핵무기 개발 프로젝트 '맨해튼 프로젝트'를 이끌며 훗날 '원자폭탄의 아버지'라 불린 로버트 오펜하이머(킬리언 머피)에 관한 이야기를 그렸다. 사진은 극중 오펜하이머가 첫 핵실험 트리니티 폭발 현장을 지켜보는 모습이다. 사진 유니버설 픽쳐스

1945년 7월 16일, 미국 뉴멕시코 사막에 노랑‧빨강‧보랏빛의 버섯 모양 불기둥이 가공할 굉음과 함께 하늘로 치솟았다. 미국 물리학자 로버트 오펜하이머(1904~1967)가 이끈 세계 최초 핵무기 실험 ‘맨해튼 프로젝트’가 첫 원자폭탄(코드명 트리니티) 테스트에 성공한 순간이었다. 이어 8월 6‧9일 일본 히로시마‧나가사키에 투하된 두 개의 원폭은 20만명의 피폭 사망자를 낳으며 일본의 패전을 앞당겼다. 그렇게 2차 세계대전 종지부를 찍었을 때 오펜하이머는 이렇게 탄식했다. “나는 이제 죽음이요,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다.”


'원폭 아버지'는 왜 빨갱이로 몰렸나


'핵폭탄의 아버지'로 불리는 미국 물리학자 로버트 오펜하이머의 에티컬 컬처 스쿨 재학시절. 오펜하이머는 이 시기 그의 ″윤리적 상상력″을 기르는 법과 ″현재 그대로가 아닌, 되어야 마땅한 것″을 보는 법을 배웠다. 영화 ‘오펜하이머’ 원작 도서『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에 수록된 자료사진이다. 사진 사이언스북스
로버트 오펜하이머가 개발을 이끈 세계 최초의 원자폭탄이 '트르니티 테스트'에서 폭발하는 장면. 사진 사이언스북스
‘원폭의 아버지’로 추앙받았지만 훗날 공산당 동조 행위를 하고 소련과의 군비경쟁을 우려해 수소폭탄 반대 발언을 했다는 이유로 미국 정부로부터 ‘빨갱이’로 몰리며 ‘현대 핵 과학자의 비극의 상징’으로 남은 오펜하이머. 그의 전기영화 ‘오펜하이머’가 개봉 23일만인 12일 현재 전세계적으로 5억 7777만달러(약 7696억원) 매출을 올리며, 역대 가장 흥행한 2차 세계대전 영화에 등극했다. 지난달 21일 북미를 시작으로 유럽‧중남미 등 약 70개국에서 개봉한 결과다. 박스오피스 전문 사이트 ‘박스오피스모조’ 집계 기준, 이 부문 1위였던 2차 대전 영화 ‘덩케르크’(2017)의 기록 5억 2701만 달러를 넘어섰다.
'오펜하이머'의 각본‧연출을 겸한 영국 출신 크리스토퍼 놀런(53) 감독은 자신의 기록을 경신하게 됐다. '덩케르크'도 그가 만든 영화다.
'오펜하이머'는 한국에서는 15일 광복절, 중국에선 이달 말 개봉한다. 올해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 투하 78주기를 맞는 일본은 아직 개봉일이 미정이다.

놀런 "핵폭발 위협감 주기 위해 CG 없이 구현"


놀런 감독은 “오펜하이머는 핵무기가 지구 전체를 날려버릴 수 있다는 미세한 가능성을 인지했음에도 (첫 핵실험의) 발사 버튼을 눌렀다. 좋았든, 나빴든, 그의 행동이 지금의 (핵무기 보유) 세상을 만들었다”고 밝힌 바 있다. 최근 국내에서 특별판이 출간된 평전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사이언스북스)를 토대로 1인칭 시점으로 오펜하이머(킬리언 머피)의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며 시공을 초월한 화면을 그려냈다. 1940년대 뉴멕시코 외딴 도시 로스앨러모스 비밀 기지에 틀어박혀 첫 원폭을 개발해낸 그가 일본에 실제 원폭이 투하된 뒤에 시달린 환각, 1950년대 매카시즘 광풍에 휩쓸리기까지 오펜하이머의 성취와 후회를 두루 전한다.
무엇보다 폭발 장면을 일체의 컴퓨터그래픽(CG) 없이 구현했다는 점이 감상 포인트다. 실제 같은 생생함을 살리기 위해 놀런 감독은 고전적인 촬영기법을 택했다. 뉴멕시코 사막에 당시 기지를 본뜬 세트를 짓고, 휘발유‧석유‧알루미늄 분말‧마그네슘 불꽃 등 화학 혼합물을 동원해 실제 폭탄을 제작하고, 폭발 장면을 연출해 시각적 아름다움이 압도적이다. 영화 ‘인셉션’(2010)의 무중력 전투장면을 실제 촬영조건을 갖춰 구현하고, ‘테넷’에선 초대형 보잉747 비행기를 폭파한 놀런 감독의 또 다른 미학적 도전이다.
하지만 폭발 장면에서 원폭의 공포까지 실감 나게 전달되지는 않는다. 피폭의 참상을 오펜하이머의 환각 형식으로 그리고 있어서다. 원폭 성공 연설을 하던 그가 청중의 살갗이 원폭의 섬광 같은 빛에 찢겨나가고, 박수갈채가 폭발음처럼 들리는 환상을 겪는 장면은 “파우스트의 거래를 한”(『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중 물리학자 프리먼 다이슨) 과학자의 죄책감을 현실감 없이 전할 뿐이다. 히로시마로부터 1만㎞ 떨어진 로스앨러모스에서 핵 실험에 열중한 과학자의 심리적 거리감을 담은 연출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아이언맨' 로다주, 수폭 지지자 연기


영화 '오펜하이머'(15일 개봉)는 '인터스텔라' '테넷' '다크 나이트' 등을 만든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이 각본, 연출을 맡았다. 사진은 놀런 감독이 극중 흑백 화면에 주로 담기는 루이스 스트로스 역할의 배우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에게 대본 내용에 대해 상의하는 모습이다. 이 영화를 위해 65mm 흑백 아이맥스 필름을 특별 제작하기도 했다. 사진 유니버설 픽쳐스
영화는 원폭이 낳은 상흔보단 오펜하이머란 한 인간의 진실을 거대한 퍼즐처럼 맞춰나가는 데에 열중한다. 뉴욕의 부유한 유대계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하버드대 화학학사, 독일 괴팅겐대 물리학 박사 학위를 마치고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을 거쳐 UC버클리대 교수로 재직했다. 양자역학‧천체물리학 등 이론물리학에서 주목받는 스타였다. 미국 노동계급을 강타한 대공황 시기 진보적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맨해튼 프로젝트에 투입되면서 물리학 300년 역사를 대량살상무기에 바친 “위대한 물리학 세일즈맨”이라는 평을 들었고, 해리스 트루먼 당시 미국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내 손에 피가 묻은 것 같다”고 호소해 “울보 물리학자” 비아냥도 들었다. ‘진정한 애국자’이자 ‘거짓말쟁이 빨갱이’란 상반된 수식어가 평생 따라다녔다.
영화는, 오펜하이머와 대립했던 원자력 위원회 창립위원 루이스 스트로스가 1959년 상무장관 지명이 걸린 상원 청문회에서 오펜하이머의 그늘진 면모를 들춰내는 장면들은 흑백화면에 담았다. 반면 오펜하이머 시점의 장면은 컬러 화면이다. 컬러와 흑백이 교차 편집된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연기한 스트로스는 아인슈타인 등과 핵무기의 미래를 우려하며 철학적으로 교류한 오펜하이머와 달리, 보수적이고 관료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구시대를 상징하는 듯한 흑백 화면 속에 갇힌 그는 오펜하이머와 달리 미국 원자력 정책의 중추 역할을 했고, 오펜하이머가 반대했던 수소폭탄을 지지했다.

'원폭 아버지'의 후회…놀런 "관객 체험시키고파"


오펜하이머의 고통은 운명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국가를 지키기 위해 “나치보다 먼저 원자폭탄을 만드는 (맨해튼) 프로젝트”에 복무했던 그는 그러한 결정이 2차 대전 종식 이후 또 다른 냉전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스스로 희생양이 된다. ‘원폭의 아버지’였지만 원폭을 통제할 힘은 주어지지 않았다.
놀런 감독은 ‘오펜하이머’가 결국 오펜하이머 그 자신이 된 듯 그의 머릿속에 일어난 일을 펼쳐낸 영화라 설명했다. “관객을 바로 그 중대한 결정의 순간으로 안내하고 싶었다”고 놀런 감독은 말한다.
1945년 7월 16일 미국 뉴멕시코에서 첫 핵실험 '트리니티 테스트' 폭발 순간을 항공샷으로 담은 장면이다. AP=연합뉴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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