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조차 생소한 작은 섬... 지옥이나 다름 없던 그곳

성낙선 2023. 8. 12.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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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감도 기행] 세계 어디에서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소년 강제 수용소, 선감학원

[성낙선 기자]

 선감도에 1942년 소년 강제 수용소 선감학원이 문을 열었다. 사진은 첫 번째 원생들이 대부도 진두포구에 도착한 모습
ⓒ 이하라 히로미츠
8월 들어 하루가 멀다 하고 휴대폰에 '폭염 경보' 문자가 뜬다. 혹시 모를 불상사가 생길 수 있으니 야외 활동을 자제하라는 경고도 잇따른다. 태풍이 물러가고 나면, 다시 더위가 기승을 부릴 조짐이다. 또 얼마나 많은 '온열질환자'가 발생할지 알 수 없다. 밖에 나갈 땐 여러모로 주의를 기울이는 게 좋을 것 같다.

며칠 전, 선감도에 있는 '바다향기수목원'과 '선감역사박물관'에 다녀왔다. 한낮 최고 기온이 섭씨 35도를 넘어서던 날들 중의 하루였다. 아무리 날이 더워도, 수목원을 걸어 다닐 수 없을 정도로 뜨겁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혹시 모를 사고에 대비해 소금과 양산까지 챙겼다. 여행 중에 더위를 먹고 쓰러졌다는 말은 듣고 싶지 않았다.

선감도는 사람들에게 그렇게 잘 알려진 섬은 아니다. 대부도와 탄도는 알아도, 선감도는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다. 잊힌 섬이라고나 할까. 지금은 단지 지명으로만 남아 있는 섬이다. 사실 서해안에는 이런 섬이 부지기수다. 선감도는 1980년대 간척사업이 진행되면서 북서쪽으로는 대부도와 연결되고, 남쪽으로는 탄도와 연결됐다.

그러면서 섬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었다. 이제는 선감도 어디를 가도 간척 사업 이전에 존재했던 섬의 형태를 가늠하기 어렵다. 그래서 그런지 대부도에 들어서 탄도항을 향해 가다 보면, 선감도를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지나칠 때가 많다. 어떻게 보면 선감도는 그냥 대부도의 일부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선감도는 우리가 그처럼 가볍게 지나칠 섬이 아니다.
 
 바다향기수목원, 상상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섬과 바다. 왼쪽으로 멀리 제부도가 보인다.
ⓒ 성낙선
바다 향기, 꽃향기 그윽한 수목원

선감도에 바다향기수목원이 있다. 여기에 이 수목원마저 없었다면, 선감도는 얼마나 억울했을까. 그 이름을 기억하는 일이 더 힘들었을 게 분명하다. 바다향기수목원은 선감도를 가로지르는 도로변(대부황금로)에 자리를 잡고 있다. 작은 섬에 둥지를 튼 수목원치고는 규모가 상당히 큰 편이다. 총면적이 30만 평(101만㎡)에 달한다.

정문을 들어서면 정면에 거대한 '곰솔' 한 그루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이 곰솔은 이곳 수목원을 상징하는 나무들 중에 하나다. 수목원을 둘러보기 전에 이 나무 그늘에서 잠시 쉬어가는 게 좋다. 이후 뙤약볕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너무 겁먹을 필요는 없다.
 
 바다향기수목원, '섬집정원' 풍경.
ⓒ 성낙선
 
 바다향기수목원, 대나무 숲길.
ⓒ 성낙선
수목원은 전반적으로 꽤 깔끔하게 관리가 되고 있다. 산책로 중간중간 따가운 햇볕을 피할 수 있는 공간이 여러 군데 마련돼 있다. 나무 그늘이 드리워진 탁자와 오두막 같은 쉼터를 요소요소에 잘 배치했다. 덕분에 이 수목원에서 더위 먹을 일은 그렇게 많지 않을 것 같다.
사람들이 앉아서 쉬어가는 곳마다 먼지나 벌레 같은 것을 털어낼 수 있는 작은 빗자루를 걸어놓은 것도 꽤 인상적이다. 바다향기수목원에는 1000여 종의 식물이 식재돼 있다. 볼거리가 제법 다양하다. 여느 수목원과 마찬가지로 바다향기수목원도 계절마다 조금씩 다른 풍경을 보여주는데, 지금은 상사화와 무궁화 등이 화려하게 꽃을 피운 걸 볼 수 있다.
 
 바다향기수목원, 산책로에 도열해 있는 무궁화가 제철을 만났다.
ⓒ 성낙선
 
 바다향기수목원, 산책로 위에서 내려다 본 수목원 풍경.
ⓒ 성낙선
바다향기수목원은 바다너울원, 장미원, 암석원 등등 여러 주제를 가진 몇 개의 구역으로 나뉜다. 구역마다 그만의 특색을 갖추고 있다. 그중에서 이곳 수목원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풍겅은 '상상전망대'에서 볼 수 있다. 전망대 위에 올라서면 서해 바다와 함께 멀리 제부도가 내려다보인다. 바다향기수목원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풍경이다.
바다향기수목원은 2019년에 문을 열었다. 수목원 부지가 생각 외로 넓어 내부를 다 돌아보는데 약 2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더위를 피해 오두막 같은 곳에 앉아 틈틈이 쉬어가다 보면, 시간이 더 걸릴 수도 있다. 근처에 편의점이나 카페 같은 걸 찾아볼 수 없다. 수목원 안쪽에 급수대가 있지만 날이 더워서 그런지 뜨거운 물이 솟구친다. 생수 같은 건 미리 챙겨가는 게 좋다. 입장료는 무료다.
 
 바다향기수목원, 상상전망대 오르는 길.
ⓒ 성낙선
이 작은 섬에 어떻게 이런 일이...

선감도에 바다향기수목원 말고 또 뭐가 있을까 싶다. 그래도 기왕 선감도에 발을 디딘 이상, 잊지 말고 꼭 한 번 찾아가 봤으면 하는 장소가 있다. '선감역사박물관'이 그곳이다. 명칭이 너무 거창해서 살짝 민망하다. 규모나 내용으로 봐서, 박물관이라는 이름을 붙인 게 영 어색해 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전시장 규모가 채 20평이 넘지 않는다.

전시물도 그리 많지 않다. 전시물이라고 해 봐야, 생활용품 몇 가지, 사진 몇 점, 공문서 몇 장과 관련 기사 몇 건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 전시물들에 담긴 역사적 사실은 절대 가볍게 볼 수 없는 것들이다. 이곳에서 우리는 눈으로 보지 않고는 좀처럼 믿을 수 없는 역사를 보게 된다. 바로 '선감학원'이라는 이름이 붙은 소년 강제 수용소에 관한 이야기다. 이 이야기를 듣고 나면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싶다. 선감도는 결코 예사로운 섬이 아니다.
 
 경기창작센터에 전시된 사진, 일제 강점기때 소년들이 배를 타고 선감학원으로 들어오고 있다.
ⓒ 이민선
 
선감학원은 1940년대 초, 일제 총독부가 '빈민가 소년들과 고아들을 강제로 집단 수용'해 '태평양 전쟁을 위한 인적 자원을 충원'할 목적으로 설립한 강제 수용소였다. 문제는 이 시설이 1982년까지 존치되었다는 사실이다. 어처구니가 없게도 시설 규모가 해방 전보다 더 커졌다. 조국 해방이 선감학원까지 해방시키지는 않았던 것이다.
해방 이후에도 부랑아로 낙인이 찍힌 아이들이 계속 그곳에 끌려갔다. 그중에는 부모도 있고, 학교를 다니는 아이도 있었다. 경찰들이 단지 '실적'을 올리기 위해 길거리에서 아이들을 납치하다시피 끌고간 결과다. 아이들을 끌고 가면서 아이들의 이름이나 나이를 제멋대로 바꿔 기록한 탓에 부모가 아이들을 찾을 수도 없었다. 그곳에 갇힌 아이들은 일제 시대만큼이나 끔찍한 시간을 보냈다. 매일 낮과 밤, 강제 노동과 폭행에 시달렸다. 일종의 지옥을 경험했다.
 
 선감역사박물관 전시물. '선감학원 사건 유해발굴을 위한 사전조사 계획 최종보고서'와 '선감묘역 유해발굴' 현장 사진.
ⓒ 성낙선
 
 선감학원에서 죽은 소년들이 묻힌 배꼽산, 그 옆 비닐하우스가 예전에 소년들이 닐하던 뽕나무밭이다.
ⓒ 이민선
아이들 중 일부는 수용소 안에서 목숨을 잃었다. 더러는 탈출을 시도하다 바다에 빠져 죽었다. 수용소 당국은 그 아이들을 '적법한 절차 없이 암매장'했다. 선감학원은 독재 정권이 서해안에 있는 하나의 섬을 고립무원의 인간 개조 현장으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흡사 '실미도'와 닮아 있다. 그리고 그곳에 사람들을 가둬놓고 별다른 이유 없이 살상을 자행했다는 점에서는 '삼청교육대'와 닮아 있다. 그 두 가지를 모두 닮아 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선감도에서 일어난 일들이 실미도나 삼청교육대에서 자행된 것들보다 더 끔찍하게 다가온다. 더군다나 선감도에 수용된 사람들은 겨우 7살에서 18살 사이의 아이들 아닌가. 그 역사가 무려 40년이나 된다는 사실도 다른 인권 유린 현장을 압도한다. 그 시기, 국가 권력을 손에 쥔 사람들이 가진 인권 의식이 어떠했는지를 보여준다. 지구상에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일이 선감도에서 벌어졌다.
 
 1956년 8월 30일자, 경인일보. '인간 개조의 산실, 선감도'라는 제목의 기사가 보인다.
ⓒ 성낙선
 
 경기 창작센터에 전시된 선감학원생 사진
ⓒ 이민선
뒤늦게 알려진 역사와 진실들

선감학원의 실태가 알려지기 시작한 건 2010년대에 들어서다. 시설이 폐쇄되고 나서도 30여 년이라는 세월이 더 걸렸다.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아이들은 그사이 전국에 뿔뿔이 흩어졌다. 누가 알까 두려워 '불행한 과거'를 숨기고 살았다. 선감역사박물관이 문을 연 건 2017년이다. 경기도와 경기문화재단이 '선감학원의 진실을 기록하고 알리기 위해' 경기창작센터 안에 박물관을 개관했다.

평화롭기 그지없는 바다향기수목원을 다녀와서, 선감도에서 일어난 참담한 역사를 돌아보는 일이 켤코 마음 편할 리 없다. 그래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자꾸 찾아가야 한다. 누군가는 그 역사를 기억해야 하기 때문이다. 대부도를 지나가는 길에 잠깐 들러가는 것으로도 족하다. 박물관은 현재 경기창작센터 내 건물 1층의 한쪽 공간에 더부살이를 하듯 자리를 잡고 있다.
 
 선감역사박물관, 입구에서 바라본 전시장 내부. 간판조차 제대로 걸려 있지 않다.
ⓒ 성낙선
경기창작센터 내에서 박물관을 찾아내는 게 생각처럼 쉽지 않다. 박물관 위치가 어딘지 센터 내 시설안내도를 봐도 소용이 없다. 박물관이 따로 표기가 되어 있지 않다. 그럴 땐 센터 내 가장 큰 건물을 찾아가면 된다. 경기창작센터는 겉보기에도 시설이 꽤 낡아 있다. 건물 앞 운동장엔 잡초가 무성하다. 박물관이 어쩌다 이런 신세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이러다 박물관마저 세월에 묻히고 마는 건 아닌지 걱정이다.

버스를 타고 바다향기수목원을 가려면 오이도역에서 대부도행 123번 버스를 탄 다음, 대부도에서 737 버스로 갈아타야 한다. 수목원 입장 시간은 하절기엔 오후 5시까지, 동절기엔 오후 4시까지다. 월요일은 휴무일이다. 선감역사박물관을 가려면, 오이도역 앞에서 선감도행 123번 버스를 타고 경기창작센터 앞에서 내리면 된다. 관람 요일은 화, 수, 목, 금, 토요일이고, 관람 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다.

시골 버스들이 대체로 그렇듯이 운행 편수가 극히 제한돼 있다. 시간을 잘 맞춰야 한다. 도시를 벗어난 지역에서, 일반버스를 타고 여행을 하는 게 그리 편하지만은 않다. 무더위 탓에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것도 고역이다. 하지만 그런 고생도 선감도에 수용된 소년들이 겪었던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요즘 대부도와 탄도를 찾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더불어 선감도를 찾는 사람들도 함께 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바다향기수목원 정문.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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