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관의 세계인문여행] '낭만 도시' 샌프란시스코를 추억한다
히피 운동 발상지, '프린세스 다이어리' 등 영화 배경
미국 서부에서 낭만적인 이미지를 가진 도시는 샌프란시스코다. 금문교, 케이블카, 롬바드 스트리트, 피셔맨스 워프, 그리고 알카트라즈…. 이런 명소들을 제외하고도 ‘샌프란시스코’가 들어간 세계적인 히트곡들을 우리는 금방 떠올린다. 또한 ‘프린세스 다이어리’, ‘인사이드 아웃’를 비롯한 얼마나 많은 영화가 샌프란시스코를 배경으로 나왔던가.
메이저리그(MLB) 팬들은 여기에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홈구장인 오라클 파크(Oracle Park)를 추가한다. 오라클 파크 외야는 바다와 면한다. 좌타자가 당겨서 장외 홈런을 치면 야구공이 바닷속으로 풍덩 빠진다. 1990년~2000년대 배리 본즈가 전성기 때 자이언츠 경기가 열리면 야구팬들이 보트를 타고 바다로 모여들었다. 실제로 배리 본즈는 여러 번 장외 홈런을 날려 팬들을 흥분시켰다.
샌프란시스코가 ‘마약 도시’로 변해 사람들이 떠나며 몰락의 길을 걷고 있다는 신문 기사를 읽었다. 대낮 중심가에서 마약에 취해 좀비처럼 비틀거리는 사람들을 쉽게 발견하는 곳이 현재의 샌프란시스코라고 한다. 이 기사를 접하며 샌프란시스코를 여행했던 추억들이 스쳐 갔다. 샌프란시스코 여행 경험을 가진 사람들 대부분이 그러했으리라. 샌프란시스코가 어쩌다가!
그 며칠 뒤에 전설적인 재즈 가수 토니 베넷(1926~2023)이 뉴욕에서 타계했다. 뉴욕타임스는 “전설적인 미국 송북(Song book) 챔피언이 세상을 떠났다”면서 발자취 기사를 2개 면에 걸쳐 통으로 게재했다. 송북은 ‘그레이트 아메리칸 송북’의 줄임말로, 20세기 미국을 대표하는 노래를 모아놓은 악보책이다. 뉴욕타임스가 발자취 기사를 2개 면에 걸쳐 다뤘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미국인이 토니 베넷을 어떻게 생각해왔는지를 미뤄 짐작하게 된다. 역대 대통령 못지않은 대우다.
그의 대표곡 ‘아이 레프트 마이 하트 인 샌프란시스코(I left my heart in San francisco)’. 이 곡은 샌프란시스코 찬가(讚歌)다. 더글라스 크로스가 쓴 가사를 다시 한번 음미해본다.
파리는 어딘가 슬픈 게이 같고, 로마는 지루하고, 맨해튼에서는 끔찍하게 외로웠고 길을 잃기도 했다. 이제 나는 고향, 나의 도시 샌프란시스코로 간다. 언덕 위 높은 하늘, 작은 케이블카, 아침 안개, 나의 사랑이 기다리는 샌프란시스코로.
이 노랫말은 고향 샌프란시스코를 떠나 뉴욕으로 이주한 무명 작가의 노스탤지아를 가사로 만든 것이다. 그런데 샌프란시스코를 띄우려다 보니 파리, 로마, 뉴욕은 추풍낙엽 신세로 전락한다. 이들 세 도시에서 공식 항의라도 해야 할 지경이다. 이러니 샌프란시스코 사람들이 어찌 이 노래에 열광하지 않겠는가. 뉴욕 퀸스 태생으로 평생 뉴욕에 살며 활동한 토니 베넷이 이 노래를 불렀다는 것도 역설적이다.
이 노래는 1953년에 작곡되었지만 적당한 가수를 찾지 못한 채 9년이나 방황했다. 그러다 1961년 12월 말 샌프란시스코 페어몬트 호텔에서 토니 베넷이 이 노래를 불렀다. 샌프란시스코 시장을 포함한 그랜드볼룸 참석자들이 순간 노래에 감동했고 기립박수를 했다. 1961년 1월 음반 제작에 들어갔다. 모두가 아는 것처럼 이 노래는 토니 베넷의 불멸 히트곡이 된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는 홈경기에서 이기면 축하곡으로 이 노래를 틀어주는 전통이 있다. 생전의 토니 베넷은 오라클 파크 야구장에 와서 여러 번 이 노래를 불렀다. 최근 미국 의회도서관 산하 국가녹음등록처는 이 노래를 보존작품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문화적으로, 역사적으로, 예술적으로 중요하다’는 것이 선정 이유다.
왜 세계인에게 샌프란시스코는 자유와 낭만의 도시로 각인되었을까. 토니 베넷의 히트곡에서 알 수 있듯 팔할은 음악의 힘이다. ‘아이 레프트 마이 하트~’ 가사 중에 ‘작은 케이블카들이 별을 향해 올라간다’는 가사가 보인다. 나는 개인적으로 샌프란시스코를 낭만적인 도시로 각인시킨 것은 금문교보다는 ‘작은 케이블카’라고 생각한다. 도시에는 언덕 위를 오가는 전차 노선이 3개 있는데, 가장 유명한 것이 파웰-하이드 선(線)이다. 이 케이블카를 타고 하이드 가를 오르다 보면 뒤로 피셔맨스 워프와 알카트라즈가 펼쳐진다.
영화 ‘프린세스 다이어리’는 샌프란시스코의 평범한 여고생(앤 해서웨이 분)이 어느 날 유럽 작은 왕국의 숨겨진 핏줄임이 밝혀지면서 공주가 된다는 줄거리다. 이 영화의 초반 5분은 전동킥보드로 등교하는 주인공을 보여준다. 등굣길이 케이블카 노선과 겹친다. 기막힌 풍광이 잡힌다. 이 광경을 보고 ‘저기 가보고 싶다’는 여행 본능이 꿈틀거리지 않을 사람이 과연 있을까.
샌프란시스코는 1966년에 시작된 히피 운동의 발상지다. 스콧 맥킨지가 1967년에 발표한 ‘샌프란시스코’가 세계적인 히트를 하면서 사람들은 샌프란시스코에 대한 로망을 키웠다. “샌프란시스코에 가면 머리에 꽃을 꽂으세요”로 시작되는 노래다.
샌프란시스코의 자유로운 공기는 세계적인 밴드를 키워냈다. 히피 운동 초창기 그들은 정체성의 연대를 다지는 경전(經典)이 필요했다. 그때 히피들의 눈에 헤르만 헤세의 ‘황야의 이리’가 들어왔다. 헤세가 1927년에 발표했지만 성공하지 못하고 묻히고 말았던 ‘황야의 이리’. 이 장편소설이 40년 만에 기적적으로 부활했다. 히피들은 주인공 ‘하리 할러’에 열광했다. ‘황야의 이리’가 독일어로 Steppenwolf(슈테픈불프)다.
존 케이가 샌프란시스코에서 밴드를 결성하며 그 이름을 슈테픈불프라고 지었다. 이름을 ‘황야의 이리’라고 짓자 그다음부터는 술술 풀려나갔다. 이 밴드의 대표적 히트곡이 ‘본 투 비 와일드’다. 이 노래가 1969년의 로드무비 ‘이지 라이더(Easy Rider)’의 주제가로 쓰이면서 히피 운동을 또 한 번 확산시켰다.
슈테픈불프보다 1년 앞선 1966년 샌프란시스코에서 탄생한 라틴록 밴드가 ‘산타나’다. 열아홉살 카를로스 산타나가 록과 라틴아메리카 재즈를 결합해 그때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라틴록이라는 장르를 개척했다. 밴드 산타나가 발표한 데뷔 앨범이 ‘압락사스(Abraxas)’.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 나오는 그 압락사스다. 산타나는 지금까지도 현역으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이런 음악적 전통을 이어받아 1983년 샌프란시스코 재즈 페스티벌이 시작됐다. 1980년 시작된 몬트리올 국제재즈페스티벌과 함께 권위를 인정받는다.
샌프란시스코는 오랜 세월 미국에서 ‘동성애의 천국’으로 불리곤 했다. 샌프란시스코로 단체여행을 하는 사람들은 “샌프란시스코에 처음 와서 길을 잃으면 동성애자라는 뜻”이라는 우스개를 듣곤 한다. 동성애자 인권단체 활동이 가장 활발한 도시 중 하나가 샌프란시스코다.
샌프란시스코는 아시아인이 미국으로 들어가는 관문이었다. 우남 이승만, 도산 안창호, 송재 서재필 등이 모두 요코하마항에서 여객선을 타고 태평양 건너 샌프란시스코에 내렸다. 다시 대륙횡단 열차를 타고 미국 동부로 들어가 독립운동을 펼쳐나갔다.
개인적으로 샌프란시스코는 나의 도시연구 장기프로젝트에 포함되는 도시이기도 하다. 뉴욕, 몬트리올, 샌프란시스코, 뉴올리안스 4개 도시의 공통점은 문화예술이 발달한 도시라는 점이다. 사람의 왕래가 잦고 바닷(강)바람이 불어오는 공간에서 인간은 개방적 사고를 하고 자유를 추구하게 된다.
샌프란시스코는 자유와 낭만의 이미지를 가진 도시지만 20세기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아픈 상처가 드리워져 있다. 1900년 봄,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에서 첫 페스트 사망자가 발견되었다. 홍콩에서 들어온 선박에 중국인 밀항자가 있었고 이들이 페스트를 시내로 퍼트렸다. 차이나타운의 중국인 사망자 시신을 검안한 의사가 페스트가 확실하니 적절한 검역 조치를 시행하라고 권고했다. 하지만 시 당국은 시정 혼란을 우려를 해 이를 묵살했고, 그러는 사이 페스트는 무섭게 퍼져나갔다. 1900년 말이 되어서야 검역이 시행되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페스트 환자는 급속히 늘어갔다. 미국 대통령이 1903년 샌프란시스코 여행금지령을 발령하고 나서야 페스트는 종식되었다.
그날은 1906년 4월 18일. 페스트 공포에서 벗어난 지 3년이 흐른 시점이었다. 진도 7.8의 지진이 강습해 사흘 동안 도시 전체를 뒤흔들었다. 이 대지진으로 최소 3000명 이상이 사망했고 샌프란시스코의 80%가 파괴되었다. 샌프란시스코 대지진은 미국 역사상 최악의 자연재해로 기록된다. 샌프란시스코는 페스트와 지진을 이겨낸 도시다. 그 저력을 되살려 ‘좀비 도시’의 이미지를 극복하기를 소망한다.
조성관 작가·천재 연구가
'지니어스 테이블' 운영자, 전 주간조선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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