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격도 지피지기면 합력의 길이 보인다
군서교회 전교인 수련회에 가보니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성격 유형 검사 중 하나인 ‘MBTI’를 묻고 답하는 게 흔한 요즘이다. 초등학생도 자기 MBTI를 알 정도다. 지난해 미국 CNN 방송은 MBTI에 사랑에 빠진 한국을 조명하기도 했다. 그런데 요즘 MBTI와 같은 성격 유형 검사 결과에 따라 서로를 구분 짓고 경계하며 배척한다는 우려가 적지 않게 나오고 있다. MBTI 유형 중 사고형(Thinking)인 T를 두고 공감 능력이 떨어진다며 “너 T야?” 하는 비난 조의 말이 유행어가 되다시피 한 일이 단적인 예다. 하지만 교회나 기독교인까지 이런 흐름에 편승해야 할까. 교회는 성격 유형 검사를 자신과 상대방을 탐색하는 도구로 선용하면서 하나님이 주신 공동체를 이뤄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경기도 시흥 군서교회는 지난달 30일부터 31일까지 전교인 수련회를 개최했는데 여기서 MBTI와 또 다른 성격 유형 검사인 DISC를 진행하고 그 결과를 해석하며 삶에 적용하는 시간을 가졌다. 지난달 31일 성격 유형 검사와 관련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수련회 현장을 방문했다.
교회엔 고등부 학생부터 권사, 장로 등 70여명이 본당에 모여 있었다. 이날 성격 유형 검사를 위해 초빙된 박은정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상담심리학) 교수는 “교회가 교인을 대상으로 심리 유형 검사를 실시하는 사례가 코로나19 대유행 이전보다 2~3배 증가한 것 같다”고 했다. 전날 주일 예배 후 진행된 DISC 강연에는 120여명이 참석했다고 한다.
교회는 사회와 마찬가지로 다양한 성격의 사람이 모이는 곳이다. 이날 군서교회에서도 장로들의 경우 모두 다른 성격 유형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찬양 인도자는 같은 성격 유형의 성도들이 기찻길을 만들어 돌면서 찬양하도록 유도했다. 그동안 다른 성격 때문에 다른 행동 유형을 보였던 서로를 이해하자는 취지였다.
성도들은 MBTI 검사에서 자신의 성격 유형과 반대 성향을 종이에 적고는 “나는 앞으로 나와 반대의 MBTI를 사랑하고 그 부분을 계발할 것입니다. 나아가 반대 성향의 성도를 관찰하고 이해함으로써 함께 선을 이룰 것입니다”라고 외쳤다.
대표적 성격 유형 검사는 MBTI와 DISC로 알려져 있다. MBTI는 외향·내향, 감각·직관, 사고·감정, 판단·인식 등 지표에 따라 성격을 16개 유형으로 분류하고 이를 4개의 알파벳 조합으로 표현한다. 미국인 모녀인 캐서린 쿡 브릭스와 이사벨 브릭스 마이어스가 스승인 스위스의 심리학자 칼 융의 이론에 기반해 만들었다. DISC는 주도형(Dominance), 사교형(Influence), 안정형(Steadiness), 신중형(Conscientiousness) 등 4가지 행동 패턴으로 구분한다. 미국 심리학자인 윌리엄 몰튼 마스톤이 인간 행동을 설명하는 이론을 처음 소개했다.
박 교수는 “자신이 원래 가지지 못한 부분을 상대에게서 관찰하고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이 MBTI와 DISC 등 성격 유형 검사의 본래 목적”이라면서 “교회에 모든 유형의 성격 소유자들이 섞여 있으면 화합이 어렵고 깨질 것 같아 보이지만 오히려 부흥의 요소가 될 수 있다. 성경대로 사랑 가운데 하나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누가 숫자를 좋아하는지, 누가 사교적인지, 누가 설득력이 있는지 등 저마다의 강점을 활용해 봉사할 수 있고 더 나아가 서로를 보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군서교회 성도들은 오랫동안 함께 신앙생활을 하면서 친숙하게 지냈지만 서로의 성격을 진지하게 들여다보는 시간은 없었다. 그렇기에 성격 유형 검사가 주를 이룬 이번 수련회에 참석한 교회 성도들은 “나 자신과 이웃에 대해 알게 돼 행복하다”고 입을 모았다.
서혜숙(69) 권사는 “태어나 처음으로 MBTI 검사를 받았는데 나를 알 수 있고 점검하는 계기가 됐다”면서 “ISTJ로 ‘세상의 소금형’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사실 그런 성격 탓에 주변 사람과 타협할 줄 몰라 남에게 상처를 줬던 적도 있었다”고 반성했다. 서 권사는 주도적 성향으로 2년여 교회 주방에서 궂은일을 도맡아 하고 있다. 그는 “건강이 허락하는 한 봉사를 계속할 것”이라며 “앞으로 주변 사람의 마음을 돌보며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
이선구(46) 집사는 “과거 MBTI 검사를 하고선 ‘나는 이런 기질로밖에 살 수 없구나’ 생각하며 부족한 부분을 콤플렉스로 여겼다”며 “이번에 교회에서 진행한 검사 결과를 통해 앞으로 무엇을 발전시키며 살아야 하는지를 고민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는 “과거엔 나와 잘 안 맞는 사람을 보면서 ‘저 사람은 왜 저럴까’ 하며 정죄하던 적도 있었다”며 “장점이 될 만한 성품을 누구나 가졌다는 생각이 들면서 ‘축복송’을 불렀는데 눈물이 났다”고 고백했다.
고등부에 출석 중인 박세희(17)양도 “그동안 MBTI 결과를 가지고 친구와 잘 맞거나 혹은 잘 맞지 않는다는 식으로 생각했는데, 앞으론 서로 다른 성격을 이해하고 부족한 부분을 채워가는 데 집중해보겠다”고 했다.
기독 심리학 전문가들은 심리 유형 검사의 기초가 되는 심리 유형론의 최종 목표는 예수님의 형상을 닮은 우리가 전체성(wholeness)을 회복하는 데 있다고 강조했다. 목회자 집안에서 태어난 융의 심리 유형론도 이와 일맥상통한다. 우리는 살면서 언어나 행동에서 단편적인 부분만 드러낸다. 숨겨지거나 미처 활용하지 못한 잠재적 기질을 발현시키는 것이 전체성 회복이다.
예를 들어 서로 다른 성향의 교인이 부딪쳐 잡음이 생기는 경우, 교회는 이들을 같은 공동체에서 분리하기보다는 서로 함께할 시간을 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다른 부분을 관찰하고 이해할 기회가 생긴다. 상대를 공감하면서 결국 자신에게 드러나지 않는 잠재적 성격마저 계발할 수 있게 된다. 이는 우리에게 공동체를 허락하신 하나님의 뜻과 일맥상통하며 이를 통해 합력하여 선을 이룰 수 있다.
박순겸 군서교회 목사는 “좋은 목회자는 ‘설교만 잘하면 됐지’라고 생각했는데 성도 한 사람의 마음을 아는 게 우선이더라”며 “공동체 안에서 각자의 장점은 서로 도움이 될 수 있고 단점이라고 여긴 성격은 상대방으로부터 채울 수 있다고 매번 강조한다”고 전했다.
성도를 성격적으로 이해하는 성격 유형 검사는 목회를 위한 좋은 도구가 될 수 있다. 상담심리학 석사 학위를 마치고 박사 과정을 밟는 경기도 부천 소명교회 최영한 목사는 “교회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 ‘기도와 은혜로 해결하라’는 이야기는 성도 입장에서 이성이 없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며 “성도의 삶과 성격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가 좋은 목회의 마중물이 된다”고 했다.
한국상담치료연구소장인 김충렬 박사는 “‘믿습니다’만 외치는 시대는 끝났다”며 “사회적 흐름에 대응하는 차원에서라도 목회자는 MBTI를 이해하고 실제 목회에 적용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과거 믿음을 기준으로 직분이나 사역을 맡기던 전통적인 교회 운영 방식에서도 탈피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MBTI 등 성격 유형 검사가 자기 인식에 의존한 결과이므로 부정확할 수 있다는 맹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도 했다. 김 박사는 “유형 검사가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는 문제의식과 성격 유형이 능력 수치로 혼동하는 문제 등은 경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시흥=글·사진 신은정 기자 se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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