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폭탄이 남긴 '수억 빚더미'…"지원금 300만원뿐" 中企의 눈물 [르포]

신진호 2023. 8. 13.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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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오후 충남 부여군 장암면 석동리 농업회사법인 비이에프부여㈜. 공장 입구에 종이상자를 포장하는 테이프가 어른 키만 한 높이로 쌓여 있었다. 원래는 상자에 담겨 있어야 하지만 지난달 중순 내린 비로 물에 젖어 못 쓰게 됐다. 직원들은 하나라도 더 써볼까 하는 마음에 햇볕에 테이프를 말렸다.

지난달 14일 내린 폭우로 공장이 침수된 충남 부여군 소재 중소기업 비이에프부여㈜ 내부 모습. 직원들이 공장을 정리하고 재가동을 준비 중이다. 신진호 기자

공장 안쪽으로 들어가자 의자와 각종 사무용품, 포장용 종이상자가 눈에 들어왔다. 물에 잠겨 흙투성이가 됐던 의자는 직원들이 물로 씻어내고 걸레로 닦아 제 모습을 찾았지만, 바퀴와 틈새에는 누런 흙이 남았다. 직원들은 “하루라도 빨리 의자에 앉아서 일해야 하는데 기약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침수로 기계·설비 고장…폐업도 고려


토마토 관련 제품을 가공하고 포장하는 설비는 상황이 더 심했다. 철재로 만든 기계 설비는 물에 잠겼던 흔적이 그대로 남았다. 전문가를 불러 기계를 수리하고 전기모터와 부품을 교체했지만, 재가동이 될지는 확신할 수 없다고 한다. 부여군과 비이에프부여㈜ 관계자는 폭우에 따른 침수 피해가 2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공장을 재가동하려면 최소한 몇억원은 더 필요해 폐업도 불가피한 상황이다.

공장은 2021년 10월 가동을 시작해 아직 2년이 되지 않았다. 제품을 하루 평균 4~5t 정도 생산한 뒤 쿠팡 등 오픈마켓과 기업·학교 등에 납품해왔다.

지난달 14일 내린 폭우로 공장이 침수된 충남 부여군 소재 중소기업 비이에프부여㈜ 직원들이 물에 젖은 물건들을 말리고 있다. 신진호 기자

비이에프부여㈜ 관계자는 “공장을 짓고 거래처에 대금을 지급하느라 여유 자금이 없다. 추가 대출을 받아야 하지만 금액이 제한적이라 사실은 막막한 상태”라고 말했다.


특별재난지역 선포, 중소기업은 지원 제외


지난달 중순 충청과 경북 지역에 내린 폭우로 막대한 인명과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정부는 충남 부여와 청양 등 전국 13개 지역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하고 경제적 지원과 함께 복구를 돕고 나섰다. 특별재난지역 선포로 농민은 농업 시설에 대한 피해 복구비, 소상공인은 생계지원금 등을 받게 됐다. 유실·매몰된 농경지를 복구하는 비용도 모두 정부가 지원한다. 반면 중소기업은 정부에서 지원하는 생계비 300만원이 전부다.

충남 부여에서는 집중호우로 10개 중소기업이 피해를 봤다. 피해 금액만 37억2100만원에 달한다.

지난달 14일 내린 폭우로 침수 피해를 입은 충남 부여군 소재 중소기업 비이에프부여㈜가 가동을 중단한 채 불이 꺼져 있다. 신진호 기자

부여군 구룡면 태양리 소재 '유성기와'도 공장이 기계와 시설이 물에 잠겼다. 피해 규모는 4억6000만원 정도다. 배수 작업을 마치고 공장을 정리 중이지만 가동은 어려운 상황이다. 유성기업은 특히 공장에 쌓아 놓은 원자재 피해가 커서 가동에는 시간이 더 필요할 것으로 관계 당국은 전망했다.


현금 300만원 외 대출이 전부…결국 빚더미


현행법상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방안은 ‘소상공인 300만원 지원’ 뿐이다. 정부와 자치단체에서 지원하는 세금 납부 유예와 복구자금 대출 제도가 있다. 이런 제도는 나중에 어차피 기업 부담으로 돌아오기 도움이 안된다고 한다. 자치단체가 앞다퉈 “금융 지원 상담을 신속하게 진행, 자금을 제때 지원하겠다”고 했지만, 현장에서 공감하지 못하고 있다. 익명을 원한 한 중소기업 대표는 “지금 정부 대책은 기업을 하지 말라는 것과 다름없다”며 “투자 여력이 없는 중소기업 여건을 한 번만 고려해달라”고 말했다.
지난달 17일 오후 박정현 충남 부여군수(가운데)가 침수 피해를 입은 장암면 소재 중소기업을 찾은 배창우 충남지방중소벤처기업청장(오른쪽)에게 피해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정현 부여군수는 피해 현장을 방문한 중소벤처기업부 관계자와 정진석 국회의원에게 정부 차원의 지원을 요청했다. 재난 피해를 본 중소기업에 대출 등 간접적인 지원이 아닌 재난지원금과 같은 직접적이고 효과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도 했다. 부여군의회는 지난달 31일 ‘집중호우 피해에 따른 실질적인 중소기업 보상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건의안을 채택하고 이를 대통령실과 국무총리, 여야 대표, 행정안전부 장관,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등에 보냈다.

박정현 부여군수 "자연재해 복구에 공장도 추가"


박정현 군수는 “침수 피해 기업들은 공장 가동이 중단돼 거래가 끊기고 위약금을 무는 실정”이라며 “(행정안전부) 자연재해 복구비용 산정 기준에 공장 피해도 추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달 14일 내린 폭우로 공장이 침수된 충남 부여군 중소기업 비이에프부여㈜ 내부 모습. [사진 부여군]

신진호 기자 shin.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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