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트넘의 새 캡틴 손흥민, 레전드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준목 기자]
'한국축구의 자랑' 손흥민이 대표팀에 이어 소속팀 토트넘 훗스퍼에서도 캡틴의 자리에 올랐다. 토트넘은 지난 8월 13일(이하 한국시간) 공식 SNS와 홈페이지 등을 통해 주장 완장을 찬 손흥민의 사진을 공개하며 주장 임명 사실을 발표했다.
토트넘은 그의 주요 커리어를 소개했다. 손흥민은 주장이 된 소감으로 "이 거대한 클럽의 주장이 된 것은 영광스러운 일이다. 정말 놀랍고, 자랑스러운 순간이다. 선수들에게는 경기장 안팎에서 모두가 주장이 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며 "새 시즌의 새로운 시작을 앞두고 토트넘의 셔츠와 주장 완장을 위해 모든 걸 바칠 것"이라는 각오를 다졌다.
엔제 포스테코글루 토트넘 신임 감독은 "손흥민은 경기장 안팎에서 훌륭한 리더십을 보유하고 있다. 우리의 새로운 주장이 될 만한 이상적인 인물"이라며 "손흥민은 모두가 인정하는 월드 클래스 선수이며, 라커룸에서 많은 선수들의 존경을 받고 있다. 손흥민은 토트넘, 그리고 한국에서 많은 것들을 성취해냈다"고 극찬했다.
손흥민의 주장 임명은 개인과 팀 역사에 있어서 모두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손흥민은 EPL을 비롯한 유럽 5대리그에서, 한국인 선수로는 2012년 박지성(당시 퀸즈파크 레인저스, QPR)에 이어 두 번째로 임시가 아닌 정식 주장으로 임명됐다.
그동안 토트넘의 주장은 손흥민이 입단한 첫 해인 2015~2016시즌부터 프랑스 출신 골키퍼 위고 요리스가 장기집권해왔다. 하지만 선수생활의 황혼기에 접어든 요리스가 토트넘과 결별을 앞두고 있으며, 부주장 해리 케인마저 독일 바이에른 뮌헨으로 이적하면서 손흥민에게 완장이 돌아가게 됐다.
아시아 선수가 세계 최고의 리그로 꼽히는 EPL, 그것도 토트넘같은 상위권 클럽에서 정식 주장으로 선임되었다는 것을 대단한 명예다. 축구 실력은 기본이고 언어와 문화, 라커룸 영향력과 구단의 지지 등 여러 가지 조건들이 두루 뒷받침되어야만 가능한 역할이다. 그만큼 손흥민이 토트넘에서 얼마나 많은 인정과 존중을 받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손흥민은 2015년 토트넘 입단 이래 매시즌 꾸준한 활약과 무수한 업적을 남기며 자타공인 월드클래스이자 구단의 레전드로 자리매김했다.
손흥민은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도 '역대 최장수 주장'을 맡고 있다. 2018년 9월 파울루 벤투 전 감독의 데뷔전에서 전임 주장 기성용의 뒤를 이어 주장을 맡게 된 손흥민은 유럽파가 소집되지 않은 대회를 제외하면 5년째 대표팀 부동의 캡틴으로 활약중이다. 독보적인 기량과 위상, 부드러운 리더십과 친화력, 선수단-감독-언론을 아우르는 소통능력 등으로 국민적 관심과 압박이 몰리는 대표팀에서도 구심점 역할을 훌륭하게 소화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손흥민에 앞서 EPL에서 최초의 한국인 주장이 되었던 박지성의 경우, 대표팀에서의 위상과 달리 QPR에서의 주장직은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다. 박지성은 2012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떠나 출전 기회를 잡기 위하여 QPR로 이적했고 구단주와 감독의 전폭적인 신임을 바탕으로 이적생임에도 첫 시즌부터 주장을 맡았다.
하지만 당시 QPR은 기존 선수단과 외부에서 영입한 이적생들간 팀워크가 그리 원만하지 않았고, 새로운 팀으로 갓 이적해온 박지성이 라커룸에서 적극적으로 리더십을 발휘할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설상가상 팀성적마저 좋지않으며 박지성을 영입한 마크 휴즈 감독이 경질되자, 새롭게 부임한 해리 래드냅 감독은 박지성의 주장직을 중도에 박탈하고 잉글랜드 출신의 클린트 힐에게 완장을 넘겼다. 그해 QPR은 결국 강등의 수모를 피하지 못했다.
다행히 손흥민은 박지성과는 상황이 다르다. 손흥민은 토트넘에서만 벌써 9년째 활약하며 팀과 리그내에서 모두 위상이 확고하다. 팀내에는 손흥민보다 더 오래 머무르고 있는 에릭 다이어(잉글랜드)나 벤 데이비스(웨일스)같은 영국계 선수들, 혹은 사우스햄튼 시절 주장직을 역임한 경력이 있는 호이비에르(덴마크)같은 후보가 있었음에도 굳이 손흥민을 주장으로 선택한 것이 좋은 증거다.
한편으로 손흥민의 주장 선임이 걱정도 되는 것은, 그만큼 복잡한 토트넘의 상황 때문이다. 오랜 세월 토트넘의 중추 역할을 맡아오던 요리스와 케인이 모두 떠났다는 것은 2010년대 중반 이후 손흥민과 함께 한 시대를 풍미한 토트넘의 황금세대가 해체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손흥민이 2015년 EPL에 처음 진출할 당시, 토트넘은 마우리시오 포체티노(첼시) 감독 체제에서 해리 케인-델레 알리-크리스티안 에릭센으로 이어지는 젊고 역동적인 스타들을 보유하며 신흥 강호로 발돋움하고 있었다. 여기에 손흥민이 자리를 잡으며 이들 4인방은 'DESK라인'이라고 불리우는 강력한 공격진을 구축했다. 또한 이들 외에도 위고 요리스-얀 베르통언-카일 워커-루카스 모우라 등 수준급 선수들이 즐비했다.
하지만 2023-24시즌 현재 토트넘에 남아있는 선수는 이제 손흥민 외에는 아무도 없다. 토트넘은 2018-19시즌 챔피언스리그 준우승 등을 통하여 강렬한 인상을 남겼지만 끝내 우승에는 실패했다. 주축 선수들이 우승에 대한 갈망 혹은 노쇠화 등으로 하나둘씩 팀을 떠나고 감독교체가 잦아지면서 토트넘은 점차 내리막길을 걸었다.
급기야 토트넘의 상징이자, 손흥민과 영혼의 콤비인 '손케듀오'로 불리웠던 케인마저 독일로 떠나면서 이제 손흥민은 정말로 홀로서기를 해야하는 상황이 됐다. 마치 <삼국지>에서 유비-관우-장비가 모두 세상을 떠난뒤 승상이 되어 홀로 촉한을 먹여살려야했던 제갈량의 처지에 연상되는 대목이다.
핵심선수들이 하나둘씩 팀을 떠나고 포스테코글루 신임감독은 빅리그에서는 아직 검증되지않은 지도자다. 토트넘은 다음 시즌 유럽클럽대항전 진출권조차 모두 놓치며 자국리그와 컵대회에서 성과를 내야하는 상황이다. 냉정히 말해 2023-24시즌의 토트넘을 더 이상 우승후보로 보는 전문가들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모든 것이 불확실한 미래속에서 손흥민은 이제 명실상부한 토트넘의 간판스타가 됐다. 지난 시즌의 부진을 딛고 개인으로서의 부활은 물론이고, 변화의 시대를 맞이한 토트넘을 다시 리그 상위권으로 이끌어야한다는 책임감이 막중한 새 시즌이 될 전망이다.
제갈량은 북벌과 천하통일의 꿈은 이루지 못했지만, 그의 인생을 요약하는 '국궁진췌 사이후이(麴窮盡膵 死而後已)'라는 표현처럼, 죽는 순간까지 전력을 다하여 촉한에 충성을 다 바쳤고 천년이 지난 지금도 세간의 존경을 받고 있다. 손흥민이 처한 상황이나 토트넘에 바치고 있는 헌신도 이와 비슷하다. 때로는 우승 커리어보다 더 중요한 가치도 있다. 어쩌면 토트넘에서 손흥민이 끝내 우승트로피를 추가하지 못할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흔들리지 않고 '토트넘의 레전드'가 되는 길을 착실하게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이승만에게 천황이 되라 권했던 이승만의 '광팬'
- "너도 자위 하잖아" 이런 엄마는 처음이야
- 연체는 싫은데 고금리 이자에 허덕... 어떻게 해야 하죠?
- "윤석열 정부, '정신 승리' 할 때 아냐... 한덕수·김현숙·이상민 경질해야"
- '월든' 초고가 여기에... 도서관들의 도서관
- 긁고, 부딪히고, 역주행까지... 손에 땀나는 운전일기
- 곶감처럼 생겼지만 맛은 전혀 다릅니다
- 캄보디아 이주노동자들 "건강검진 받으니 안심, 너무 좋아요"
- '핵오염수 규탄', 세종대왕 동상 올라가고 욱일기 찢어
- 장대비에 나온 교사들 "공평 무너진 교실, 왕자-공주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