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정부 안받으면 더 혼란"...재정계산위, 구체 연금개혁안 안낸다

신성식 2023. 8. 12.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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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한 국민연금공단 지역본부 사옥. 뉴시스

국민연금 개혁을 논의 중인 전문가 위원회가 구체적인 연금 개혁안을 내지 않기로 결정했다. 대신 복수의 시나리오를 제시하고 정부가 선택하게 한다는 것이다.

국민연금 재정계산위원회는 11일 제20차 회의를 열어 이런 방향으로 보고서를 작성해서 30일께 공청회에 공개하기로 했다. 재정계산위원회는 국민연금법에 따라 5년마다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따져 개혁안을 만드는 역할을 한다. 올해는 5차 재정재계산이다. 출산율·고령화·경제성장률·기금운용수익률 등의 주요 변수를 따져 연금의 지속가능성과 노후소득보장 기능을 유지하기 위해 개혁안을 제시한다. 위원회는 민간전문가 12명, 복지부·기재부 담당 국장이 참석하며 위원장은 김용하 순천향대 IT금융경영학과 교수가 맡고 있다.

2018년 8월 국민연금 제도발전위원회(지금의 재정계산위원회 격)는 두 가지 개혁안을 제시했다. 1안은 ‘소득대체율 45%+보험료 2%p 인상’, 2안은 1단계 ‘소득대체율 40%+보험료 4.5%p 인상’에 이어 2단계로 수령개시 연령을 65세에서 67세로 늦추는 안이었다. 그 전에는 다수안, 소수안이라는 형식으로 구체적인 안을 제시했다.

재정계산위원회는 지난해 말 이후 회의를 이어오면서 구체적인 개혁안을 내지 않기로 의견을 모아왔고, 11일 회의에서 이 방침을 확정했다. 위원회에 정통한 관계자는 “과거 위원회가 구체적인 안을 냈지만, 정부가 수용하지 않아 오히려 혼란을 야기한 면이 있다”면서 “그래서 이번에는 그간 논의를 바탕으로 여러 가지 시나리오를 만들어 제시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연금보험료(현재 소득의 9%)를 12%, 15% 등 3개로 올리는 것을 가정하고 여기에다 추가적인 수단을 얹을 경우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보여주는 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연금 지급개시연령(올해 63세, 2033년 65세)을 65세에서 67세로 늘리는 방안, 기금운용수익률(평균 4.5%)을 1%p 높이는 방안 등을 조합하는 것이다. 청년층은 보험료 인상보다 연금 지급개시연령을 늦추는 걸 선호하는데,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는 것이다. 기금운용수익률을 1%p 올리면 기금 고갈을 5년 늦출 수 있어 이 점도 반영된다.

또 다른 관계자는 “종전 재정계산처럼 딱 떨어지는 안을 제시하지 않고, 이런저런 경우의 수를 제시해 되도록 많은 정보를 제공하자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라며 “이 때문에 공청회에 나올 안이 산만하다거나 모호하다는 지적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12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국민연금공단 서울북부지역본부. 연합뉴스

소득대체율 상향 안도 반영될 전망이다.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생애소득대비 연금액의 비율)이 31%(경제협력개발기구 기준)로 낮아서 이를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 있어 이번에 이를 일부 반영한 시나리오가 제시될 전망이다.

재정추계위원회는 이달 초 보고서 작성을 책임지는 5명의 편집위원회를 꾸려 보고서 초안을 만들어왔다. 11일 회의에서는 시나리오를 하나씩 테이블에 올려서 보고서에 담을지를 표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위원은 소득대체율 관련 안이 미흡하다고 반발하면서 퇴장했다. 다른 관계자는 “11일 열린 20차 회의가 사실상 마지막 회의이다. 그러나 아직 이견이 완전히 조율되지 않아 공청회 이전에 조정할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재정추계위원회 산하에는 재정추계전문위, 기금운용발전 전문위가 있다. 재정추계전문위는 지난 3월 국민연금 기금의 소진 시점이 2057년(4차 재정계산)에서 2055년으로 2년 당겨진다는 추계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재정추계위원회는 이번에 다양한 시나리오를 제시하되 70년 후인 2093년까지 기금이 유지된다는 것을 목표로 잡았다고 한다.

위원회는 30일께 열리는 공청회를 통해 의견을 수렴한 뒤 9월 중 최종 보고서를 작성해 복지부에 제출할 예정이다. 정부는 이를 참고로 해서 정부 개혁안을 만들어 10월까지 국회에 개혁안을 담은 국민연금 종합운용계획을 제출하게 돼 있다.

2018년 4차 재정계산 때는 정부는 제도발전위원회가 제안한 2가지 안을 그대로 담지 않고 소위 ‘사지선다 안’을 국회에 제출했고, 국회와 정부가 이마저도 손대지 않는 바람에 연금개혁이 5년 더 늦어지게 됐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이번에 정부가 어떻게 할지 관건이다. 재정계산위원회가 구체적인 개혁안을 제시하지 않았기 때문에 정부의 개혁안도 보험료 인상 목표치 같은 구체적인 숫자를 제시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내년 총선을 6개월 앞둔 시점인 점을 고려하면 숫자 없는 (非) 모수개혁으로 갈 개연성도 없지는 않아 보인다.

한편 이번 보고서에는 기초연금 개혁 방향이 어느 정도 담긴다. 대상자(노인의 소득 하위 70%)를 줄이되 빈곤 노인에게 차등적으로 더 많이 지급하는 안이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또 퇴직연금은 퇴직금을 중도에 인출하기 어렵게 하고 연금 형태로 받게 만드는 안이 포함될 전망이다. 세제 혜택을 강화해 이런 방향으로 가도록 유도한다는 방침이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ss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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