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글돈글]"실업수당 타는 부자들"…기존 경제 관념 깬 美 '리치세션'

이지은 2023. 8. 12.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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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세계 여러 중앙은행이 치솟는 물가를 잡고자 공격적인 금리 인상에 나서면서 전 세계 경제에는 먹구름이 드리워졌습니다. 이 같은 상황에서도 미국만큼은 비교적 밝은 경제 전망을 나오고 있습니다. 시장은 미국이 인플레이션 위기를 극복하고 완만한 경기 둔화 양상을 보일 것이라는 '연착륙' 가능성에 무게를 싣고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의 부유층들에게는 이러한 희망이 통하지 않는 모양새입니다. 최근 미국의 부유층들은 미국에 경제침체가 이미 닥친 것처럼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합니다. 이는 통상 경제 침체가 오면 저소득층일수록 큰 타격을 입고 부유층은 약간의 불편함만 겪는다는 기존의 통념을 깨뜨리는 현상입니다. 오늘은 왜 부유층에 한정된 경기침체를 뜻하는 이른바 '리치세션'이 도래했는지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美 실업자 3분의 1, IT 종사자…고소득자 실업수당 청구 늘어

최근 미국 고용시장에서는 고소득자들이 대거 일자리를 잃는 양상이 관측되고 있습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fA)연구소에 따르면 최근 고소득층이 실업급여를 수령한 건수가 상대적으로 소득이 낮은 그룹을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BofA가 실업급여를 지급하는 30개 주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지난 4월 기준 소득이 연간 12만달러(1억6000만원) 이상인 가구들의 실업급여 수령 건수가 전년 대비 40%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는 5만 달러 미만 가구의 증가율 대비 5배 이상 높은 수치입니다.

부유층이 대거 일자리를 잃은 배경에는 IT 기업들의 대규모 감원이 원인으로 자리합니다. 고연봉을 주기로 유명한 거대 IT 기업들이 팬데믹 이후 구조조정에 들어가면서 고소득층 중심으로 실업자가 늘어난 것이죠.

페이스북 모기업 메타 [이미지 출처= 로이터연합뉴스]

실제로 미국의 구직 관련 회사인 '챌린저, 그레이 앤드 크리스마스'에 따르면 올해 기업들이 발표한 정리해고 인원의 3분의 1은 페이스북의 모회사인 메타와 같은 IT기업에서 나온 것이라고 합니다. 지난해 메타 직원들의 연봉은 평균 29만6320달러, 한화로 4억원에 육박합니다. 과거 포드가 인원 감축에 나섰을 때 고숙련 엔지니어들을 중심으로 대량 해고에 나섰던 것과 같이 이번에도 고임금 직원들을 중심으로 구조조정이 시행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반면 전체적인 미국의 고용시장은 견조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요. 최근 미국의 실업급여 청구 건수는 지난해 들어 평균 22만건대에 머무르며 코로나19가 확산했던 2020년 초와 비교해 상당히 낮은 수준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기업들이 팬데믹 종료 이후 극심한 일손 부족을 호소하면서 일자리도 넘쳐나는 상황입니다.

캘리포니아의 슈퍼마켓 [이미지출처=AFP연합뉴스]

특히 일자리 수요가 대부분 저숙련 서비스업에 몰리면서 저임금 노동자들은 이전보다 개선된 처우를 누릴 수 있게 됐습니다. 애틀랜다 연방준비은행의 임금 추적기에 따르면 지난 5월을 기준으로 소득 하위 25%의 임금인상 폭은 6.8%로 상위 25%의 인상 폭(5.6%)을 웃돌았습니다. 기업들이 서비스 분야 종사자들을 구하고자 앞다퉈 급여를 올리면서 팬데믹 이전까지 40년간 지속돼왔던 부유층과 저소득자 간의 임금 불평등이 4분의 1로 줄었다는 평가도 나옵니다.

부자들의 소득 감소…美 내수경기에 악영향

리치세션은 단순히 부유층들의 경제적 고통에 끝나지 않고 결국은 미국 내수경기에도 타격을 가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뱅크오브아메리카 연구소는 부유층이 임의 소비재에 쓴, 지난 4월의 신용 및 직불 카드 지출이 전년보다 줄었다고 밝혔습니다. 반면, 다른 가구들은 증가했다고 밝혔습니다. 임의 소비재란 생활에 필수적이진 않지만, 레저와 사치품 등 가계의 재정 상태에 따라 소비하는 품목을 일컫습니다. 임의 소비재 시장 매출의 60%는 소득 상위 40%에 속하는 부유층의 소비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부유층들로 지탱되면 미국의 럭셔리 산업에는 비상이 걸렸습니다. 숙박비가 1박에 1000달러를 호가하는 미국의 고급 호텔과 호화 여행상품을 내놓던 여행사들은 고소득자들이 연말에 받는 억대 보너스로 인해 굴러갔다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나 IT기업들이 성과급을 줄이고 해고에 나서면서 5성급 호텔들과 여행사들이 수익 감소에 직면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옵니다. 고소득 여행객을 공략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항공편을 늘리지 않고 비행기 티켓값을 올렸던 항공사들도 난감한 상황에 부닥치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리치세션은 경제가 둔화하면 저소득층이 더 많은 타격을 입게 된다는 기존의 경제 관념을 깨뜨리는데요. 연착륙에 대한 기대가 실리며 경제 대국의 힘을 보여줬던 미국이 과연 리치세션은 극복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이지은 기자 jelee0429@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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