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 입학, 베를린 필의 스타…그가 韓 어린이들 만나 한 말
키즈 오케스트라 클라리넷 단원들에게 7일 레슨
"함께 연주하기는 정말 어렵지만 정말 재미있다"
16일 아이들과 함께 연주, 20일에는 경기필 지휘
안드레아스 오텐잠머(34)의 프로필은 어딘지 비현실적이다. 오스트리아 태생인 그는 클라리넷을 14세에 처음 배웠다. 그런데 시작한 지 8년 만인 22세에 베를린 필하모닉의 수석 주자로 뽑혔다. 당시엔 대학생이었다. 미국 하버드 대학에서 전공을 결정하기 전이었던 신입생. “음악뿐 아니라 스포츠를 좋아해서” 선택한 학교라고 했다. 베를린필에 오게 되면서 하버드대는 그만뒀다.
가족마저 놀랍다. 아버지 에른스트는 빈 필하모닉의 이전 수석이었고, 형 다니엘은 현재 빈 필하모닉의 수석이다. 안드레아스 오텐잠머는 첼로로 음악을 시작해 피아노를 치다 클라리넷으로 바꿨다. 지금은 베를린필의 간판 스타이자 세계의 시선을 받는 음악가다.
그런 그가 한국의 어린 클라리네티스트들 앞에 섰다. 7일 오전 서울 잠실의 롯데월드 타워. 초등학교 4학년~중학교 2학년인 아이들이 클라리넷을 들고 오텐잠머의 앞에 앉았다. 롯데백화점이 올해 창단한 키즈 오케스트라의 클라리넷 단원들이다. 오텐잠머는 이들의 창단 연주회에서 지휘를 맡았다. 본격적인 오케스트라 연습을 앞두고 클라리넷 파트만 따로 지도하는 자리였다. 그는 이 자리에서 “오케스트라 연주는 독주보다 훨씬 어렵다. 하지만 정말 재미있다”고 강조했다.
첫 곡은 에드바르드 그리그 ‘페르귄트 모음곡’ 중 ‘아침 기분’. 고향을 떠나 유랑하는 주인공이 잠에서 깨어나 맞이하는 아침을 그린 음악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멜로디는 플루트 주자들이 연주한다. 클라리넷 연주자들은 네 마디 동안 화음을 일제히 불고 있어야 한다. 오텐잠머의 손짓에 맞춰 어린이들이 잔뜩 긴장한 얼굴로 화음을 시작했다. 이날 플루트는 없었으므로 이들의 소리가 고스란히 잘 들렸다. 길게 한 음씩 불면 되는 간단한 연주였지만 쉽지 않았다. 각자의 소리가 따로 들렸다.
오텐잠머가 웃음을 지으며 손을 들어 연주를 멈췄다. “다시 한번 해봅시다. 음이 시작할 때 연주를 시작하는 게 아니에요.” 그는 음을 내기 전에 숨을 미리 쉬고 있으라고 했다. “우리가 항상 숨을 들이쉬고 내쉬듯이, 미리 호흡하고 있어야 해요. 숨을 쉬면서 모두가 서로를 보고, 첫 음을 숨 쉬듯이 불어내는 거죠.” 그는 어린이 단원들에게 서로의 호흡을 의식하며 함께 하는 중요성에 관해 설명했다. “오케스트라 연주는 사회적이에요. 축구 경기처럼 한 팀으로 움직여야 하지.” 아이들이 그 말을 이해하려 애쓰는 사이 오텐잠머는 다시 웃음을 지었다. “나와 우리 베를린필 단원들도 어떨 때는 어렵지만 어떨 때는 정말 재미있어요.” 그는 또 말했다. “재미가 정말 중요해!”
아이들의 화음은 점점 나아졌다. 이번에는 좀 더 하나가 된 호흡으로 소리가 뻗어 나왔다. 이제 오텐잠머는 기술적인 팁을 전수하기 시작했다. “클라리넷은 크게 불면 음정이 떨어지고 작게 불면 음정이 올라가요. 그래서 크게 불 때는 음정을 올리려고 노력해야 하고 작게 불 때는 반대로 해야 음정이 유지되죠.” 그는 더 자세한 비법을 전했다. “입술을 웃는 모양으로 만들면 음정이 떨어지지 않고 올라가요.” 아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음악적 상상력을 전수하는 시간도 있었다. “우리는 음표 하나하를 연주하지만, 사람들에게는 캐릭터가 들려야 합니다. 지금 연주하고 있는 이 부분이 어떤 캐릭터인지 설명해볼 사람?” 이때 연주하고 있었던 작품은 ‘페르귄트 모음곡’ 중 ‘산속 마왕의 궁전에서’. 4분음표가 연주되는 동안 낮은 소리를 내는 악기들이 절뚝거리듯 이끌어가는 음악이다. 아이들이 대답을 머뭇거리자 오텐잠머는 “도둑이 집에 들어 물건들을 몰래 훔쳐가는 것 같지 않아?”라며 웃음을 불러냈다. 그는 “클라리넷이 표현할 수 있는 캐릭터는 많다”며 ‘피터와 늑대’에서 고양이, 베토벤 ‘전원’ 교향곡의 뻐꾸기를 예로 들었다. 그리그도 클라리넷이 뒤집힌 뻐꾸기 소리를 내도록 작곡했다.
레슨을 끝낸 오텐잠머는 본지와 인터뷰에서 “오케스트라 연주는, 특히 아이들의 경우엔 정말 재미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혼자 하는 독주보다 잘하기가 몇배는 어렵기 때문에 재미를 찾아내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는 것. 이날 그룹 레슨이 끝나고 한명씩 독주곡을 연주하는 시간이 있었다. 이때 어린 연주자들은 어렵고 빠른 음악을 거의 오차 없이 완벽하게 연주해냈다. 단순한 음표의 오케스트라 작품보다 어려운 독주곡들을 더 잘 표현한 것. 오텐잠머는 “당연히 합주가 더 어렵다”며 “자신의 버릇을 버려야 하고 다른 여러 사람을 봐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참여한 학생들보다 늦은 나이에 클라리넷을 시작했던 자신의 경우를 떠올리며 “나 역시 오케스트라가 굉장히 어려웠던 기억이 있다”고 덧붙였다.
오텐잠머는 이들을 비롯한 키즈 오케스트라 77명과 함께 16일 롯데콘서트홀에서 ‘페르귄트 모음곡’을 들려준다. 이날 공연에는 지휘자 이민형과 피아니스트 신창용이 함께해 시벨리우스ㆍ모차르트ㆍ라일리ㆍ비제를 연주한다. 오텐잠머는 2021년 지휘자로 데뷔했고 지난해 한국에서도 KBS교향악단을 지휘했다. 올여름 롯데콘서트홀 여름 음악제인 ‘클래식 레볼루션’의 예술감독을 맡아 11일 서울시향을 지휘했고, 20일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함께 레너드 번스타인의 심포닉댄스 등을 들려준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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