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 두말 얘긴 뭐지? 철조망을 오선지 삼은 '휴전선의 예술' [정전 70년 한미동맹 70년]
6ㆍ25 전쟁이 끝난 뒤 휴전선은 전쟁ㆍ분단ㆍ이산 등 비극의 상징으로 예술 작품에 녹아들었다.
가수 남인수는 전쟁이 끝난 이듬해인 1954년 ‘휴전선 엘레지’에서 ‘불효자의 이 자식은 휴전선을 바라보면 눈물만 젖소’라며 이산의 아픔을 노래했다. 시인 박봉우는 57년 『휴전선』에서 ‘철조망’‘벽’‘피’로 나타낸 현실을 ‘나비’‘기’로 표상하는 열망으로 극복하고자 했다.
휴전선이 낳은 작품 중 가장 유명한 것은 ‘비목’과 ‘늙은 군인의 노래’이다.
‘나무로 만든 비’라는 뜻의 비목(碑木)은 한명희 전 국립국악원장이 64년 학군사관(ROTC) 임관 후 제7 보병사단(칠성부대) 백암산 관측소(OP)에서 소대장으로 근무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가사를 썼다. 백암산 주변에선 정전 직전인 53년 7월 금성 전투와 4ㆍ25고지 전투로 당시 전사자가 많았다
한 전 원장은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순찰로 곳곳에 유골과 유해가 즐비했고, 돌무지 위 십자가 모양의 나무가 썩어가고 있었다. 전투 도중 전우의 시체를 수습하지 못하고 주변의 돌로 쌓아놓고 나무비석을 세웠던 것으로 보였다”고 말했다.
68년 TBC(JTBC의 전신 동양방송) 라디오 PD였던 한 전 원장은 통행금지 때문에 숙직실에서 앉아 적은 가사가 ‘초연이 쓸고 간 깊은 계곡/ 깊은 계곡 양지 녘에…’다. 작곡가 고 장일남씨가 곡을 붙여 69년 발표됐다.
가슴에 와 닿는 가사로 ‘비목’은 91년 ‘한국인 애창가곡 1위’에 올랐다.
‘늙은 군인의 노래’를 작사ㆍ작곡한 김민기는 카투사로 복무하던 중 그가 만든 노래들이 운동권 노래로 불린다는 이유로 강원도 인제군 원통면의 제12 보병사단(을지부대) 51연대 1대대 중화기 중대로 전출됐다.
그는 76년 겨울 그곳에서 30년의 군 생활을 접고 전역하는 병기 담당 부사관으로부터 자신의 얘기를 노래로 만들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막걸리 두 말을 대가로 지은 게 이 곡이다.
78년 양희은이 부른 이 노래는 한때 구전가요로 전해져야만 했다. ‘군기해이’와 ‘사기저하’라는 이유로 금지곡으로 지정됐기 때문이다.
이후 대학가와 노동현장에서 저항가요로 더 많이 알려졌다. 특히 ‘군인’을 ‘노동자’로, ‘푸른 옷’을 ‘작업복’으로 가사를 바꾼 ‘늙은 노동자의 노래’로도 유명했다.
노래 속 ‘늙은 군인’은 ‘푸른 옷’(군)에서 보낸 청춘을 되돌아보면서 느낀 소회를 담담히 읊는다. 그러면서 ‘아들아 내 딸들아 서러워 마라/너희들은 자랑스런 군인의 자식이다’며 그 시간을 결코 헛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2018년 현충일 추념식, 2020년 6ㆍ25 전쟁 제70주년 행사, 2021년 장진호 전투 참전용사 유해 봉환식 때 '늙은 군인의 노래'가 불렸다.
이철재 기자 seaja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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