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도 범죄도 없애준 외계인, 인간은 행복할까?
[김성호 기자]
1950년대, 여객기 한 대가 추락해 승객이 절반가량 사망하는 사고가 있었다. 얼마간 흘러서 이 사고와 관련한 이야기 하나가 신문에 실려 사고만큼이나 큰 화제를 모았다. 그야말로 혼돈 그 자체였던 추락 상황 가운데서도 승객 한 명은 평정을 잃지 않았는데 그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한 기사였다. 승객이 읽고 있던 것은 당대 큰 인기를 얻은 SF소설로, 다름 아닌 아서 C. 클라크의 작품이었다는 것이다.
더욱 흥미로운 건 그 다음 이야기다. 클라크는 신문에 실린 기사를 복사해서는 다른 작가에게 보낸다. 기사와 동봉된 편지엔 다음과 같은 글이 담겼다.
“자네 작품을 읽고 있지 않았다니 안됐구먼. 그랬다면 추락이 아무리 겁나도 바로 곯아 떨어졌을 텐데.”
클라크의 편지를 받은 이는 그와 함께 세계 3대 SF작가로 꼽히는 아이작 아시모프다. 아시모프가 제 자서전에 적어 넣은 이 일화는 클라크가 얼마나 자유분방하고 익살스러우며 자신감 넘치는 인간인지를 알게 한다.
▲ 유년기의 끝 책 표지 |
ⓒ 시공사 |
<유년기의 끝>은 클라크의 대표작이자 그의 다른 어느 작품보다도 이후 이어진 SF소설과 영화에 영향을 미친 고전으로 꼽힌다. 클라크의 자유분방한 상상력이 그대로 묻어난 작품은 1970년대 말 미국과 소련의 냉전기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양국은 실제 역사가 그러했듯 우주탐사, 구체적으로는 달 착륙을 위해 치열하게 경합하는 중이다. 서로의 진척상황은 철저히 감춘 채 총력을 기울인 경쟁은 어느덧 끝이 보인다. 소련이 한 발 앞서나가는 듯 보이지만 미국의 추격 또한 만만치 않다.
미국의 우주탐사를 이끄는 라인홀트 호프만 박사에게 그를 보좌하는 샌드마이어 대령이 새로운 소식을 전한다. 소련의 연구를 이끄는 이가 콘라트 슈나이더라는 사실을 말이다. 2차대전이 끝날 무렵, 폐허가 된 프러시아에서 라인홀트는 콘라트와 악수를 나누고 헤어졌었다. 그로부터 30년이 더 흘러 그가 소련 우주탐사를 이끌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것이다.
당황한 라인홀트에게 샌드마이어가 말한다. “우린 민주주의가 먼저 달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만 하오”라고. 그의 말을 들은 라인홀트는 홀로 생각한다. “콘라트 슈나이더라는 이름은 선거인 명부에 등재된 백만 명의 이름과 동등한 가치가 있어. 콘라트는 소련의 자원을 등에 업고 지금까지 무슨 일을 했을까?” 하고 말이다.
그러나 소설은 라인홀트와 콘라트, 미국과 소련 모두에게 참담한 절망을 안긴다. 양국의 달 탐사 우주선이 발사되기 전, 저들의 수도 위에 모습을 드러낸 존재 때문이다. 그건 외계인의 우주선이다. 그 우주선은 그저 제 존재를 드러내는 것만으로 많은 것을 보여주었다.
인간은 혼자가 아니란 것, 또 더는 혼자일 수 없다는 것, 그들과 인류의 격차는 구석기인과 현대인의 차이보다도 훨씬 더 크다는 것 말이다. 인류의 존재가치가 진보에 있다면, 또 콘라트와 같은 천재적 인물이 평범한 백만 명의 시민과 동등한 가치를 갖는다면, 이 같은 외계인의 존재란 인간에게 절망을 던질 뿐이 아닌가.
외계인의 당혹스러운 식민지배
이야기는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전개된다. 외계인은 인간에게 공격적이지 않다. 인간이 부담스러워할 무엇도 요구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저들이 인간을 관리하겠다는 의도를 분명히 한다.
그들이 지구를 지배하며 인간은 그들의 명령에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말해 식민지배를 하겠다는 것인데, 무엇도 탈취하지 않고 그저 인간사회를 더 낫게 만드는 데 열중하는 그들의 행태를 누구도 이해하지 못한다.
인간들이 오버로드라 부르는 외계인들은 제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UN사무총장으로 하여금 우주선을 오가게 하여 인류와 소통한다. 인간에게 필요한 과학기술을 전수하고 필요한 지침들을 내릴 뿐이다. 몇몇 나라가 반기를 들고 우주선에 핵무기를 쏘기까지 하지만 상황은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종결될 뿐이다. 조금의 손상도, 보복도 일어나지 않은 것이다.
압도적인 기술력 아래 인류는 굴복한다. 외계인은 인종차별도, 전쟁도, 착취와 가난도 없는 사회로 인류를 인도한다. 인간을 고통스럽게 하는 모든 재난으로부터 인간을 구하는 것은 다름아닌 외계인, 즉 오버로드들이다. 압도적인 과학의 등장으로 종교는 무력화되고, 인류는 유례없는 평화와 부의 시기를 구가한다. 저항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유의미한 저항은 없다고 해도 좋을 정도다.
강요받은 유토피아가 불러온 미래
소설은 외계인의 도움으로 모든 어려움이 해소된 것처럼 보이는 시대를 그린다. 생산품이 남아돌고 불필요한 노동이 사라진 시대, 그리하여 누구도 가난이나 기아를 겪지 않고 대부분의 질병 또한 정복되어 풍요로운 삶을 구가하는 시대 말이다. 저마다 저들이 원하는 일을 하는데 시간을 쓰고 누구도 다른 누구의 삶을 해할 마음을 먹지 못한다. 압도적인 과학기술을 가진 존재가 지구를 지배하기에 어느 범죄도 설 자리를 얻지 못한다.
이야기는 그저 그런 유토피아를 구현하는 데 머무르지 않는다. 외계인이 인류를 모든 갈등으로부터 해방한 이유가 차츰 밝혀지기 시작한다. 갈등과 결핍이 사라진 환경이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다. 압도적으로 우월한 과학기술의 존재 앞에서 누구도 턱없이 부족한 지구인의 과학을 향상시키는데 생을 바치지 않는다.
과학 뿐 아니라 예술, 또 다른 여러 분야 역시 마찬가지다. 인간의 창의력과 의지는 지난 시대에 비할 수 없이 뒤떨어진다. 오버로드의 지배를 받기 전의 세상을 살아보지 못한 인간들의 모습은 스스로의 힘으로 이룩하지 않은 세상에 기생하는 나태한 존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처럼 보인다.
오버로드는 말한다. “여러분 종족은 자신의 조그만 행성의 문제를 다루는 데도 눈에 띄게 무능한 모습을 보여왔소. 우리가 도착했을 때 여러분은 과학이 무분별하게 제공한 힘으로 스스로를 파괴하기 직전이었소. 우리의 개입이 없었다면, 오늘날 지구는 방사능에 물든 황야가 되었을 거요.”
한 권 소설이 던지는 흥미로운 질문들
그러나 오버로드가 가져다 준 유토피아는 인간에게 그리 이로운 것만은 아니다. 스스로 이룩하지 않은 이상사회에 던져진 인간은 그 이상을 향유할 자격도 역량도 없는 탓이다. 소설은 유토피아처럼 보였던 세상으로부터 인간이 어떻게 종의 절멸을 마주하게 되는지를 참담하게 그려낸다.
1953년 발표된 <유년기의 끝>은 여러모로 의미가 있다. 냉전과 그 대결이 우주탐사 경쟁으로 이어질 것임을 일찌감치 예견했고, 외계종족과 인간의 첫 조우로부터 이어질 수 있는 위기의 가능성을 색다르게 묘사했다. 이는 단순한 이미지로, 또 깊이 있는 주제의식으로 많은 작품에 변주되었다. 무엇보다 인간이란 존재의 목적이 어디에 있는지를 되새기게 한다는 점에서 이 작품이 갖는 의미가 결코 작지 않다.
소설의 첫머리, 한 천재적 인간이 백만의 다른 평범한 이와 동등한 가치를 갖는다는 인식, 또 여기 적을 수 없는 소설의 결말은 꽤나 흥미로운 질문으로 이어질 밖에 없다. 문명의 진보와 종의 존속, 개체의 평안 사이에서 인간이 진정으로 지향할 가치가 있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은 그저 개인의 삶 너머의 것을 좀처럼 생각하지 않는 현대의 인간에게 상당히 흥미로운 주제일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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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김성호 서평가의 얼룩소(https://alook.so/users/LZt0JM)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독서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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