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암 달군 4만명의 잼버리 청춘들, 나쁜 선례만 남았다
[하성태 기자]
▲ KBS2를 통해 생중계된 잼버리 K팝 콘서트 . |
ⓒ KBS |
BTS(방탄소년단) 소속사 하이브가 2023 세계스카우트잼버리 'K-POP 슈퍼라이브' 콘서트(이하 잼버리 K팝 콘서트)에 참석한 전 세계 스카우트 대원들에게 BTS 멤버들 포토카드 4만3천 개를 무상으로 제공했다. 비용만 약 8억 원 상당으로 알려졌다.
잘 알려지다시피, BTS의 잼버리 콘서트 출연 여부는 국방부까지 입장을 표명하는 등 설왕설래를 낳았다. 대신 하이브 산하 레이블인 어도브 소속 뉴진스는 신속히 콘서트 참가를 결정했다. 지난해 데뷔해 빌보드 진입 신기록 등 차세대 톱 걸그룹으로 부상한 뉴진스가 잼버리 콘서트의 얼굴이 됐다.
출연자들은 '자발적인 참여'를 강조하지만 돌아가는 상황은 공교롭기만 했다. 콘서트 하루 전인 10일 아이브가 전격적으로 콘서트 참가를 알렸다. 아이브는 지난 6일로 예정됐던 출연 명단에 이름을 올렸으나 콘서트가 연기되면서 참가가 불투명했다. 애초 스케줄을 이유로 출연 무산 소식이 알려졌으나 하루 만에 번복됐다.
공교롭게도 아이브가 콘서트 참가를 알린 10일, 금융감독원이 카카오 김범수 창업자의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카카오는 아이브의 소속사인 스타쉽엔터테이먼트의 최대주주인 카카오엔터테인먼트의 모기업이다. 카카오도 잼버리 K팝 콘서트 참가자들에게 카카오프렌즈 캐릭터 상품을 무상으로 제공했다. 이 비용 역시 10억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새만금 잼버리 공동조직위원장인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이날 보도자료를 내고 "카카오프렌즈 캐릭터 상품과 방탄소년단 포토카드는 카카오와 하이브가 각각 스카우트 대원들을 위해 자발적으로 마련했다"고 밝혔다.
세간의 관심이 정부의 "자발적"이란 표현에 집중됐다. 그도 그럴 것이, 파행으로 치닫던 새만금 잼버리는 참가자들의 퇴영 이후 4만여 명에 달하는 스카우트들의 일정을 유지하기 위해 민관이 총동원됐다시피 했다. 그 과정에서 강제 동원과 다를 바 없는 지원이나 봉사 등이 이뤄졌다는 증언들이 커뮤니티 게시글이나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졌다.
지난 6일 콘서트 연기가 결정된 이후 잼버리 K팝 콘서트 역시 개최까지 혼돈과 혼란 그 자체였다. 날짜만 11일로 확정됐을 뿐 새만금 야영장에서 전주월드컵경기장으로, 또 상암월드컵경기장으로 변경되는 과정이나 뉴진스나 아이브 등 출연자들이 확정되기까지 숱한 논란이 일었고 갖가지 추측이 제기됐다. 정부가 '유종의 미'를 강조하며 총력을 기울인 행사에 K팝 아티스트들과 소속사가 강제 동원되는 것 아니냐는 주장도 그 중 하나였다.
정부와 새만금 잼버리 조직위가 총력을 기울인 잼버리 K팝 콘서트가 논란과 기대 속에 11일 오후 별다른 사고 없이 끝마쳤다. 새만금 잼버리 주관 방송사인 KBS가 KBS 2TV 채널을 통해 2시간 동안 생중계했다. 흔한 표현처럼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상암월드컵경기장 잔디 위에 마련된 객석과 관중석에 앉은 젊고 어린 스카우트 대원들의 환하고 밝은 표정은 기대 그 이상이었다.
▲ KBS2를 통해 생중계된 잼버리 K팝 콘서트. |
ⓒ KBS |
우리에겐 어쩌면 흔하게 접할 수 있는 K팝 아이돌들의 무대일 수 있었다. 하지만 규모만큼이나 참가자들의 피부색도 달랐고, 이들이 발산하는 에너지도 상상 이상인 것은 틀림없었다. 헤드뱅잉 끝에 옆좌석 친구와 깜짝 뽀뽀를 하는 백인 스카우트의 모습은 '오늘의 장면'이 될 만 했다. 약 4만여 명의 전세계 청춘들이 K팝 아이돌들을 향해 내뿜는 열기와 환호는 브라운관을 넘어 고스란히 전해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언론 보도를 통해 무대가 잘 보이는 잔디 위 객석엔 주로 외국인 참가자들이 착석했다는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열광하는 외국인 참가자들의 반응이 KBS 카메라에 주로 담겼다. 국적을 떠나 K팝 아이돌 19팀의 공연을 서울 현지에서 접하는 전 세계 스카우트들은 폭염에 따른 온열 질환자 속출이나 야영장 철수 등 새만금 잼버리의 파행은 잠시 잊은 듯 했다. 청춘들은 청춘들이었다.
K팝 아이돌들의 에너지 또한 '왜 K팝인지'를 증명하는 듯 했다. 온라인에선 다행이란 반응들이 다수를 이뤘다. 고생한 전 세계 스카우트들이 이렇게라도 피로를 풀 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란 반응 말이다. 정부와 조직위가 그토록 K팝 콘서트 개최에 매달린 이유를 열광하는 스카우트들의 얼굴이 대변해주고 있었다.
사실 사고가 없던 게 다행이었다. 상암으로 장소가 확정된 것이 지난 7일이었다. 이후 약 4만 여명이 참가하는 대규모 공연이 단 4일 만에 준비됐다. 그 기간 동안 태풍 카눈까지 서울을 통과했다. 우려가 커질 만 했다.
급하게 작업하는 콘서트 구조물 작업자들의 안전사고 우려부터 상암월드컵경기장의 잔디 훼손 문제, 4만여 명이 운집하는 콘서트 현장이나 교통 통제까지. 새만금 잼버리 내내 무능한 운영 과정을 전 세계에 노출시킨 조직위에 대한 불신과 우려가 정비례 할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유종의 미' 운운하며 K팝 아이돌들을 대거 동원한 정부와 조직위에 대한 반감이 커질 대로 커졌다. 10일 하루 하이브와 카카오가 십수억 원 상당의 상품들을 '자발적' 제공한 점이나 인기 아이돌 아이브의 출연, 카카오에 대한 금융위원회 압수수색 등 꽤 공교로운 소식들도 그러한 반감을 키울 수밖에 없었다.
전 세계 스카우트들의 환호와 열광 속에 잼버리 K팝 콘서트가 그렇게 막을 내렸다. 안타깝게도, 논란 끝에 마무리된 잼버리 K팝 콘서트는 그저 '끝이 좋으면 만사형통'이란 안일한 평가로 그칠 순 없을 것 같다.
▲ KBS2를 통해 생중계된 잼버리 K팝 콘서트. |
ⓒ KBS |
방점은 '정부'와 '급조'에 찍힌다. 실력 있는 K팝 아이돌들의 무대는 짧은 시간 최선을 다한 흔적이 역력했다. 그런 무대를 바라보는 각국 스카우트들의 매너도 상상을 초월했다. 딱 그 2시간의 무대까지가 정부와 조직위에 대한 비판이 유예될 수 있는 시공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정부는 K팝 아이돌들에 열광하는 어리고 젊은 스카우트들의 관심을 핑계 댔다. 그 관심은 사실일 수 있다. 하지만 결과를 떠나 정부가 이번 콘서트를 강행하고 급조한 것에 대한 우려와 비난은 온당했다. 태풍으로 인해 새만금 야영장에서 철수까지 한 상황에서 태풍 경로가 서울을 관통할 수 있다는 예보를 무시한 채 행사 준비를 강행했다.
더 심각한 것은 철저한 관제 행사에 K팝 아이돌들이 대거 동원되는 선례를 남겼다는 사실이다. 잼버리 K팝 콘서트는 준비 과정부터 출연자 섭외, 홍보나 현장 통제까지 대통령을 포함해 정부가 총력을 기울이지 않았다면 결코 성사될 수 없었을 행사라 할 수 있었다. 정부와 조직위는 그러한 부실하고 비상식적인 과정을 부끄럽게 생각하지도, 감출 생각조차도 없었다.
이를 넘어 일개 국제행사일 뿐인 새만금 잼버리의 성공적인 마무리를 위해 K팝이, 소속사와 아이돌들이, 국민들을 동원해도 별 문제가 되지 않느냐는 기조로 일관했다. 공교롭다는 표현을 거듭하지만, 금융위원회의 카카오 압수수색은 그러한 정부 철학의 정점이라 할 수 있었다.
잼버리 K팝 콘서트의 엔딩곡은 1986년 다섯손가락이 발표한 '풍선'이었다. 비록 동방신기의 리메이크곡을 출연한 아티스트들이 합창했다고는 하지만 누구의 선곡인지 눈과 귀를 의심할 만한 1980년대 히트곡이 4만여 명의 전 세계 스카우트들을 향해 울려 퍼진 것이다.
잼버리 K팝 콘서트라는 관제 행사의 면면들 모두 그 다섯손가락의 '풍선'이 인기를 얻었던 군사정권이나 권위주의 정부에나 어울리는 것들이라 할 수 있다. 지난 한 주간 전 국민들의 이목이 쏠렸던 잼버리 K팝 콘서트가 그렇게 의미심장한 엔딩으로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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