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명 혐의 해병대 수사단장 초유의 수사 거부…구속 가능성도 거론

이근평 2023. 8. 11.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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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우피해 실종자 수색작전 중 순직한 고(故) 채수근 상병 사고와 관련, 민간 경찰로 사건 이첩을 보류하라는 상부 지시에 항명한 혐의를 받는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이 국방부 검찰단의 수사를 거부했다. 국방부는 박 전 수사단장에 대한 구속 가능성을 시사했다.

지난달 집중호우 피해 실종자 수색작전 중 순직한 고(故) 채수근 상병 사고 조사결과 보고서를 경찰에 이첩했던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대령)이 11일 오전 용산구 국방부 소재 국방부 검찰단 앞에서 입장을 밝히고 이동하고 있다. 뉴스1


박 전 수사단장은 11일 오전 국방부 검찰단 건물 앞에서 “국방부 검찰단은 적법하게 경찰에 이첩된 사건 서류를 불법적으로 회수했고, 수사의 외압을 행사하고 부당한 지시를 한 국방부 예하 조직으로 공정한 수사가 이뤄질 수 없다”며 “국방부 검찰단의 수사를 명백히 거부한다”고 밝혔다. 그는 또 윤석열 대통령을 향해 “국군통수권자로서 한 사람의 군인의 억울함을 외면하지 말고 '제3의 수사기관'에서 공정한 수사·재판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길 청원한다”고 요구했다. '집단항명 수괴' 및 '직권남용'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등 혐의로 국방부 검찰단에 입건된 박 전 수사단장이 이 같은 입장을 밝히고 발길을 돌리면서 이날 예정된 소환조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국방부는 즉각 입장을 내며 대응에 나섰다. 검찰단은 “박 전 수사단장의 오늘 수사 거부는 신속하고 공정한 수사를 방해하고, 사건의 본질을 흐리게 만들어 군 기강을 훼손하고 군 사법의 신뢰를 저하시키는 행위”라며 “향후 법과 원칙에 따라 수사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국방부 관계자는 “수사를 거부하더라도 필요한 법적 절차를 진행할 수 있을 것”이라며 “구속이나 기소 여부도 검토될 수 있다”고 말했다. 자신에 대한 혐의를 부인하는 박 전 수사단장이 자발적 출석을 거부한 가운데 수사에 계속 불응하면 구속 수사로의 전환이 불가피하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박 전 수사단장이 '장외투쟁'을 선언하면서 양측의 진실 공방도 더욱 격화하고 있다. 박 전 수사단장은 이날 “제가 할 수 있는 수사에 최선을 다했고, 그 결과를 해병대사령관, 해군참모총장, 국방부 장관에게 직접 대면보고했다”며 “그런데 알 수 없는 이유로 국방부 법무관리관으로부터 수차례 수사외압과 부당한 지시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첩 전 해병대사령관에게 보고하고 그에 따라 적법하게 사건을 이첩했다”고 강조했다.

경북 예천 폭우 피해 실종자 수색 임무도중 순직한 해병대 고(故) 채수근 상병의 안장식이 지난달 22일 오후 국립대전현충원 장병묘역에서 엄수됐다. 김성태/2023.07.22.


고 채 상병 사망 사건이 항명 논란으로 번진 것은 박 전 수사단장이 보고서에 '임성근 해병대 1사단장을 비롯해 지휘 라인에 있던 8명에게 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은 데서 비롯됐다. 박 전 수사단장 측은 이종섭 국방부 장관이 지난달 30일 보고서를 결재한 이후 국방부 법무관리관으로부터 “직접적인 과실이 있는 사람으로 (혐의를) 한정해야 한다”는 연락을 받았는데, 사단장을 책임 소재에서 빼라는 압력으로 이해했다는 입장이다.

박 전 수사단장 측은 또 “장관의 이첩 대기명령을 직접·간접적으로 들은 사실이 없고 장관에게 그러한 권한도 없다”고 주장한다. 이 장관 결재 뒤 지난 2일 민간 경찰에 사건을 이첩하는 과정에서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을 통해 혐의를 삭제하라는 압박을 받은 적은 있지만 이첩 보류가 명시적으로 내려온 건 없다는 뜻이다.

박 전 수사단장 측은 “지난 2일 오전 10시51분쯤에야 김 사령관이 전화로 ‘모든 걸 중단하라’고 처음 명시적으로 지시했다”며 “하지만 이미 이첩이 이뤄진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명확한 지시가 있기 전 이뤄진 행위에 대해 항명 혐의를 적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같은 날 민간 경찰에 이첩된 사건은 회수됐고, 박 전 수사단장에게는 보직해임 조치가 이뤄졌다.

국방부는 박 전 수사단장의 주장을 적극 반박하고 있다. 군 당국자는 “특정인을 보호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다”며 “윗선 책임을 따져보는 건 필요하지만 현장에 있던 초급간부들에게도 과실치사 혐의를 씌우는 게 과연 적절한지 검토해야 해 이첩을 보류하자고 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계환 해병대사령관이 지난달 22일 경북 포항시 남구 해병대 1사단 내 김대식 관에서 엄수된 고 채수근 상병 영결식장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김 사령관 옆은 이종섭 국방부 장관. 뉴스1


군 당국은 이첩 보류 지시가 명시적으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주장도 사실과 다르다는 입장이다. 해병대사령부는 이날 “지난달 31일 경찰 이첩을 보류하고 국방부 법무검토 후 이첩하라는 장관 지시를 사령관이 받았다”며 “사령관은 같은 날 오후 4시 참모 회의를 열어 3일 장관 해외 출장 복귀 이후 조사자료를 보고하고 이첩할 것을 수사단장에게 지시했다”고 밝혔다.

박 전 수사단장은 이날 오후에도 한 방송사 생방송에 출연해 기존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이에 군 당국 역시 다시 한 번 공식 입장을 내고 유감을 표명했다. 국방부는 “박 전 수사단장이 법에 의한 공정한 수사는 거부하면서 모 방송사 생방송에 임의로 출연, 사실이 아닌 내용을 일방적으로 허위 주장한 것은 군인으로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진정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법무관리관이 혐의를 빼라고 했다”거나 “대통령실 안보실에서 언론 설명자료를 요청한 것은 외압 소지가 있다”는 박 전 수사단장의 발언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국방부는 “법무관리관은 장관의 지침을 받아 군사법원법의 취지를 설명했다”며 “외교안보 부처의 경우 통상적으로 안보실과 언론설명자료를 공유하고 있어 ‘외압 소지가 있다’는 주장은 사실무근”이라고 주장했다.

보직해임 뒤에도 군 검찰의 수사를 전제로 방어권 행사를 위해 적극적인 법률 조력 등을 구해온 박 전 수사단장이 이날 돌연 입장을 바꾼 배경은 확실치 않다. 박 전 수사단장 입장에서는 군이 강경 대응 방침을 굳힌 이상 수사에 응해봤자 ‘짜맞추기식’ 결론이 나올 수밖에 없으니 협조하는 게 큰 의미가 없다고 봤을 수 있다. 하지만 군 일각에선 항명 여부의 쟁점이 되는 '명시적 이첩 보류 지시' 정황이 점점 명확해지자 불리함을 느껴 수사 거부에 나선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이근평 기자 lee.keunp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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