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일 정상회의 앞두고…정부, 이례적으로 中물대포에 "우려"
최근 중국 해안 경비정이 영유권 분쟁 지역인 남중국해에서 필리핀 선박을 향해 물대포를 발사한 데 대해 정부가 "긴장 고조 행위에 우려를 표한다"며 "남중국해의 평화와 안정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냈다. 정부가 남중국해의 특정 갈등 현안과 관련해 중국을 향한 직접적 우려를 나타낸 건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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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장 고조 행위 우려"
주필리핀한국대사관은 지난 9일 페이스북에 게시한 입장문을 통해 "남중국해에서 필리핀 해경선을 향한 최근 물대포 사용과 관련해, 주필리핀한국대사관은 이 해역에서 긴장을 고조하는 행위에 대해 우려를 표한다"며 "대사관은 중요한 해상 교통로로서 남중국해의 평화, 안정 및 규칙에 기반한 질서를 지지한다는 입장을 재확인한다"고 밝혔다. 이어 "유엔해양법협약(UNCLOS)을 비롯한 국제법 원칙에 기반한 항행의 자유를 지지한다"고 덧붙였다.
앞서 지난 5일 중국 해안경비정은 필리핀 군용 물자 보급선을 향해 물대포를 쐈다. 필리핀 측은 성명을 통해 "중국이 과도하고 공격적인 행위를 했고 국제 협약을 위반했다"고 반발했고, 반면 중국은 "필리핀 선박이 우리 해역을 침범했기 때문에 필요한 조치를 한 것"이라고 맞받았다.
정부가 남중국해 관련 이슈에서 중국이 갈등을 유발한 사안에 대해 이처럼 명료한 입장을 낸 건 사실상 처음이다. 다만 입장을 낸 주체는 외교부 본부가 아닌 현지 대사관이었고, 입장문에서도 행위자로 중국을 명시하지 않는 식으로 수위를 조절했다.
정부는 2021년부터 한ㆍ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에 "남중국해 및 여타 바다에서 평화와 안정 유지"라는 문구를 반영하는 등 그간 원칙적 차원의 큰 틀에서 남중국해 문제를 거론했다. 하지만 구체적인 현안에 대해선 명료성을 드러내지 않았다. 특히 지난 정부에서 "한국이 남중국해, 대만 해협, 홍콩 민주화 시위, 신장 위구르 문제 등 중국이 껄끄러워하는 이슈에 일제히 침묵한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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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일·호 등 "우려" 표명
정부의 이번 입장 표명은 중국의 물대포 발사에 우려를 표한 미국 등 여타 자유민주주의 국가와 보조를 맞추는 성격도 있다.
미 국무부는 사건 발생 이튿날인 지난 6일(현지시간) '남중국해에서 필리핀에 대한 미국의 지지'라는 제목으로 성명을 내고 "중국 측의 위험한 행위에 맞서 우리의 동맹인 필리핀과 함께 서겠다"며 "중국은 물대포를 발사해 필리핀의 합법적 활동을 방해했고, 이는 국제법 위반에 해당하며 지역 평화와 안정을 위협한다"고 지적했다.
이후 일본, 호주, 프랑스, 캐나다, 유럽연합(EU), 독일이 필리핀 주재 자국 대사관을 통해 입장문을 내고 "우려"를 표명했다. 한국 또한 사건 발생 나흘만에 비교적 신속히 입장을 냈다.
조원득 국립외교원 아시아태평양 연구부 교수는 "한국이 지난해 인도·태평양 전략을 발표하고 한·아세안연대구상(KASI)을 공개하며 아세안과 협력을 강화하는 가운데, 역내 질서의 평화와 안정을 불안정하게 하는 사안에 대해서 한국도 책임 있는 당사국으로서 목소리를 낸 것"이라며 "한국이 표방하는 외교적 가치를 표현하는 데 있어서는 주변을 의식하기보다 필요하다면 적극적으로 행동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ㆍ미ㆍ일 앞두고 밀착
특히 이번 입장문은 오는 18일 미국 메릴랜드주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리는 한ㆍ미ㆍ일 정상회의를 앞두고 이뤄진 조치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정상회의에서 중국의 강압 행위와 현상 변경 시도를 막기 위한 심도 깊은 협의가 이뤄질 전망인 가운데, 3국이 중국 관련 특정 현안에서 미리 한 목소리를 낸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3국 정상이 지난해 11월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채택한 '프놈펜 성명'에 담긴 "3국 정상은 유엔해양법협약에 부합하여 항행과 상공 비행의 자유를 포함, 법치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재확인하였다"라는 대목을 재확인하는 의미도 있다. 3국은 오는 18일 정상회의에서 프놈펜 성명보다 더 진전된 내용의 공동성명을 내기 위해 문안 협의 중이다.
3국 정상회의를 앞두고 유엔 무대에서도 3국 공조가 두드러지고 있다. 린다 토머스-그린필드 주유엔미국대사는 10일(현지시간) 브리핑에서 "한ㆍ미ㆍ일과 알바니아가 공동으로 오는 17일(현지시간)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안보리 차원의 공개 회의 소집을 요청했다"며 "북한 인권 관련 안보리 공개 브리핑은 (개최된다면) 2017년 이후 처음이며 그간 오래 지체됐다"고 말했다.
3국과 알바니아가 공개 회의를 요청한 17일은 공교롭게 한ㆍ미ㆍ일 정상회의가 열리기 하루 전이다. 다만 중국과 러시아가 2020년부터 북한 인권 문제 관련 안보리 공개 회의에 반대해왔기 때문에 이번에도 개최를 장담할 수 없다. 한ㆍ미ㆍ일은 공개 회의 개최 시도가 불발되면 비공개 협의인 '아리아 포뮬러'(Aria Formula) 형식으로 안보리에서 북한 인권 문제를 논의해왔다.
박현주 기자 park.hyun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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