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위 사각거리는 소리가 매력, 만년필 입문기

정무훈 2023. 8. 11.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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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거래 통해 산 만년필, 글씨 안 써지기에 자세히 들여다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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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무훈 기자]

▲ 파카 만년필 중고 만년필
ⓒ 정무훈
 
"와! 파카 만년필이네. 가격이 정말 싸네. 이건 무조건 사야 해."

중고마켓을 검색하다가 환호성을 질렀다. 파카 만년필은 내가 아는 가장 유명한 만년필 브랜드다. 얼마 전 우연히 만년필을 소개하는 영상을 보고 만년필에 관심이 생겼다. 일상에서 바쁘게 업무를 하며 볼펜으로 빠르게 필기를 하니 필체가 점점 망가졌다.

나도 예전에는 글씨가 괜찮은 편이었다. 새롭게 만년필을 구입해서 필기의 매력을 느껴보고 싶었다. 쇼핑몰을 둘러보니 고가의 만년필도 많고 종류도 다양해서 고를 수가 없다. 아무래도 저렴한 만년필은 품질이 어떨지 확신이 없었다. 일단 부담 없이 중고 만년필을 구입해서 써보기로 했다.

여기저기 중고마켓을 찾다 보니 파카 만년필이 눈에 띄었는데, 오래된 파카 만년필이 저렴한 가격에 올라와 있었다. 모델명을 검색해 보니 지금은 단종 되었지만 품질은 괜찮다는 품평이 보였다. 거래를 위해 판매자를 직접 만나서 만년필을 살펴보니 외관은 깔끔해 보였다.

"삼촌이 쓰던 만년필을 물려받았어요. 오래 보관했지만 제가 깔끔하게 필터도 청소했어요. 멀리서 오셨으니 제가 덤으로 만년필 한 자루를 더 드릴게요."

나는 환한 얼굴로 만년필 세 자루를 받았다. 파카 만년필을 한 번에 세 자루를 얻게 된 것이다.

"지금 글씨 한 번 써 볼 수 있나요?"
"잉크가 들어 있지 않아 지금은 써 볼 수 없어요."
"그럼 제가 집에 가서 잉크를 채워서 쓸게요."
 
▲ 오늘 뭐 먹어 만년필로 써본 그림일기
ⓒ 정무훈
 
이렇게 하루 만에 파카 만년필이 세 자루가 생겼다. 만년필의 역사를 찾아보니 파카 51 모델이 인기가 많아 보급형으로 만든 만년필 모델이 파카 45와 파카 21 만년필이었다.

내가 중고마켓에서 구한 것은 파카 45와 파카 21이다. 아무튼 파카면 충분하다. 더구나 덤으로 받은 만년필은 파카 벡터 만년필이었다. 당장 잉크가 없어서 급한 마음에 다시 중고마켓을 찾아서 잉크를 구입했다. 잉크를 판매한 중년의 아저씨는 나에게 만년필 수집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셨다.

"만년필은 어린시절 향수와 감성을 자극하는 물건이죠. 만년필의 매력에 한 번 빠지면 쉽게 헤어나기 어려워요. 그리고 펜마다 고유의 필기감과 디자인의 매력이 있으니, 더 비싸고 좋은 만년필을 수집하려고 애쓰지 말아요. 본인에게 맞는 만년필을 찾아서 꾸준히 쓰는 것이 가장 좋아요. 만년필이 많아도 실제로 즐겨 쓰는 만년필은 두 세 자루면 충분해요."

아저씨의 이야기 속에 만년필에 대한 애정이 느껴졌다. 이제 본격적으로 만년필을 써 볼 차례이다. 책상 위에 신문을 깔고 중고로 구입한 만년필과 잉크를 올려놓고 컨버터를 누르며 잉크를 충전했다.

그런데 파카 45를 써 보니 이상하다. 아무리 잉크를 채워도 글씨가 써지지 않는다. 휴대폰에 돋보기 앱을 깔고 펜 끝을 살펴보니, 팁(펜 끝 동그란 부분) 반쪽이 깨져 있었다. 매끈한 외관과는 다르게 실제 사용이 불가능한 펜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내가 만난 첫 번째 파카 펜은 장식용이 되었다.

실망한 마음을 추스르고 제발 잘 써지기를 바라면서 다음 펜인 파카 21에 잉크를 채웠다. 파카 21은 다행히 글씨가 써진다. 그런데 글씨를 쓸수록 점점 흐려진다. 분명히 잉크를 가득 채웠는데 글씨가 흐려지다 결국 안 써진다. 이건 또 무슨 일인가? 펜 끝을 살펴보니 팁이 많이 달아서 종이에 긁히는 상태였다. 아! 파카 21도 쓸모가 없다.
 
▲ 인생을 맛있게 만년필로 써본 그림일기
ⓒ 정무훈
 
이래서 다들 볼펜을 쓰는 건가? 중고거래로 살 때 미리 상태를 꼼꼼히 확인하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다행히 덤으로 받은 파카 벡터는 카트리지 방식이라 잉크 충전 없이 사용할 수 있었다. 파카 벡터는 글씨가 부드럽게 잘 써졌다. 하지만 뭔가 만년필 특유의 종이 위에 흐르는 잉크의 흐름이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잘 나오는 볼펜을 쓰는 느낌이었다. 판매자는 미안하다며 모델명을 알 수 없는 파카 만년필을 한 자루를 더 주었다.

그래서 한꺼번에 파카 만년필 네 자루를 갖게 되었다. 파카 21과 파카 45은 놔뒀다가 나중에 수리해서, 필기감을 느껴보고 싶었다.

아무튼 파카 만년필이 생겼으니 이제 정식 만년필 입문자가 되었다. 만년필을 만지작거리며 종이 위에 사각거리는 소리를 들으니 기분이 좋아진다. 뭐라도 그림을 그리고 써 보고 싶어졌다.

이 만년필로 종이 위에 그림일기를 그려봤다. 생각보다 펜을 쓰는 재미가 있다. 오호! 이 맛에 만년필을 쓰는구나. 다른 만년필의 필기감도 궁금해졌다. 어느덧 새로운 만년필을 검색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만년필의 매력에 빠져볼까? 오늘도 만년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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