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 인상에도 저축은행 왜 적자 날까

명순영 매경이코노미 기자(msy@mk.co.kr) 2023. 8. 11. 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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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중은행으로 ‘역무브’…서민대출도 ‘뚝’

“열심히 대출해봐야 지금 같은 고금리에서 적자를 피하기가 힘듭니다. 저축은행은 수익성을 관리하기 위해 일부러 대출을 줄이고 있어요.”

서울의 한 대형 저축은행 지점장의 하소연이다. 저축은행 관계자들은 “대출을 늘리면 늘릴수록 고스란히 손해”라고 말한다.

저축은행의 고심은 숫자로 고스란히 나타난다. 올해 상반기 은행계 저축은행 6곳(IBK·KB·NH·신한·하나·우리)의 총 당기순이익은 261억원 적자다. 지난해 상반기 861억원 순이익을 낸 걸 감안하면 실적이 눈에 띄게 나빠졌다. 감소폭이 가장 큰 곳은 우리금융저축은행이다. 지난해 상반기 90억원의 순이익을 냈던 우리금융저축은행은 올해 상반기 260억원의 순손실을 내며 적자로 전환했다. 보통 은행은 금리가 오를 때 수익이 커진다. 예금 금리 대비 대출 금리를 높여 예대마진 상승효과를 누릴 수 있어서다. 그런데 왜 저축은행은 되레 적자가 날까.

금융권은 저축은행업계의 적자전환이 예상된 수순이었다고 본다. 통상 저축은행은 은행권 예금 금리보다 0.8~1%포인트 높은 금리를 제공해 수신을 유치한다. 지난해 말 자금 시장 경색으로 은행권 예금 금리가 5%를 넘어서자 저축은행들도 최대 6% 금리를 주는 예금 상품을 출시하는 등 수신금리를 빠르게 올렸다. 문제는 시중은행과 달리 저축은행은 수신으로 대부분 자금을 조달하기 때문에 수신금리 인상이 조달비용 증가로 이어진다는 사실이다.

전문가들은 저축은행이나 대부업이 대출을 줄이면 불법 사금융으로 대출자가 몰리는 ‘풍선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 우려한다. 이를 방지하려면 법정 최고금리를 탄력적으로 운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연합뉴스)
은행계 저축은행 상반기 적자

지난해 861억 흑자서 ‘급전직하’

최근 들어서도 금리 경쟁이 치열해졌다. 전국 79개 저축은행 정기예금(12개월) 평균 금리는 4.03%다(저축은행중앙회 8월 1일 기준). 지난 7월 1일 3.97%에서 한 달 사이 0.06%가 올랐다. 저축은행 예금 금리가 다시 오른 것은 시중은행들이 정기예금 금리를 높여서다. 최근 5대 은행의 정기예금(12개월 기준) 최고금리가 3.5~4.05%를 기록하며 오름세를 이어가 저축은행업계 불안감은 더욱 심해졌다.

저축은행들은 1금융권으로의 ‘역머니무브(자금 이탈)’를 가장 우려한다. 그간 시중은행보다 더 높은 금리를 제공해 고객을 확보했지만 이제 금리 이점이 떨어지면서 자금 이탈 속도가 가팔라졌다는 분석이다.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에 따르면 상호저축은행 수신고는 올해 1월 120조7854억원에서 2월 118조9529억원으로 줄어든 후 5월 114조5260억원까지 쪼그라들었다.

저축은행이 수익성 관리에 나서자 서민대출 통로도 사실상 막혔다. 저축은행업계 관계자는 “저축은행이 수익성과 건전성 확보 차원에서 대출을 적극적으로 시행하기 어려워졌다”며 “특히 하반기에는 자영업자·소상공인 코로나19 금융 지원 종료,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등 어려운 과제가 많아 중·저신용자 등에 대한 대출 어려움이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대부업도 비슷하다. 저축은행 대출이 막힌 서민들이 대부업을 찾고 있지만 대부업도 수익성 관리에 돌입했다. 대부업자 상위 10개사의 조달금리는 지난해 말 기준 5.81%로 전년 동기 대비 1.16%포인트 증가했다(김희곤 국민의힘 의원 자료). 상위 10개 대부업체 중 한 곳인 A사는 조달금리 5.63%, 대손설정 11.03%, 모집비용 2.86%, 관리비용 5.6% 등 영업비용을 더할 경우 손실이 나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대출 금리가 25.12%에 달한다.

이런 이유로 대부업 신규 대출액(개인대출)은 지난해 상반기 1조640억원에서 하반기 5570억원으로 절반가량 감소했다. 신용대출은 4535억원에서 2592억원으로, 담보대출은 5099억원에서 2978억원으로 줄었다.

시중은행과의 경쟁서 밀려

수익성 관리하며 서민대출 ‘뚝’

전문가들은 하반기로 갈수록 저축은행 대출 문턱이 더욱 높아질 것으로 전망한다. 한국은행이 7월 20일 발표한 ‘금융기관 대출행태 서베이 결과’에 따르면, 3·4분기 저축은행의 대출태도지수는 -23으로 집계됐다. 국내 시중은행(6)보다 현저히 낮다. 지수가 마이너스(-)를 나타내면 금융사가 대출 한도를 줄이거나 금리를 올리는 등 이전보다 대출 문턱을 높인다는 의미다.

나이스신용평가 관계자는 “최근 기준금리와 시중금리 상승 속도가 당초 금융 시장 예상보다 빠른 가운데, 부동산 시장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시각이 증가하고 있다”며 “이에 따라 저축은행들은 리스크 관리를 점차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저축은행이나 대부업이 대출을 줄이면 불법 사금융으로 대출자가 몰리는 ‘풍선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 우려한다. 이를 방지하려면 법정 최고금리를 탄력적으로 운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재 법정 최고금리는 연 20%로 제한됐다. 대부업법은 법정 최고금리를 ‘28.9% 이하’로 규정하지만, 같은 법 시행령에서 상한을 20%로 뒀다. 일견 꽤 높아 보이기도 하지만, 저축은행이나 대부업체는 법정 최고금리를 올리지 않고선 수익성을 맞추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금융당국도 고민 중이다. 금융위원회는 법정 최고금리를 대부업에 한해 ‘시장 연동형’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 법정 최고금리를 현재와 같이 일률적으로 적용할 경우 취약계층에 대한 자금 공급이 사실상 어렵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다만 은행·보험·증권 등 모든 업권의 법정 최고금리를 시장 연동형으로 적용하기보다는 대부업체에 한해 제한적으로 풀어주는 방식이 적합하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장 연동형은 시장금리 변동에 따라 법정 최고금리를 올리거나 내리는 방식이다. 저금리 시기에는 법정 최고금리를 낮추고 고금리 시기에는 법정 최고금리를 올릴 수 있다. 금융당국은 시행령 개정을 통해 27.9% 이하까지는 법정 최고금리를 탄력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

안용섭 서민금융연구원장은 “취약계층들은 불법인 줄 알면서도 급전을 구할 방법이 없어 불법 사금융으로 내몰리고 있다”며 “저축은행·상호금융·대부업체 등 서민금융기관이 취약계층에 대출 공급을 할 수 있도록 최고금리를 연 24~27%로 상향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물론 무작정 법정 최고금리를 올리는 게 능사가 아니라는 견해도 만만치 않다. 애초에 법정 최고금리 제도는 지나치게 높은 금리에 시름하는 사람들을 위해 마련됐기 때문이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올해 초 “최고금리 조정은 부정과 긍정적 측면 모두 있어 좀 더 보고 결정해야 한다”고 밝힌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국회도 법정 최고금리를 탄력적으로 운영할 필요성에 공감하지만 움직임이 빠르지 않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우선순위가 밀려 논의를 진행하지 않는 분위기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21호 (2023.08.09~2023.08.15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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