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잔 외쳤던 윤도현, 그의 암 완치가 주는 특별한 위로

하성태 2023. 8. 13.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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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성태의 사이드뷰] 노래 '흰고래수염' 가사를 다시 생각하며

[하성태 기자]

내가 아주 어릴적에 난 많은 꿈을 꾸었지
말도 안되는 꿈만 꾸었어
그래도 그 중에 한가진 이루었지
 
꿈많던 어린시절 아득한 기억속에
타잔이라는 아저씨가 있었어
그 아저씰 너무 너무 좋아했었지
 
아아 나는 타잔
아아 누렁인 치타
옆집에 살던 예쁜 순인 제인
 
1994년 12월 발매한 1집에 수록된 윤도현의 데뷔곡 <타잔>은 꽤나 신기한 록 넘버였다. 요즘 틱톡 세대들은 존재조차 무지할 타잔이라니. '꿈 많은' 어린 시절을 회고하는 가사는 록답지 않게 무척이나 순수한데 또 윤도현의 보이스는 타고난 듯한 록커의 그것이었다. 경쾌한 하고 밝은 록넘버인 곡 자체의 완성도보다 윤도현의 절창과 함께 이 매력적인 록커의 가능성을 기대케 하는 마력만큼은 확실했다.

훗날 YB 앨범 리메이크 등으로 재발견되고 대중적 인기를 얻은 '너를 보내고', '가을 우체국 앞에서', '사랑 two'가 실린 윤도현의 1집은 실패를 맛봤다. 서태지와 아이들을 위시해 윤도현이 데뷔한 1990년대는 댄스 음악의 시대였고, 록의 대중적 전성기는 1980년대에 완성됐다. 심지어 문화대통령이란 수식어와 함께 90년대를 지배했던 서태지도 시나위 출신이었다.

당시 한국의 록신에 지대한 관심을 기울이며 쟁쟁한 록밴드들과의 인터뷰를 이어가던 영화 잡지 KINO와의 2005년 6월호 인터뷰에서 윤도현은 좋아하는 음악인으로 송창식과 김민기, 김창완과 도어즈를 언급하며 아래와 같이 반문한 바 있다. 90년대에 데뷔한 이십대 록커로서의 자신만만함과 결기가 뚝뚝 묻어나는 소신이 고스란히 전달된다(흥미롭게도, 해당 기사는 <기생충>을 제작한 곽신애 바른손이앤에이 대표가 기자 시절 쓴 인터뷰였다).

"이렇게 말하면 건방진다고 그러실테지만 음악하시는 분들, 그중에서도 신세대에 속하는 사람들이 음악을 하는 자세가 아닌 것 같아요. 처음에는 자신의 음악에 신념을 가지고 있다고 쉽게 변하고, 보여지기 위한 음악으로 돌아서는 것 같아요(...). 록을 한다고 목소리를 올리고 소리를 지르는 것보다, 소박하고 꾸밈없고 진실이 느껴지는 거, 바로 그런 음악이 록이 아니겠어요?"  
▲ '싱어게인 시즌2' 윤도현, 심사평 새 지평 윤도현 가수가 6일 오전 비대면으로 열린 JTBC <싱어게인 시즌2-무명가수전> 온라인 제작발표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싱어게인 시즌 2-무명가수전>은 무대가 간절한 가수들이 대중 앞에 설 수 있도록 '한 번 더' 기회를 주는 오디션 프로그램이다. 6일 월요일 밤 9시 첫 방송.
ⓒ JTBC
 

타잔의 정글 생존 스토리
 

타잔을 노래하던 이 이십대 록커는 이듬해 개봉한 <정글스토리>에 출연했다. '록커가 되려는 꿈을 안고 무작정 상경한' 도현을 윤도현이 연기했다. 경기도 문산에서 나고 자란 윤도현의 자전적 이야기가 반영되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신인 '촌놈' 록커가 정글 같은 음악 판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는 생존기를 그린 <정글이야기>라는 이야기라 윤도현의 어색한 연기도 크게 문제될 것이 없었다.

<장미빛 인생>으로 비평적 성공을 거둔 감독 시절 김홍준 현 한국영상자료원장이 두 번째로 만든 작품이었는데, 당시 충무로에서 보도 듣도 못한 신인 록커의 생존기이자 음악신을 그린 야심하거나 무모한 시도였다. 평단의 호평과 달리 흥행은 요즘 말로 '폭망'해 버렸는데 대신 고 신해철이 만든 OST는 40만장 넘게 팔리며 그야말로 대박을 쳤다.

윤도현은 <내 마음은 황무지> 리메이크, <절망에 관하여>, <아주 가끔은>, <70년대에 바침> 등 쟁쟁한 명곡으로 가득한 OST에 따로 참여하지 않았거나 못했다. 90년대는 그런 시대였다. 문산에서 온 스물 넷 자신만만하거나 혹은 건방진 록커가 '타잔'을 노래하고, 좌충우돌 충무로 예술 영화에도 출연했지만 또 스타 뮤지션의 OST 작업엔 배제되는 예측불허의 시도가 가능한 시대 말이다.

이후 윤도현이 YB를 결성하고 <오 필승 코리아>로 '월드컵 밴드'의 반열에 오른 것이 30대 초반이었다. '록커가 되려는 꿈을 안고 무작정 상경한' 90년대와는 또 다른 21세기가 열렸다. (KINO의 표현에 따르면) '살아있는 정신의 록을 꿈꾸는 타잔'이던 윤도현은 그런 의외의 실험이 가능했던 90년대를 거쳐 상업적이고 대중적인 음악을 요구하는 정글 같은 음악판에서 30년 가까이 살아남았다.

노래방에서 남성들이 즐겨 부르는 수 많은 록 발라드 히트곡을 보유한 가수이자 밴드 리더다. 어눌한 듯 재기발랄하고 촌철살인까지 갖춘 입담으로도 대중에게 어필했고, 그의 엔터테이너로소의 기질도 다 방면에서 발휘됐다.

음악 토크쇼 <윤도현의 러브레터>와 라디오 <두 시의 데이트>를 거쳐 지금은 <4시엔 윤도현입니다>를 진행 중인 현역 라디오 DJ이며 오디션 프로그램의 단골 멘토이기도 하다. <정글스토리>의 한(?)을 풀려는 듯 YB 멤버들과 함께 <온 더 로드 투>와 <나는 나비>라는 음악 다큐멘터리도 2편이나 남겼다.

무엇보다 김민기의 <개똥이>를 시작으로, 90년대 말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의 유다 역할을 소화했고, 이후 <하드라카페>, <헤드윅>, <광화문연가>, <원스> 등 유명 뮤지컬에서 <타잔>에서부터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던 예의 그 절창의 보컬 실력을 뽐냈다. 타고난 록커가 무대에의 도전을 통해 대중예술가로, 엔터테이너로 거듭나는 시간들이었다.

그야말로 치열하게 살았다. 내년이면 데뷔 30년이다. 2002 한일 월드컵을 기점으로 잡는다 해도 20년이 넘도록 대중들에게 사랑받았다. 그런 그가 어느덧 50대에 접어들었다. 그리고, 최근 뜻밖의 근황을 공개해 팬들을 놀라게 했다. 감춰왔던 암 투병과 완치 소식이었다. 윤도현이 지난 10일 소셜 미디어 글을 통해 지난 3년 간 휘귀성암 위말트림프종 투병과 최근 완치된 소식을 알린 것이다.

50대 맞은 윤도현의 암 투병 고백
 
태어나 전 죽음이란 것을 첨으로 진지하게 고민해 보기도 했구요. 정말 수많은 생각에 잠겨 혼자 울기도 해보고 방사선 치료 때문에 몸이 힘들어도 억지로 웃어보고 스케줄을 견뎌보기도 하면서 참 많은 교훈을 얻었던 시간이었습니다.
 
제가 겪어보니 암세포보다 사실 부정적인 마음이 더 위험한 것이라 걸 뼈저리게 느꼈기에 긍정의 마음으로 부정적인 모든 것들로부터 이겨내시길 바라는 맘으로 알립니다.
 
 가수 윤도현이 암 투병 사실을 뒤늦게 고백했다. 윤도현은 10일 새벽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글을 올려 "2021년 암 진단을 받았고 3년간 투병 끝에 이틀 전 완치 판정을 받았다"고 밝혔다.
ⓒ 인스타그램 갈무리
 

부모님에게도 최근에야 알렸다고 했다. 2001년 뮤지컬 <광화문연가>에 참여할 무렵 판정을 받은 이후 치료에 매진했다고 한다. 한때 암환자들을 응원하는 무대에 오르기도 했던 윤도현. 그가 후배 록커에게 최근 건넨 조언은 돌이켜보면 무척 의미심장했다.

윤도현은 지난 11일 방송된 KBS <더 시즌즈-최정훈의 밤의 공원>에서 후배 최정훈에게 "록을 하려면 건강도 신경을 많이 써야 한다. 안 아프고 사고 안 치고 살아야 한다"라며 등을 두드렸다. 그가 암 투병 소식을 알리기 직전 녹화된 방송에서 한 이 조언이 남다른 무게감으로 다가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리라.

윤도현은 "공포와 고립감"을 던져주는 암을 이겨내기까지의 마음가짐을 전하기 위해 충격을 받을 팬들에게도 알리지 않았던 사실을 완치 판정 이후 공개했다고 했다. 기사가 쏟아지자 그는 11일 소셜미디어에 호주 오페라하우스 공연 소식과 함께 재차 "투병중이거나 완치되신 분들의 수많은 댓글들 모두 다 읽고 공감하였습니다. 힘내서 함께 이겨내 봐요!"란 메시지를 남겼다.

완치 판정 후 윤도현이 글을 통해 건넨 자기위로가 또 다른 암 환자들과 그 가족들에게 긍정적인 위로로 거듭나고 전파되는 순간이었다. 개인적으론, 9년 차 암환자 가족으로서 암을 이겨내려는 의지와 긍정적인 마인드야말로 암환자들에게 절실하게 요구되는 덕목이자 가장 힘겨운 부분이라는 걸 간접 경험해왔다. 윤도현의 경험에서 비롯된 위로는 암환자들이나 그 가족들에게 큰 힘으로 다가갈 것이 분명하다.

물론 그도 암 투병에 앞서 시련이 없던 것은 아니었다. 10여 년 전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던 국정원 블랙리스트 사건이 바로 그런 시기였다. 시련을 받을 때도 그는 공연과 뮤지컬 등 활동에 매진했고, 동료나 타인들을 위로하기도 했다.

윤도현의 위로

국정원 블랙리스트 사건의 파장이던 한창이던 2012년 11월, YB(윤도현 밴드)는 인터넷 생방송 <온 에어 와이 비(ON-AIR YB)>를 시작했다. 방송 진행자로 한창 사랑을 받던 윤도현의 KBS 하차설이 나돌던 시기였다. 첫 방송을 축하하기 위해 '절친' 김제동이 출연했다. 인기 절정이던 김제동 역시 블랙리스트로 방송에서 줄줄이 하차하던 시기였다.

돌발 상황이었다. 김제동은 술에 취해 있었고, 횡설수설하는 그의 모습은 생중계를 통해 고스란히 중계가 됐다. 댓글 창에 설왕설래가 이어지자 김제동은 "행패가 아니라 '10년 지기' YB의 새출발을 축하해 주러 왔다"며 혀 꼬인 수다를 이어갔다. 이내 김제동은 카메라 밖 스튜디오 바닥에 쭈그려 앉았다.

당황한 윤도현은 그런 '절친'의 모습을 지켜봤고, 생중계는 1시간이나 이어졌다. 윤도현이 그렇게 방송에선 절대 내비칠 수 없는 슬픔을 발산하는 김제동의 '비방용' 언행을 큰 질타나 논쟁 없이 지켜보는 것 자체가 무언의 위로였을 수 있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그 역시 같은 블랙리스트 피해자로서 김제동의 억울함을 어느 정도 공감했으리라.

YB의 '흰고래수염'은 2012년 MBC·KBS·YTN 방송사 파업 당시 응원가(파업송)로 널리 불렸다. 윤도현과 YB는 뮤직비디오 촬영을 직접 진두지휘했고, 파업 콘서트에도 동참했다. 윤도현의 노래와 목소리가 파업 당사자들은 물론 수많은 이들에게 위로를 전염시키는 촉매제가 됐다고 볼 수 있다. 데뷔 25주년이던 지난 2019년 윤도현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소감을 전한 바 있다.

"오랫동안 생명력을 갖고 있다는 게 저희 장점이라 생각해요(...). '흰수염고래'의 경우도, 발표 당시에는 <나는 가수다> 출연 직후였는데도 정말 반응이 없었어요. 하지만 그 후 다른 분들이 결혼식 축가로 부르거나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불러주셨고, 방송 3사 파업 때도 불러주시더라고요. 저희가 그 자리엔 없어도 저희 노래를 불러주시면서 이 노래가 다시 사랑받게 됐어요.

그때 그런 생각이 들었죠. '우리가 음악을 이래서 하는구나'라고요. 이런 음악들을 대중에 들려주면 각자 상황과 역할에 맞게 재조명되고, 때로는 치료제가 되거나 용기를 더해주는 친구가 되는 거고요. 저희가 음악을 하는 이유는 이런 데에 있는 거라 생각해요." - 2019년 11월 '미디어SR'과의 인터뷰 중에서

때마침, 12일 방송된 KBS <불후의명곡> '울산 록 페스티벌' 2부에 출연한 YB는 콘서트 장에서 윤도현의 건반과 보컬로 '흰수염고래'를 들려줬다. 공연장 스크린엔 '언젠가 우리도 그런 세상에서 살 수 있기를'이란 마지막 문구에 앞서 이런 자막이 흘렀다.

'우리도 (포식자의 힘을 자랑하지 않는) 흰수염고래처럼 우리도 큰 힘, 권력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나보다 약한 누군가를 괴롭히거나 짓밟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사는 사회도 그러하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만든 노래입니다.'

<흰수염고래> 가사도, 후일담 소회 모두 윤도현답다. 그는 너무나 진지해서 조금은 생경한 <타잔>의 록커였다. 그게 30여 년 전이다. 이제는 정글에서 생존해내며 만들어온 그 록 음악으로, 노래로 위로를 건네는 뮤지션이자 엔터테이너가 됐다. 블랙리스트도, 암도 이겨냈다. 

그렇게 "소박하고 꾸밈없고 진실이 느껴지는" 음악을 해왔다. 지금은 그의 자기위로도, 10여 년 전 노래도 대중들에게 또 다른 위로와 감동을 전하는 촉매제로 기능할 수 있게 됐다. 죽음에의 공포를 견뎌낸 50대의 윤도현이, 그의 음악이 계속해서 궁금한 이유가 이렇게도 명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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