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방산 뒤쫓는 T-방산…튀르키예 TF 칸, KF-21 경쟁자 되나 [이철재의 밀담]
지난달 27일(현지시간) 아제르바이잔 국방부는 튀르키예가 개발 중인 5세대 전투기인 TF 칸(KAAN) 사업에 참가한다는 내용의 계약을 개발사인 튀르키예항공우주산업(TAI)와 맺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은 “튀르키예와 아제르바이잔 사이 새로운 연대의 상징”이라고 말했다.
3일 셀라이 사미 투펙치 튀르키예 국방부 차관은 “이달 안에 TF 칸 사업에 합류하는 방안을 놓고 파키스탄과 협의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지난해부터 K-방산의 진격이 거세다. 국제 방산시장에서 잇따라 대규모 수주를 따내 ‘민주주의의 무기고(Arsenal of Democracy)’라 불리고 있다. 그런데 T(튀르키예)-방산의 위세도 만만찮다. 튀르키예는 한국처럼 대박을 터뜨리진 않았지만, 중박과 소박으로 또박또박 한국을 쫓아가고 있다.
그리고 튀르키예의 TF 칸이 한국 KF-21 보라매의 강력한 경쟁자로 등장한다는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5세대로 개발 목표를 끌어올린 TF 칸
지난 5월 1일 튀르키예 앙카라주 카라만카잔의 TAI 본사에서 튀르키예 최초의 국산 전투기의 시제 1호기 출고식(롤아웃) 행사가 열렸다.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은 전투기 조종석에 오른 뒤 칸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칸은 튀르키예말로 ‘왕 중 왕’이라는 뜻이다. 그전까진 ‘국산 전투기’라는 의미의 튀르키예말 약자인 MMU라고 불렸다.
그리고 TAI는 다음 날인 2일 TF 칸의 고속 활주 테스트를 진행했다. 이는 활주로에서 엔진을 이륙 속도 직전까지 가속하는 시험이다. 시제 1호기가 지난해 4월 조립을 시작한 뒤 일정에 따라 착착 진행 중이라고 TAI 측이 강조했다.
튀르키예의 첫 국산 전투기 사업은 2016년 8월 5일 TAI가 제작사로 선정되면서 시작됐다. 튀르키예는 미국의 스텔스 전투기인 F-35A 라이트닝Ⅱ를 주력으로 삼고, 보조 전투기로 TF 칸을 생각했다. 튀르키예는 F-35의 공동개발국이었다.
그런데 튀르키예가 2017년 러시아로부터 지대공 미사일인 S-400을 사온다고 발표하면서 사달이 났다. 미국은 튀르키예가 F-35와 S-400을 함께 운용할 경우 F-35의 정보가 러시아로 넘어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리고 2019년 7월 튀르키예를 F-35 공동개발 프로그램에서 내쫓았다. 그러자 TF 칸의 개발 목표는 몸집을 키워 보조 전투기에서 주력 전투기로, 본격적인 5세대 스텔스 전투기로 각각 높아졌다.
2029년 튀르키예 공군에 인도하는 게 목표
튀르키예는 한때 한국을 차세대 전투기 사업(TF-X·지금의 TF 칸) 파트너로 고려했다. KF-X(KF-21 보라매) 사업의 지분 20%까지 투자하는 방안을 검토했다고 한다. 그러나 조건이 안 맞아 무산됐다. 이후 한국과 튀르키예는 각각 KF-21과 TF 칸으로 진로를 확정했다.
전반적으로 KF-21이 개발 일정에서 TF 칸을 훨씬 앞섰다. KF-21은 지난해 7월 19일 시제 1호기가 첫 비행에 성공한 뒤 초음속 비행, 복좌기(2인승) 비행, 무장 분리 시험 등을 통과했다. KF-21은 2026년부터 공군에 인도되며, 2032년까지 모두 120대가 생산될 예정이다.
TF 칸은 아직 갈 길이 멀다. TF 칸 1호기의 최초 비행은 12월로 예정돼 있다. 2026년까지 3대의 시제기가 더 만들어진다. 그리고 모두 10대의 전투기가 2029년 튀르키예 공군에 넘겨져 주력 전투기인 F-16을 대체하는 게 TAI의 바람이다.
이슬람 국가들이 TF 칸의 잠재적 시장
TF 칸은 KF-21보다 개발에서 늦지만, 수출 잠재력은 상당하다. TF 칸은 본격적인 5세대 전투기다. 4.5세대인 KF-21이 앞으로 5세대와 가까운 스텔스 전투기로 업그레이드할 계획이 있지만, 4.5세대는 결국 4.5세대다. TF 칸은 KF-21보다 몸집이 커 무장량도 더 많을 예상이다. 가격 경쟁력도 KF-21보다 높을 가능성이 크다. 대략 1대당 1억 달러일 것이란 예상이 나오고 있다.
게다가 TF 칸은 잠재 시장이 넓다. 아제르바이잔과 같은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튀르키예와 같은 이슬람권이면서 문화적으로 매우 가깝다. 파키스탄 등 서아시아 국가들은 5세대 전투기 수요는 있지만, 경제력이 넉넉하지 못해 튀르키예의 TF 칸에 관심을 많이 갖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ㆍ아랍에미리트(UAE) 등 중동 국가들은 이스라엘의 방해 때문에 F-35 등 미국의 5세대 전투기를 확보하긴 어렵다. 이들 국가는 자말 카슈끄지 피살 사건 등으로 튀르키예와 관계가 서먹서먹했는데, 최근 다시 좋아지고 있다. 앞으로 막대한 개발비를 대준 뒤 TF 칸을 수입할 수도 있다.
한마디로 KF-21의 수출 시장으로 꼽히는 국가들과 상당히 겹친다. KF-21이 TF 칸의 행보를 잘 지켜봐야 할 이유다.
전 세계 12위 방산 대국 튀르키예의 추격
튀르키예의 T-방산도 잘 나가고 있다. 스웨덴의 스톡홀름 평화연구소(SIPRI)에 따르면 튀르키예는 2018~2022년 전 세계 12위 방산 수출국이다. 한국은 같은 기간 9위다. 2013~2017년과 비교하면 성장세는 69%(한국 74%)다.
미국의 디펜스뉴스가 선정한 2023년 100대 방산기업에 한국은 한화(30위), LIG넥스원(52위), 한국항공우주산업(KAIㆍ59위) 등 3개가 올라있다. 튀르키예는 아셀산(49위), TAI(67위), 로켓산(86위), ASFAT(100위) 등 4개가 순위에 있다.
밀리터리 전문 자유 기고가인 최현호씨는 “튀르키예는 1974년 키프로스 문제에 개입한 뒤 미국의 무기 금수 때문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이후 자체 방위사업 역량을 강화하려고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초반 맹활약한 무인기인 바이락타르 TB2는 튀르키예의 대표적 베스트셀러다. 튀르키예는 전차·공격헬기·훈련기·초계함 등도 수출하고 있다.
튀르키예의 방산 기술력도 수준급이다. 튀르키예는 F-16 업그레이드 사업을 독자적으로 하고 있다. 상당수 항전 장비를 자국산으로 바꾸는데, 체계통합 능력을 갖췄다는 뜻이다. 한국의 F-16 성능개량 사업은 미국의 록히드 마틴이 진행했다.
튀르키예 방위항공산업협회(SASAD)에 따르면 지난해 방산 수출 규모는 44억 달러였다. 올해 수출은 60억 달러를 넘어설 전망이다.
전투기의 심장인 엔진을 아직 확정 못 해
튀르키예의 TF 칸이 꽃길만 걷는 게 아니다. 튀르키예의 군사 전문가인 셈 도구트는 미국의 브레이킹디펜스와의 인터뷰에서 “전반적인 개발 일정이 빡빡하다. 아직 상세설계 검토(CDR)도 확정하지 못한 상태”라고 말했다.
여기엔 정치적 셈법이 자리 잡고 있다. 에르도안 대통령이 지난 5월 출고식에서 1호기 조종석에 올라 사진을 찍었다. 당시 튀르키예는 대선(5월 14일)을 앞두고 있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1차 투표에서 과반을 얻지 못했고, 2차 투표에서 야당의 케말 클르츠다로을루 후보를 간신히 누를 정도로 몰렸다. 국산 전투기라는 이벤트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김민석 에비에이션 위크 한국 특파원은 “에르도안 대통령이 당선된 뒤 TF 칸에 대한 관심을 덜 보인다고 튀르키예 밀리터리 매니어들이 걱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1호기 첫 비행 일정을 튀르키예 공화국 100주년인 10월 29일 전후로 잡았다는 얘기도 들린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엔진이 아직 ‘미정’이다. 1호기를 비롯해 20~25대의 TF 칸은 F-16의 엔진인 GE F110 2대를 달고 있다. 이후 영국 롤스로이스의 도움을 받아 만든 엔진을 장착하기로 했는데 아직 들리는 얘기가 없다. 지난해 3월 이스마일 데미르 튀르키예 국방부 방위산업협회 차관은 인터뷰에서 “롤스로이스와 문제가 있는데, 해결됐다. 앞으로 함께 일할 준비가 됐다”고 말했다.
튀르키예 쿠데타와 시리아 내전 개입 등 정치적 이슈 때문에 영국이 튀르키예를 상대로 사실상의 무기 금수를 하는 것이란 관측이 있었다. 박찬준 한국국방안보포럼(KODEF) 위원은 “튀르키예의 과도한 기술 이전과 저가 수주를 요구하면서 롤스로이스와 협력이 어려워졌다. 파투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의 이브첸코 프로그레스가 TF 칸의 엔진을 개발하겠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엔진은 미국ㆍ영국 엔진과 비교해 정비 수요가 많아 운영비가 높은 편이다.
박찬준 위원은 “결국 튀르키예는 미국에 손을 빌릴 것”이라면서 “현재 미국이 엔진을 내줄지도 확실하지 않고, 튀르키예가 미국제 엔진을 얻는다 하더라도 TF 칸은 미국의 간섭 때문에 수출이 힘들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KF-21이 MUM-T로 TF 칸과 초격차 나설 필요
한국과 튀르키예는 공동으로 전투기를 개발할 뻔했지만, 결국 각자의 길을 걷고 있다. 한국의 KF-21은 튀르키예의 TF 칸과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시장을 놓고 치열한 다툼을 벌일 수도 있다. 물론 튀르키예의 TF 칸의 개발이 착착 이뤄진다는 전제에서다.
현재 KF-21이 저 멀리 앞서간다고 하더라도 TF 칸과의 격차를 더 벌려서 나쁠 것은 없다. 최현호씨는 “튀르키예가 만만치 않은 적수가 될 수 있기에 한국이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KF-21은 어떻게 해야 할까. 박찬준 위원은 “KF-21이 무인항공기(UAV)와 함께 전투를 벌이는 유무인 복합편제(MUM-T) 기술을 KAI가 연구 중인데, 이를 빨리 끝내 KF-21의 경쟁력을 더 키워야 한다”고 제언했다. 튀르키예가 무인기에 나름 성과를 거두고 있지만, MUM-T는 인공지능(AI)과 같은 첨단기술이 필수다.
이철재 국방선임기자 seaja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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