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서 살고싶다"…이름 없는 '100세 광복군 영웅'의 귀국
11일 오후 2시 40분쯤 도쿄(東京) 네리마(練馬)구의 한 낡은 임대주택. “저희가 모시러 왔다”며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이 큰절을 올렸다. 올해로 100세인 오성규 지사는 목이 멘 듯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
박 장관을 마주한 오 지사는 일본 내 생존해 있는 유일한 광복군이다. 그런 그의 입에서 연신 나온 단어는, 죄송과 감사였다.
오 지사의 침실 한쪽엔 먼지를 뒤집어쓴 커다란 여행 가방이 하나 꺼내져 있었다. 오는 13일 아침, 조국인 대한민국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기 위한, 마지막 짐가방이다. “여생은 한국에서 보내고 싶다”는 그의 뜻에 따라, 국가보훈부는 그를 정밀 검진을 거쳐 중앙보훈병원 등에 모시기로 했다. 박 장관은 오 지사에게 “지사님은 국보 같은 존재”라며 “괜찮으시면 고국이니 우리나라에서 모시고 싶다”고 설명을 시작했다. 귀국 이야기에 오 지사는 표정이 밝아졌다. “한국 가서 늙은이들끼리 만나서 장기도 두고, 바둑도 두고 그러면 된다”며 활짝 웃었다.
‘이름 없는 영웅’의 귀국
해방 후, 조국으로 돌아왔지만 그를 반기는 곳은 없었다. 먹을 것도 지낼 곳도 없었다. 해방 후 이념 갈등이 번지면서 광복군 전우들과 경찰 조사를 받기도 하다 그는 일본 행을 결심했다. 부산에서 밀항해 일본에 온 뒤, 그는 한인 아내를 만나 결혼해 일본에 뿌리를 내렸다.
국가보훈부 “관련법 개정 추진”
면담 내내 곁에 앉아있던 오 지사의 둘째 아들 오태웅 씨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인 채, 장관의 설명을 들었다. 일본에서 태어나 한국말을 하지 못하는 그를 위해 먼 친척이 박 장관과 부친인 오 지사의 대화를 통역해줬다. 이후 기자와 만난 오씨는 “아버지는 광복군 이야기를 잘 하지 않으셔서 젊은 시절 이야기를 잘 몰랐다”고 했다. 부친의 광복군 활동 이야기도 “7~8년 전에 들었다”며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도 했다. 오씨는 “부친은 독립운동을 하고 함께 싸웠던 사람들과 나라를 위해 일하자는 생각을 갖고 있었지만 일본에서 만나 결혼한 어머니를 생각해 한국에 가지 않으셨다”고 설명했다.
지난 2018년 아내가 사망하면서 오 지사는 홀로 생활해왔다. 큰아들은 먼저 사망했고, 둘째 아들은 오 지사와 떨어진 곳에 사는 탓에 자주 찾아보지 못했다고 했다. 눈시울이 붉어진 오씨는 “아버지는 일본에 와서 어려운 시간을 보냈고 힘들어하셨다”면서 “조국에 가고 싶다는 부친의 뜻을 따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더러 오 지사의 집을 찾아와 후견인 노릇을 자처했던 일본인 처조카는 다가온 이별에 마음이 복잡한 듯, 부엌에서 연신 눈물을 훔쳤다. 가족들은 오 지사가 평소 아끼던 물건과 가족사진, 애견 사진을 살뜰히 챙겨 한국으로 보내기로 했다.
한편 오 지사의 영주 귀국으로 국내 독립유공자는 총 8명으로 늘어나게 된다. 해외에 거주하는 독립유공자는 미국에 있는 이하전 지사(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가 유일하게 된다.
도쿄=김현예 특파원 hy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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