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쿠르트 배달이요~” 25살 철학과 학생회장이 떴다

고해람·정고운 2023. 8. 13.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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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워커] 고군분투하는 청년들을 기록합니다.
요즘 프레시매니저 만난 요즘 인턴기자들
당돌한 ‘야쿠르트 언니’ 곽씨의 하루
곽씨가 배달지 앞에서 배달물품을 꺼내고 있다.


지난 4일 금요일 아침 7시 30분, 청담동에 있는 HY 한국 야쿠르트 영업점에서 곽바다(25)씨를 만났다. 딱 붙는 청바지에 검정 배꼽티. 힙한 패션으로 나타난 곽씨는 출근해 옷부터 갈아입었다. 유니폼 차림의 그는 영락없는 ‘야쿠르트 언니’의 모습이었다.

곽씨는 6개월 차 HY 프레시매니저다. 사람들에게 ‘야쿠르트 아줌마’라는 호칭으로 더 익숙한 직업이지만 최근에는 곽씨와 같은 젊은 층에게 꿈의 직업으로 사랑받고 있다. HY에 입점한 20·30대 젊은 매니저 수는 지난 5년간 꾸준히 올라 2023년에는 20대 75명, 30대 248명으로 전체의 27.5%를 차지했다.

프레시매니저의 가장 큰 장점은 자유로운 업무량과 근무시간, 일한 만큼 가져가는 수익구조다. 매력적인 업무 조건에 끌려 일을 시작한 곽씨는 이제 어엿한 MZ 프레시매니저가 됐다.

얼·야 넣고 밀키트 넣고… 이제 가볼까?

곽씨가 영업점 창고에서 배송물량을 챙기는 모습.

곽씨의 업무는 그날 배송할 제품을 확인하고 ‘코코’에 꼼꼼히 챙겨 넣는 것으로 시작한다. 코코는 프레시매니저들의 이동수단이자 곽씨의 근무 단짝이다. 최저 4㎞ 최고 8㎞의 귀여운 속도를 자랑하지만, 덕분에 가파르고 울퉁불퉁한 도로에서도 안정적으로 주행할 수 있다.

곽씨의 하루 배달 건수는 약 60건이다. 다른 매니저들에 비해 적은 양인데도 제품을 넣다 보니 세 박스 가득이다. 박스가 무거워 재고를 채울 때마다 꼭 역도를 하는 기분이라는 곽씨. 코코에는 야쿠르트뿐만 아니라 밀키트나 샐러드 등 신선식품도 담겨 있다. 마지막으로 얼·야(얼린 야쿠르트)까지 야무지게 챙긴 후 함께 일하는 매니저 아주머니들에게 다녀오겠다고 인사했다.

곽씨는 보통 세 시간 정도 일하지만 원하면 종일 할 수도 있고 일정이 촉박하면 조기 퇴근도 가능하다. 별도의 회사 승인이 없어도 고객들과 일정을 조정하면 된다.

일찍 일어나는 일이 힘들지 않냐는 물음에 곽씨는 “첫달엔 늦잠을 자 지각한 적도 있지만 일할수록 습관이 잡혀 괜찮았다. 아침에 근무를 시작해 오전에 일이 끝나니 시간이 덤으로 생긴 느낌이라 좋다”고 답했다. 9시 출근이 익숙한 기자들이 몰려오는 잠과 씨름하는 사이 곽씨는 씩씩하게 영업점을 나섰다.

"힘들지만 재밌어" MZ매니저는 즐기면서 일한다

유제품이 두둑이 든 봉지를 들고 아파트 계단을 오르는 곽씨. 배송지마다 그의 명함이 담긴 가방이 달려있다.

곽씨는 청담동 일대 사무실, 가정집, 식당 등 여러 배송지를 방문했다. 코코가 있긴 하지만 집집마다 돌아다니는 일이 쉽진 않다. 승강기가 없는 저층 아파트의 경우 계단을 이용해야 한다. 동행한 기자들도 출발 10분 만에 땀이 뚝뚝 떨어질 만큼 고된 여정이었다. 계단을 성큼 올라가는 곽씨를 따라가려면 숨을 고를 새도 없이 바삐 움직여야 했다.

곽씨 역시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 체력 소모가 심했다. 일을 시작한 첫 달엔 계단을 빠르게 오르고 내리며 금방 녹초가 됐다. 그러나 6개월이 지난 지금 근육량이 5%나 증가했다. 그는 “부지런히 아침 운동하는 기분으로 일을 한다”며 늘어난 체력에 만족했다.

코코를 타고 배송지로 이동하는 곽씨.


프레시매니저는 손님에게 직접 상품을 전달하거나 영업을 해야 할 때도 있다. 곽씨의 MBTI는 INTP로 내성적인 성격이다. 그는 “낯선 사람을 마주하는 일은 외향적인 분이 더 잘 맞을 것이다. 그러나 배송지로 이동할 때는 나만의 시간이 보장되기 때문에 힘들다고 생각하진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코코로 도로를 이동할 때 노래를 들으며 사색에 잠긴다.

반대로 계획적이지 못한 성향 탓에 돌발상황을 마주하기도 한다. 취재 당시 곽씨는 휴가에 떠나 배송 날 만나지 못한 고객이 많았다. 그는 “프레시매니저 일은 계획이 틀어지는 경우가 많다. 손님이 매일 배송받던 음료를 당일 날 더 달라 하거나 빼달라는 경우도 있다. 오히려 철저한 계획형이면 힘들다”고 답했다.

테일러샵 재단사부터 경비원까지, 어깨너머 본 직업의 세계

곽씨가 배송 업무 중 즐겨 본다는 풍경.

곽씨의 소소한 행복이 있다면 업무 중 마주하는 다양한 사람과 환경이다. 곽씨는 유명 맛집, 대형 사무실, 병원 등 많은 장소를 오간다. 그가 꼽는 이색 배달지는 3층짜리 테일러샵이다. 곽씨는 “여러 직업을 가진 사람들을 자연스레 만난다. 배달지마다 색다른 직업 현장들을 접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테일러샵을 나와 보는 창문 밖 경치 역시 그가 꼽는 소확행 중 하나다.
곽씨가 평일마다 인사를 나누는 경비원. 전달받은 유제품을 들고있다.


곽씨가 평일마다 인사를 나누는 경비원. 전달받은 유제품을 들고있다.


곽씨는 배달 중 마주한 모든 경비원과 살갑게 인사를 나눴다. 그들 역시 딸자식처럼 곽씨를 따뜻이 맞이했다. 경비원들은 보통 요플레나 야쿠르트를 한개씩 주문한다. 낱개 주문은 실적에 크게 도움 되지 않지만 곽씨는 귀찮은 내색 없이 건물로 향했다. 그는 경비원에게 요플레와 함께 따스한 안부를 전했다.

손님마다 찾는 제품이 다르기도 하다. 곽씨는 “사무실 배송의 경우 영업직 사원분들이 많은데 간 건강에 좋은 쿠퍼스를 많이 찾으신다. 병원 종사자 분들은 위에 좋은 윌을 자주 드신다”고 전했다. 사람냄새 나는 손님을 만날 수 있다는 점 역시 프레시매니저의 묘미인 셈이다.

오전 10시 30분. 모든 배송 업무가 끝난 곽씨는 코코를 타고 영업점으로 돌아왔다. 다음 날 배송할 물류를 정리하고 환복하면 그의 일과가 끝난다.

퇴근 후 인근 카페에서 다시 만난 곽씨에게 청년들이 기존의 안정적인 일자리를 벗어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그는 “요즘 젊은 사람들은 행복을 미래보다 현재에서 찾는다”며 “어린 시절엔 앞으로 경험할 사회가 매우 견고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주변에서 좋은 학교나 회사에 들어가서도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 모습을 보며 생각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또한 곽씨는 훗날 다른 직업과 프레시매니저 업무를 병행하고 싶다고 전했다. HY 관계자는 “N잡처럼 본인이 만족하는 업무 스타일을 선택하는 건 당연한 현상이다. 사람들은 더이상 정규직·비정규직이라는 이분법적인 사고로 직업을 바라보지 않는다”라고 전했다.

퇴근 후 인터뷰를 위해 다시 만난 곽씨.
요즘워커는 열정으로 일하는 청춘들을 취재합니다. 사회의 출발선에 발을 내딛고 고군분투하는 청년들의 삶을 기록하겠습니다.

고해람·정고운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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