野 혁신위가 남긴 것…'돈봉투'로 출범해 '이재명 사조직' 오명
마지막 의제로 '대의원제 무력화' 던졌지만
무리수 비판…김은경 설화 속에 동력 잃고 종료
더불어민주당 혁신위원회가 10일 3차 혁신안 발표를 끝으로 활동을 마쳤다. 지난 6월 말 김남국 의원의 코인 논란과 2021년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 등으로 추락한 당의 신뢰도를 회복하겠다면서 출범했지만, '민주당 구원 투수'가 아닌 '이재명 사조직'이라는 오명만 쓰고 조기 종료하게 됐다. 김은경 혁신위원장을 둘러싼 잇단 설화와 '친명-비명' 간 갈라치기로, 성과보다는 갈등만 남겼다는 평가가 나온다.
◆혁신위, 1호 쇄신안 '불체포특권 포기'부터 잡음
혁신위는 6월 23일 당내 모든 의원을 대상으로 한 '불체포특권 포기' 서약 추진을 1호 쇄신안으로 내놨다. 불체포특권은 현행범이 아닌 국회의원이 회기 중 국회의 동의 없이 체포나 구금되지 않는 권리로, 여당이 사법 리스크를 안고 있는 이재명 대표를 겨냥해 '내려놓자'고 압박했던 것 중 하나다. 혁신위는 '이재명 방탄 정당' 비판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선제적으로 이를 내려놓아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당 지도부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며 전면 수용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다. 일각에서는 검찰의 정치적인 영창 청구 등에 대한 세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지적부터 헌법 개정이 필요한 사항이기 때문에 포퓰리즘에 기댄 발표라는 등의 비판이 나왔다. 당 지도부는 체포동의안을 막기 위한 임시국회를 소집하지 않고, 회기 중이라도 체포동의안을 부결하지 않겠다는 내용으로 부분 수용 의사를 밝혔지만, 혁신위는 강경했다. 결국 '정당한 영장 청구'에 대해서는 불체포특권을 내려놓겠다는 조건을 붙여 7월 18일 의원총회에서 불체포특권 포기를 결의했다.
불체포특권은 헌법상 보장된 권리인 탓에 결의는 '선언적 의미'에 지나지 않지만, 그마저도 '부당한 체포 동의안'에 대해서는 불체포특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퇴로를 열어놓은 것이다. 1호 혁신안은 그렇게 한 달여 만에 가까스로 반쪽짜리 성과를 냈다.
◆혁신안 2호·3호도 "누구를 위한 쇄신안인가" 친명 vs 비명 갈등만
이후 내놓은 혁신안부터는 비명계의 반발을 사기 시작하면서 당내 갈등을 부추겼다.
"국회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 표결을 기명표결 방식으로 바꾸자."
1호 '불체포특권 포기 서약'에 대한 실질적 후속 조치로 나오게 된 2호 쇄신안이다. '국회의원 체포동의안 기명투표'는 표결 정보를 공개함으로써 국회의원이 책임을 무겁게 지고 국민의 알 권리도 보장하도록 하겠다는 취지였지만, 이 대표 구속영장 재청구 가능성이 거론되는 상황에서 곧장 '수박 색출용'이라는 반발을 샀다. 윤영찬 의원은 당시 YTN 라디오에서 "이 대표도 불체포특권 포기를 선언했고 여러 의원도 동참한 상황에서 이런 논의가 나오는 게 굉장히 구차해 보인다"고 꼬집었다.
마지막 혁신안인 '대의원 투표 배제·공천룰 변경' 제안은 친명-비명 갈등을 심화시키며 한동안 진통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혁신위는 "당 최고 대의기구인 당대표와 최고위원은 권리당원 1인1표 투표 70%와 국민여론조사 30%로 선출할 것을 제안한다"고 밝혔다. 현재 당 지도부를 선출하는 전국대의원대회(전당대회) 투표 반영 비율은 권리당원 40%·대의원 30%·여론조사 25%·일반당원 5%다. 그러나 민주당 권리당원이 100만명, 대의원은 1만6000명인 것을 고려하면 대의원 표의 가치가 지나치게 높게 반영된다는 문제가 제기돼왔다. 이번 혁신안 발표는 대의원제를 사실상 폐지하자는 것이라서 파장이 예상된다.
혁신위는 또 "선출직 공직자 상대평가 하위자에게도 과거보다 엄격한 잣대를 들이댈 수 있어야 한다"며 현재 하위 20%에게 경선 득표의 20% 감산을 적용하는 규정을 하위 10%까지는 40%, 10~20%는 30%, 20~30%는 20%를 감산할 것을 제안했다. 이외에도 18개 정부 부처별 '책임국회의원'을 1명씩 두는 '예비내각'(섀도캐비닛) 구성, 정책대변인제 신설 등을 언급했는데, 이는 이미 다른 정당에서도 과거부터 거론되어 왔던 제안들로 새로울 게 없다는 평이 나온다.
결국 '대의원제 폐지'가 가장 눈에 띄는데, 이번 혁신위 활동이 이재명 대표 강성 지지층인 '개딸(개혁의 딸)' 비중이 높은 권리당원의 투표 비중만 높여주고 끝났다는 분석이다.
고민정 최고위원은 11일 최고위 회의에서 "혁신위가 혁신안을 발표하고 퇴장했다. 내용을 보면 사실상 대의원제 폐지하고 공천룰을 변경하는 방안"이라며 "민생의 시급성을 다투는 것도 아닌 일로 지도부 선출을 위해 이런 무리수를 둬야 하는 이유를 찾기 어렵다. 민주당의 시스템 공천을 완전히 무시하는 발표"라고 지적했다.
양소영 민주당 전국대학생위원장도 같은 날 BBS라디오에 나와 "대의원제 설립 취지는 지역 불균형 해소를 위한 것"이라며 "대의원제가 없어진다고 해서 정당이 혁신 쪽으로 좋아진다는 보장은 어느 곳에도 없다"고 했다. 혁신위가 마지막 의제로 '대의원제 무력화'를 사명같이 던지고 나갔다는 말에는 "각종 논란에 대한 사과의 골든타임을 놓쳤다. 그러다보니 지지층에게라도 지지받고 명예롭게 퇴진하기 위해서 지지층 얘기를 들어야 되지 않았을까"라고 짚었다.
그러나 혁신위는 1인 1표가 갖는 의미를 부각했다. 김남희 혁신위원은 CBS라디오에서 "(대의원을) 당원이 직접 선출하는 게 아니라 추천이나 알음알음 돼 있는 대의원이 대부분"이라며 "대의원이 당원 의사를 대변하지 못한다는 불만이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선거가 어려웠던 때야 대의원 선거가 의미 있었지만, 지금은 온라인 투표도 잘 이뤄져 있어 당대표를 당원 손으로 뽑는 게 충분히 실현 가능하다. 또 민주적인 제도라고 생각해서 도입했을 뿐이지 결코 대의원제를 축소하거나 폐지한 것은 아니다"라고 전했다.
◆'김은경 혁신위', 혁신위는 빠지고 '김은경'만 남아…이재명 힘 실어주고 종료
이번 혁신위는 조직 자체보다 혁신위원장의 활동이 더욱 부각되며 구설 속에 막을 내렸다는 것도 한계로 지적된다.
김 위원장은 지난달 30일 "왜 미래가 짧은 분들이 1대 1로 표결해야 하나"라며 과거 아들과 나눴던 대화 중 일부를 언급했는데, 이러한 발언은 투표권이 남은 수명에 비례해 부여되어야 한다는 뜻으로 읽히며 노인 폄하 논란을 불렀다. 이후에는 "남편과 사별한 뒤 시부모를 18년간 모셨다"라는 말로 때아닌 '진실공방'에 놓이기도 했으며, 김호일 대한노인회장이 김 위원장 사진에 '사진따귀'를 때린 것을 놓고는 정치권서 '어른답지 못하다'는 공방이 벌어지기도 했다.
김 위원장 리스크가 누적되면서 결국 혁신위는 9월 초까지 예정된 활동을 조기에 마치게 됐다. 이에 대해 혁신위 내부에서도 짙은 아쉬움이 나타난다.
김 위원장은 10일 혁신위 활동을 마치며 "혁신안은 여러 위원이 치열하게 논의하고 논쟁해서 만들어낸 피땀의 결과다. 저의 여러 가지로 가려질까봐 가장 두렵다"고 했고, 혁신위원인 이해식 의원은 11일 KBS라디오에서 "혁신안 자체는 우리 당이 반드시 실천해야 할 그런 안"이라면서도 "김 위원장의 몇 가지 설화와 가족사 문제가 불거지면서 혁신 동력이 조금 손상이 되는 바람에 시기적으로 좀 일찍 마무리하게 돼 그런 점은 조금 안타깝다"고 말했다.
혁신위의 쇄신안은 오는 16일 열릴 정책의총과 28~29일 개최되는 워크숍 등에서 논의가 이뤄질 전망이다. 이재명 대표는 11일 회의 후 혁신안 평가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일단 혁신안은 혁신위의 제안이기 때문에 당내 논의를 거쳐서 합당한 결과를 만들어내도록 할 것"이라고 했다.
오주연 기자 moon170@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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