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래 녹음' 그때그때 판결 달랐다…주호민 아들 사건 딜레마
“주변에서 ‘증거수집이 위법하다’고 주장하자는 얘기가 많다. 이를 주장하면 유리하겠지만, 장애아동에 대한 편견을 부추길 수 있기 때문에 재판에서 크게 다투지는 않을 생각이다.”
웹툰작가 주호민씨 부부의 자녀를 정서적으로 학대했다는 혐의(아동학대)로 재판을 받는 특수교사 A씨의 변호인 전현민 JS법률사무소 변호사는 재판 전략 상의 딜레마를 토로했다. 검찰이 지난해 12월 A씨를 기소하면서 제시한 가장 유력한 증거는 주씨가 자녀의 가방에 녹음기를 숨겨 몰래 녹음한 A씨의 말들이었다. 검찰은 이 녹음에 담긴 “진짜 밉상이네. 도대체 머릿속에 뭐가 들어있는 거야. 너 싫어죽겠어” 등의 말이 정서적 학대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A씨 입장에선 몰래 녹음이 위법해 이 말 자체를 증거로 쓸 수 없다는 결론을 얻을 수만 있다면 쉽게 혐의를 벗을 수도 있지만 A씨 측은 “문제의 말들이 전후 맥락상 학대에 해당하기 어렵다는 점을 강조하겠다”(전 변호사)는 차선책을 택했다.
━
그때 그때 달랐던 판결들
통신비밀보호법에 따르면 공개되지 않은 타인 간의 대화를 녹음하거나 청취하는 행위는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형으로 처벌될 수 있다. 몰래 녹음은 그 자체가 범죄에 해당하는 만큼 적법한 절차에 따라 수집한 증거가 아니라고 평가될 가능성이 있다. 이 때문에 교사의 아동학대 혐의에 대한 재판에선 위법수집 증거 배제 원칙이 핵심 쟁점으로 부상하곤 한다.
실제로 서울 광진구의 한 초등학교 교사 B씨의 사건에선 몰래 녹음의 위법성이 최대 쟁점이다. B씨는 지난 2018년 3월 초등학교 3학년 C군에게 “학교 안 다니다 온 애 같아. 1,2학년 때 공부 안 하고 왔다 갔다만 했나봐” 등의 발언을 했다는 이유로 아동학대 혐의로 기소됐다. 기소를 뒷받침 하는 핵심 증거는 주씨와 같은 방식으로 획득한 몰래 녹음이었다. 서울동부지법은 2020년 1월 “학대행위를 의심할 만한 정황이 있어 부모가 상황을 파악해 학대행위를 방지하기 위해 녹음한 것”이기 때문에 위법수집된 증거를 배제해야 한다는 B씨 측의 주장을 배척했다. 이 사건은 대법원에 3년째 계류중이다.
대구에서 생후 10개월 아동을 학대한 혐의를 받는 아이 돌보미에 대한 재판에선 몰래한 녹음의 일부에 대해 증거능력이 부인되기도 했다. 아이 돌보미 D씨는 2017년 9월 잠을 자지 않고 우는 아이에게 “미쳤네, 돌았나. 제 정신이 아니지. 또라이 아니냐” 는 등 소리를 질렀다가 기소됐다. D씨의 욕설 등은 아이의 엄마가 집에 설치한 녹음기에 고스란히 담겼다. 대구지방법원은 이 녹음에 담긴 내용 중 일부였던 D씨와 그 자식과 통화 내용에 대해선 “통신비밀보호법상 타인 간의 대화에 해당해 증거능력이 없다”고 판단했다. 같은 녹음에 담긴 내용 우는 아이에 대한 D씨의 반응은 증거로 채택했는데 “아이의 울음소리는 감정 표현일뿐 대화로 볼 수 없다”는 이유를 달았다. 울음소리는 ‘타인 간의 대화’의 일부가 아니라고 본 것이다.
하급심 판결에선 몰래한 녹음 행위 자체의 처벌 가능성과는 별개로 녹음의 증거능력이 비교적 폭넓게 인정돼 오곤 했다. 지난 2020년 12월 자신의 학급 학생들에게 폭언한 초등교사 C씨에 대한 아동학대 재판에서 수원지방법원은 “초등교육의 공공성을 고려할 때 담임교사와 학생들 사이 대화를 '공개되지 아니한 타인 간의 대화'로 볼 수 없다”며 부모들이 몰래한 녹음 내용을 증거로 인정했다. 몰래 녹음 외에 다른 증거수집 수단이 마땅치 않다는 점도 이같은 판단 경향의 배경으로 작용해 왔다.
━
“위법 수집 증거” vs “공익 차원 예외”
법조계에선 의견이 팽팽히 갈리고 있다. 전수민 법무법인 현재 변호사는 “주씨와 같은 사례처럼 교실에서 몰래 녹음을 한다면 주씨의 자녀와 해당 교사 뿐만 아니라 다른 아이의 목소리까지 녹음된다”며 “그 자체로 지나친 음성권 침해이자 교사의 수업권 침해”이라고 말했다. 신민영 법무법인 호암 변호사도 “고성이나 폭행하는 소리는 대화가 아니라 증거로 볼 수 있지만, 아동과 주고받은 대화 내용은 증거가 될 수 없다”며 “주씨 측은 대화의 톤이 아니라 내용을 문제 삼고 있어 증거가 기각될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반면 김한규 법무법인 공간 변호사는 “몰래 녹음하는 방법 외에 정서적인 아동학대를 확인하기 어렵다”며 “아동학대라는 특수성을 고려한 폭넓은 법리 해석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녹음 내용에 위법성이 있고, 개인 사생활 침해 피해보다 공익적 이익 더 크다면 증거로 볼 수 있다.”며 “특히 주씨의 아들의 경우 발달장애 아동이기 때문에 공익적 차원에서 증거로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찬규 기자 lee.chankyu@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수능 폐지 외치는 수능 창시자 “지금 수능, 공정하지 않다” | 중앙일보
- "학생, 그냥 타" 기사 배려에…버스 회사에 '통 큰 보답' 한 부모 | 중앙일보
- '바다의 산삼' 전복값 반토막 났다…엎친데 덮친격, 어민 울상 왜 | 중앙일보
- 일론머스크 두 아이 낳고 결별…35세 여가수 "인생 최고 인턴십" | 중앙일보
- 회식 중 캐디 볼 꼬집고 추행…"기억 안나" 30대 마스터 집유 | 중앙일보
- "박수홍, 막냇동생 증언에 흐느껴"…다음 재판, 모친이 법정 선다 | 중앙일보
- 尹 부부도 이재명도 노린다…테러에 몸떠는 정치권의 업보 | 중앙일보
- "칼에 찔려 찼는데 내가 피의자"...이러니 한동훈 말 믿을수 있나 | 중앙일보
- 20초 얼어붙은 81살 의원, 결국 퇴장했다…美 장로정치 논란 [세계 한잔] | 중앙일보
- 잼버리 4만명 '한국어 떼창'…월드컵 경기장 뒤흔들었다 |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