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人사이드]"체중 40㎏…이대로 죽을 수 없어" 2700만원으로 시작, 대표가 된 28세 니트족
사회 적응 실패하다 헌 책방에서 아이디어
은둔형 외톨이를 뜻하는 '히키코모리', 취직 의지가 없는 백수를 뜻하는 '니트족'은 한국보다 일본에서 더 많이 쓰이곤 하는 말인데요. 이번 주 아사히신문에서는 사회생활을 전혀 하지 못했던 28세 백수 청년이 출판사를 차리게 된 성공 신화를 보도했습니다. 본인의 콤플렉스와 아픔을 딛고 어엿하게 성장한 모습은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줬는데요.
우리는 인생에 겪은 아픔을 어떻게 멋지게 극복해낼 수 있을까요? 오늘은 본보기가 될만한 청년, 야라 아사야씨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야라씨는 지난 8일 아사히와의 인터뷰에서 본인의 어린 시절은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채로 보냈다고 회상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말을 더듬었는데, 긴장하면 더 심해져서 중학생 때부터는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이 무서웠다는데요.
대학에 진학해 자기소개를 했을 때도 말을 제대로 못 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겠다", "외계인 같다"라는 주위의 야유를 받았다고 합니다. 동아리도 가입하지 않았고 친구도 사귀지 못해 혼자 학교 화장실이나 계단에서 도시락을 먹곤 했다고 합니다. 아르바이트를 해봐도 상사의 지시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야단만 맞고, 어디든 적응하기가 어려웠죠. 결국 대학도 휴학계를 내버리고 맙니다.
야라씨는 "당시 구직 활동을 하는 정장 차림의 동기들이 캠퍼스를 걷고 있었다. 왜 나는 평범할 수 없을까 하며 방에서 울었다"며 "이대로는 사회에 나가도 나는 살아갈 수 없겠다고 생각했다"고 당시의 상황을 전했습니다.
환경을 바꾸어 재출발하고 싶어 도쿄의 셰어하우스로 들어갔고, 동업으로 보드게임 카페를 차렸지만 이것도 다툼으로 일 년여 만에 쫓겨나듯 나와야 했죠. 이후에는 아르바이트 면접에서조차 떨어지면서 인생의 암흑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매월 달력 일정이 정신과 가는 것 말고는 없었고, 수입은 그간 근근이 벌어놓은 돈과 부모님에게 의존해야만 했다는데요. 하루 한 끼, 최소한의 식사로 체중은 40kg 정도가 됐고, 저녁에는 정처 없이 걷다가 새벽이 돼야 잠에 들었다고 합니다. 약물 과다복용 등 자해도 계속됐는데요.
이러한 삶을 4년 가까이 이어오던 중, 지난해 3월 그는 면도날을 바라보며 문득 결심하게 됩니다. 인생에 사는 의미가 있나, 스스로 목숨을 끊을까도 고민하던 순간 일었던 것은 분노라고 하는데요. "이러다 죽으면 너무 우습다. 나는 너무 억울하다"라는 생각에 마음을 다잡았다고 합니다.
머리에 떠오른 사업 아이템은 밤거리를 헤맬 때 다니던 헌책방. 100엔짜리 헌책을 사서 읽으며 눈앞의 현실을 잊곤 했는데요. 죽기 전에 그런 책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으로 28살에 출판사에 지원했지만, 아니나 다를까 바로 탈락하고 맙니다.
"학력도 경력도 없이 지원해 당연한 결과였겠지만, 이런 나라도 책을 만든다면 누구나 책을 쓸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겠다"라는 마음으로 출판사를 설립하게 됩니다. 당시 수중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사용하지 않고 있던 300만엔(2700만원)짜리 예금이 있었는데, 이를 털어서 출판사를 차렸다고 합니다. 우울증으로 스스로 명을 달리한 할아버지가 야라씨 앞으로 남긴 유산이었다는데요.
그가 차린 출판사의 이름은 '텐메츠샤'로 말 그대로 점멸사(点滅社)라는 뜻입니다. 빛이 점멸하며 누군가의 발밑을 비추기를 바라며 지은 이름입니다. 책이나 영화 이야기를 하던 프리터 동료와 함께 시작하게 됐는데요.
처음으로 즐겨듣던 일본 밴드 '니네'의 가사를 모은 시집을 출간하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인간의 나약함, 그럼에도 남아있는 상냥함을 보여주는 가사에 밴드에 바로 연락을 취했는데요. 덕분에 지난해 11월 니네의 시집을 출간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서점 주인들 사이에서도 "텐메츠샤의 책에는 목숨을 건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편집자의 열정이 느껴진다"는 평가를 받는다고 하네요.
지난 6월, 개업 1주년을 맞은 텐메츠샤는 가사집, 만화 잡지 등 3권을 출판했습니다. 전국 60개 점포의 서점과 인터넷 쇼핑몰에서 판매가 진행 중입니다.
경영은 아직 적자고, 매일 쌓아둔 돈은 줄어들고 있지만 한 서점 주간 매출 10위권 안에 든 적도 있고, 자택 겸 일터에는 응원 편지도 도착할 정도로 번창했다고 합니다.
그는 오히려 힘든 시절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아사히에 전했습니다. "충전할 기간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 계속 달리고 있다"고 인터뷰를 끝맺었는데요. 앞으로는 우울한 기분이 들 때 읽고 싶은 작가와 학자들 80여명의 에세이를 출간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지쳐서도 안 되겠지만, 우리는 쉽게 낙담해서도 안 되겠지요. 야라씨의 이야기로 저를 비롯한 누군가에게도 힘이 되기를 바랍니다.
전진영 기자 jintonic@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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