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십 넘어 시작한 새 연애 얘기 들어보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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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문희 기자]
결혼 후 전업주부로만 지내다 17년 만에 노인 돌봄 생활지원사로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노인 돌봄에 대한 업무보다는, 일하며 겪은 에피소드들을 써볼까 한다.
▲ 부산 연제구 노인복지관에서 열린 어버이날 행사에서 카네이션을 가슴에 단 어르신들 모습(자료사진). |
ⓒ 연합뉴스 |
요즘은 어르신들도 대부분 휴대전화를 가지고 계시지만 드물게는 그렇지 않으신 어르신이 계신다. 필자가 돌보는 어르신 중에 한 분도 그러하다. 댁을 방문했을 때 연락 없이 어디를 가시고 계시지 않을 때는 문제가 발생한다.
아무리 불러도 인기척이 없었다
지난 주에 방문해 인사드리고 만나 뵐 생각에 가벼운 발걸음으로 찾은 장소수(가명)어르신. 어르신 댁 마당에 섰는데, 서서 어르신을 아무리 불러도 기척이 없으시다. 문도 안으로 잠겨있다. 어제 안부 전화드릴 때도 '그래, 조심히 댕기래이' 말씀 말고는 별다른 말씀이 없으셨는데, 잠시 생각을 가다듬었다. 등에서도 머릿 속에도 땀이 줄줄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어쩌나, 어쩌나' 잠시 고민하다가, 일단 이웃에 함께 돌봄 서비스를 받는 어르신 댁을 찾아가 여쭈었다. 그 분은 뙤약볕을 마다하지 않으시고 장소수 어르신이 잘 간다는 이웃집을 앞장서서 가르쳐주셨다. 겨우 한번 본 필자인데 따듯한 손을 주저 없이 내밀어주신다. 그러나 그곳에도 어르신은 계시지 않으셨다. 이웃 어르신은 '어디 갔노, (멀리) 안 갔을낀데, 읍내 병원에 약도 어제 타왔는데... 얄궂다' 하시며 함께 걱정을 해 주셨다.
▲ 필자가 노인돌봄을 위해 방문하는 동네 풍경. 귀촌인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있다. |
ⓒ 박문희 |
얼마를 기다렸을까 두런두런 사람 소리가 들려오길래 어르신이 오셨나 고개를 길게 내밀어 보았더니, 조금 전 어르신을 찾느라 찾아갔던 어르신이 한 손에는 양산 삼아 검은 우산을 쓰시고 한 손에는 지팡이를 짚으시고 필자가 앉아있는 장소수 어르신 댁으로 올라오고 계셨다.
혹시 무슨 소식을 들으신 걸까 싶었더니 올라오시며 나를 향해 '새디기(새댁), 새디기' 부르신다. "예"하고 달려 내려갔더니 "(어르신은) 아직도 안 왔는교?" 내게 물으신다. 이웃 어르신도 장소수 어르신의 안부가 궁금해 오신 거다.
그러면서 읍내 병원까지 전화해 보셨는데 거기에도 다녀가시지 않았다고 한다고 내게 전해주신다. 당황한 탓에 등에 땀은 흐르고 있었지만, 어르신들의 따듯한 마음 덕분에 노인 돌봄 일을 시작한 게 참 잘한 일이구나 싶었다.
하룻밤 새 낙상한 어르신
댁에서 여기저기 동네 어르신들께 전화를 하셨는지 어디선가 나오신 어르신 한 분이 아침 일찍 딸이 온 걸 보셨다는 말씀을 해주신다. '부처님, 하나님...' 그제도 따님이 오셨다더니 함께 어디 가셨나 보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전화한 따님에게 들은 뜻밖의 소식. 어르신이 어젯밤 댁에서 낙상을 하셔서 엉치 뼈에 금이 가, 한동안 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하셔야 한단다.
지난주 처음 찾아뵌 필자에게 자꾸 '이것도 먹어봐라, 저것도 먹어봐라' 권하시던 장 어르신. 소식을 들은 순간 울컥해지는 마음을 누르고, 당신들 일도 아닌데 함께 걱정해 주신 어르신들께 이 소식을 전해드렸다. 얘길 들은 어르신들은 다들 '어제 오후 늦게까지 동네 팔각정에서 함께 잘 있었는데...' 하시며 말끝을 흐리셨다. 어르신들의 안녕은 참으로 변화가 많다.
힘없이 길가에 세워둔 차로 돌아오는 길목 솔개그늘에 어르신 한 분이 앉아 계시길래 "더운데 왜 나와 계세요~" 했더니 마침 밭에 조선오이가 많이 달렸더라고, 내게 먹어보라시며 한 아름 안겨주신다. 나를 기다리고 계셨던 거다. 오래 정들지도 않은, 이제 겨우 두 번째 얼굴을 보는 필자에게 한 아름 나눠주신다.
꽃도 오래 보아야 예쁘다 시인은 말했는데, 어르신들과 필자는 오래 보지는 않았는데도 마치 꽃인양 아름다운 마음으로 보아주신다.
나를 기다려주는 사람이 생겼다. 비유로 말하자면 새로운 연애가 시작된 거다. 필자가 들었던 고백 아닌 고백을 여기에 살짝 공개해본다.
'너거만 오면 좋다, 너 오는 날은 내가 힘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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