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은모의 酒저리]J&J브루어리, 둘이 만나 하나가 된 술

구은모 2023. 8. 13. 11:1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17> 경기 용인 '줄리아와 주휘의 브루어리(J&J Brewery)' ①
전통주에 대한 관심, 부부 이름 담은 양조장으로 이어져
청혼, 과하주부터 탁주·약주·소주까지…우리 술 매력
다양한 발효제로 술마다 각기 다른 특성 부여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별들은 벌들처럼 웅성거리고

여름에는 작은 은색 드럼을 치는 것처럼

네 손바닥을 두드리는 비를 줄게

과거에도 그랬듯 미래에도 아첨하지 않을게

어린 시절 순결한 비누 거품 속에서 우리가 했던 맹세를 찾아

너의 팔에 모두 적어줄게

내가 나를 찾는 술래였던 시간을 모두 돌려줄게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벌들은 귓속의 별들처럼 웅성거리고

나는 인류가 아닌 단 한 여자를 위해

쓴 잔을 죄다 마시겠지

슬픔이 나의 물컵에 담겨 있다 투명 유리 조각처럼

진은영, 「청혼」

시인은 투명 유리 조각처럼 날카로운 슬픔이 담긴 쓴 잔일지라도 한 여자를 위해 죄다 마실 수 있다고 말한다. 들이키면 치명적인 고통과 상처를 안겨줄 수 있음을 알면서도 말이다. 시인이 슬픔과 고통을 감수하더라도 함께하길 청하는 건 결과가 어떠하든 함께하는 순간과 과정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함께 했을 때 기쁨은 우리의 기쁨이 되고 슬픔도 우리의 슬픔이 된다.

결혼은 서로 다른 삶을 살아가던 두 사람이 하나의 운명 공동체로 거듭나는 일이며, 청혼은 예측할 수 없는 운명이 가져올 기쁨과 슬픔 모두 함께라면 기꺼이 끌어안겠다는 결연하면서도 용기 있는 제안이다. 시인처럼 ‘동고동락(同苦同樂)’을 서약하고 두 사람이 함께 만들어가는 양조장이 있다. 경기 용인 ‘줄리아와 주휘의 브루어리’다.

좋은 술에 대한 열망…양조장 설립으로 이어져

대단한 계획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서울에서 외국계 제약회사에 다니던 이주휘 씨가 사표를 던진 건 어쩌면 조금 지쳐서였을지 모른다. 수년간 반복되는 직장생활을 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껴봤을 법한 권태 혹은 불화가 원인이었을지도 모른다. 정확한 원인이 무엇이었든 그는 잠시 쉬며 시간을 갖고 싶었다.

자신만의 시간을 보내던 그의 시선이 옮겨간 곳은 우리 술이었다. 평소 술을 즐기긴 했지만 직접 담아서 마실 정도의 관심은 아니었다. 하지만 운명에 이끌린 듯 막걸리 학교에 입학했고, 그곳에서 프리미엄급 전통주를 만나며 우리 술에 대한 마음은 더욱 깊어졌다. 그는 “우리나라에도 이 정도의 높은 수준의 술이 있다는 게 너무 놀라웠고, 다양하게 경험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더욱 몰두했다. 고문헌 속에 나오는 술들을 찾아 지방으로 양조장 기행을 다니는가 하면 한국전통주연구소 등을 찾아다니며 이론적 토대도 계속해서 쌓아 올렸다.

취미로 시작한 일이었지만 좋은 술을 향한 그의 열망은 갈수록 커졌다. 처음엔 별 볼 일 없던 술이었지만 끊임없이 연구하고 다양하게 시도해보면서 품질도 날로 개선됐다. 긍정적으로 바뀌는 주변의 평가도 그를 자극했다. 결국 자신만의 술을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한다. 그는 “지금 생각하면 조금 무모한 결정이었지만 좋은 술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정말 컸다”며 “무엇보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고 싶었다”고 당시를 돌아봤다.

제이앤제이 브루어리 양조실 내 발효조에서 술이 발효되고 있는 모습.

그렇게 작업실을 마련하고 사업을 구상하기 시작했을 무렵 새로운 문이 하나 더 열렸다. 지금의 아내인 배경미 씨와의 만남이었다. 고등학생 시절 미국으로 건너가 피아노와 건축 인테리어를 전공한 배 씨는 당시 20년 넘는 미국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에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두 사람은 취미로 다니던 승마클럽에서 처음 만났는데, 배 씨는 그때를 회상하며 “처음 봤을 때는 산속에서 나올 법한 모습으로 매일 술만 빚던 아저씨였는데 언젠가부터 눈에 콩깍지가 씌더니 결혼까지 하게 됐다”며 웃었다.

하나가 둘이 되자 사업에도 속도가 붙었다. 2019년 주류제조면허를 취득하면서 두 사람의 양조장은 정식으로 운영을 시작하게 됐다. 두 사람은 아내의 영어 이름인 줄리아와 남편의 이름인 주휘의 이니셜을 따서 줄리아와 주휘의 브루어리, ‘제이앤제이(J&J) 브루어리’라고 양조장 이름을 지었다. 이주휘 J&J 브루어리 부대표는 “한국인에게는 조금 생소할 수 있지만 브루어리(Brewery)는 말 그대로 양조장이라는 뜻”이라며 “한국의 술이라고는 하지만 단순히 한국인만을 위한 술이 아니라 외국인도 즐길 수 있는 술을 만들고 싶다는 우리 술의 지향점을 보여주기 위해 브루어리라고 짓게 됐다”고 설명했다.

경기 용인 '제이앤제이 브루어리' 외관

청혼, 두 술이 더해져 하나의 술이 되다

‘청혼’ 시리즈는 J&J 브루어리가 세상에 처음으로 선보인 제품이다. 청혼의 시작은 이 부대표가 농림축산식품부가 주최하고 한식재단이 주관하는 ‘주예사 양성과정’에 지원한 201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해당 과정은 완제품 형태의 술을 제출해야 하는데, 그때 만든 술이 과하주였다. 과하주(過夏酒)는 ‘여름을 넘기는 술’이란 뜻으로 발효주에 증류한 소주를 넣어 다시 발효·숙성시키는 방식으로 도수를 높인 술이다. 일반 발효주보다 도수가 높은 만큼 여름철 고온에서도 술이 상하지 않아 오랜 기간 두고 마실 수 있다.

이 부대표의 마음이 과하주에 가닿은 것은 청주와 소주 두 종류의 다른 술이 더해져 새로운 술이 만들어진다는 의미가 와닿았기 때문이다. 그는 “두 가지 술이 만나서 하나의 더 좋은 새로운 술을 만들어낸다는 의미가 마음에 들었다”며 “사람으로 치면 성격이 다른 두 사람이 만나 서로 사랑하고 결혼해 하나가 된다는 것과 의미상으로 연결이 된다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제이앤제이 브루어리 과하주 '청혼 골드'

이렇게 만들어진 청혼 과하주는 훗날 양조장 운영을 시작하며 골드라는 색상이 이름 뒤에 붙게 된다. 이 부대표는 “양조장 문을 열면서 과하주를 포함해 우리 술의 기본이 되는 탁주와 약주, 소주를 청혼이라는 이름으로 묶어 선보여야겠다고 생각했다”며 “술이 가진 각자의 성격을 반영해 색깔로 표현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현재 청혼 시리즈는 과하주인 ‘청혼 골드’를 비롯해 탁주인 ‘청혼 화이트’, 약주 ‘청혼 블루’, 증류식 소주인 ‘청혼 레드’까지 총 4종으로 구성돼 있다.

청혼 시리즈 4종은 형제로 세상에 알려졌지만 실제로 같은 부모에게서 나온 자식들은 아니다. 네 가지 술은 모두 다른 효모를 사용해 따로 빚는 술이기 때문이다. 대다수 양조장은 하나의 모주(母酒)를 빚어 막걸리와 약주도 만들고 증류해 소주도 만든다. 한 배에서 나온 형제들이란 의미다. 하지만 J&J 브루어리는 모든 술에 다른 발효제를 사용한다.

발효제가 달라지면 자연스레 발효 조건도 달라져 관리에도 그만큼 손이 많이 간다. 이런 수고로움에도 불구하고 모든 술을 따로 빚는 건 각각의 술마다 얻고자 하는 특징을 제대로 살리기 위해선 그에 알맞은 발효제를 사용해 해당 발효제의 특성에 맞춰 발효 관리를 했을 때 비로소 의도했던 술을 만들 수 있다는 이 부대표의 지론 때문이다. 그는 “양조라는 건 발효를 통해 다양하게 응용할 수 있는 것”이라며 “맥주 양조를 통해 발효제를 다르게 사용해 술의 개성에 변화를 주는 방법을 배웠고 이를 실제 양조에도 적용하고 있는 것”이라고 덤덤하게 말했다.

모든 술을 따로 빚어내지만, 이들 술을 하나로 꿰는 공통의 캐릭터와 지향점은 존재한다. J&J 브루어리는 깔끔하고 담백한 술을 추구한다. 이 부대표는 “단맛을 절제하는 형태로 달지 않게 만들고 있다”며 “전통주는 대개 단맛이 강조된 형태로 많이 보급돼 있는데 그보다는 산미와 단맛의 균형을 이루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음식과의 조화도 신경 쓰는 부분이다. 그는 “우리 술이 음식과 어우러지는 술이길 바란다”며 “잔에서 즐겁게 음미할 수 있도록 향을 충분히 살릴 수 있도록 만들고 있고 앞으로도 그런 방식으로 술을 빚어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구은모 기자 gooeunmo@asiae.co.kr

Copyright ©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