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탄 돌리기' 잼버리 콘서트에 축구 팬들이 분노한 까닭
[이준목 기자]
▲ 11일 오후 서울 마포구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 K팝 슈퍼 라이브 콘서트’에서 그룹 아이브가 공연을 펼치고 있다. |
ⓒ 사진공동취재단 |
우여곡절 끝에 간신히 행사는 마감했지만, 이번 사태는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무사안일주의와 탁상행정의 실태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는 점에서 그 후유증은 가볍지 않다. 그리고 엉뚱하게도 잘못은 '정치와 행정'이 초래해놓고, 그 뒷수습에 '스포츠와 대중문화'가 이용당하는 꼴이 되어버린 후진적인 행태가 더욱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정부와 잼버리 조직위원회는 당초 새만큼 야영지 일대서 K팝 콘서트와 폐영식을 진행될 예정이었으나 폭염 등 안전상 문제로 날짜와 장소를 변경하기로 결정했다. 갑작스러운 변경에다가 대규모 인원을 수용하여 행사를 치른 공간이 마땅치 않았던 조직위가 궁여지책으로 선택한 대안은 축구장이었다.
조직위는 개최지에서 인접한 전주월드컵경기장을 선택했으나, 태풍 '카눈'의 영향으로 인하여 공연 장소가 다시 서울 상암월드컵경기장으로 한 차례 더 변경됐다. 이러한 예측불허의 '폭탄 돌리기'로 인하여 가장 애꿎은 피해를 보게 된 것은, 다름아닌 K리그와 축구 팬들이었다.
▲ 11일 오후 서울 마포구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 K팝 슈퍼 라이브 콘서트’에서 전 출연진이 피날레 공연을 펼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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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암월드컵경기장을 빼앗긴 FC서울도 날벼락을 맞은 것은 마찬가지였다. K팝 콘서트와 폐영식 준비를 위해 그라운드 내에 대규모 무대와 객석이 설치되면서 잔디훼손이 불가피해졌다. 잔디의 컨디션은 경기의 진행과 선수들의 부상 여부에도 영향을 끼치는 민감한 사안이었다.
상암은 A매치도 자주 치러지며 한국 축구를 대표하는 구장임에도 그동안 국가대표 선수들로부터 잔디 관리가 허술하다는 쓴소리를 들은 바 있다. 올해는 서울시설관리공단에서 10억 원에 이르는 대규모 예산까지 투입하여 새롭게 하이브리드 잔디를 정비한 상태였지만, 갑작스러운 잼버리 행사로 그간의 노력이 모두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정부에서는 잔디 손상을 최소화하기 위해 무대 설치에 유의했다고 해명했다. 또한 행사 후에는 최대한 신속하게 복원하여 축구 경기에 지장이 없도록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축구 팬들은 "병주고 약주는 격"이라며 싸늘한 반응이다. 많은 축구 팬들은 잼버리 파행사태와, 정부의 '협조를 가장한 일방적 희생 강요'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K팝과 아이돌 스타들이 사실상 실패한 국가적 행사의 '구원투수' 역할로 동원된 모양새도 후진적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정부와 지자체의 무능을 가리기 위하여 소위 '높은신 분들'의 결정으로 긴급하게 편성되어 추진된 K팝 콘서트는, 사고가 나지 않은 게 다행이라고 할 만큼 무리였다.
K팝 콘서트를 위한 무대 설치가 진행될 동안 한반도 인근에는 태풍이 지나고 있었다. 전문가들은 3~4만 명 정도의 대규모 공연은 준비 기간이 길고 민감한 야외 공연은 더 많은 변수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당시 현장에 있는 노동자들은 촉박한 시간과 좋지 않은 기후 속에서 안전 위험을 무릅쓰고 무대 설치 작업을 진행해야했다.
공연에 참여한 아티스트들도 갑작스러운 스케줄에 난감했던 것은 마찬가지였다. 완성도높은 무대를 준비할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고, 태풍의 영향으로 공연 당일까지도 비가 내리며 리허설 상황 역시 열악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정부와 관계자들은 이번 K팝 콘서트를 추진하면서 아티스트 섭외 과정에서 자발적인 참여를 빙자한 사실상 '강제 동원' 논란으로 물의를 빚었다. 성일종 국민의힘 의원은 군복무중인 방탄소년단(BTS)을 잼버리 콘서트에 출연시키자고 제안했다가 "파행 중인 잼버리 대회를 왜 K팝 스타들이 수습해야 하느냐"는 팬들의 비난 여론에 역풍을 맞기도 했다.
▲ 11일 오후 서울 마포구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 K팝 슈퍼 라이브 콘서트’에서 그룹 '있지'(ITZY)가 공연을 펼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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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번 콘서트의 성공은 어디까지나 잼버리 대회와는 별개의 사안이었다. 그간 K팝이 쌓아올린 브랜드 이미지, 그리고 현장에서 고생한 노동자들-아티스트들의 헌신과 희생 덕분에 최악의 상황에서 그나마 '유종의 미'를 거둔 것에 불과하다, 이번 잼버리 사태의 모든 과정과 실책에 면죄부를 주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번 잼버리는 K팝 콘서트와 별개로 '실패한 이벤트'라는 평가를 뒤집기는 어렵다. 전 세계인들을 모아놓고 6년에 걸친 준비와 막대한 예산을 투입한 끝에 개최한 이벤트였음에도, 온열 환자가 속출하고 낙후되고 비정상적인 시설, 기획에서 실무까지 전문 인력의 부족, 책임있는 컨트롤타워의 부재까지 그야말로 엉망진창의 연속이었다. 결국 일부 참가국은 조기 퇴영했고, 부실한 준비 등으로 외신의 집중 이슈가 되면서 '전세계적인 국제 망신'이 되었다는 굴욕을 피할 수 없었다.
더욱 슬픈 것은, 이번 사태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아직도 '국가와 국익'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스포츠와 대중문화를 정치적 뒷수습을 위한 하청업체나 소모품처럼 바라보는 듯한 정치권의 안이하고 경박한 인식이었다.
그 과정에서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당한 스포츠와 대중문화계에 대하여 정치권은 상식도, 소통도, 존중도 무엇 하나 보여주지 못했다. 축구경기장을 빼앗아 콘서트를 열고, BTS와 아티스트들을 관제행사처럼 아무 때나 동원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인식이 정치권에 남아있는 한, 이런 한심한 사태는 언제든 되풀이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말아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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