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근 누락 5곳 알고도 숨긴 LH…"임원 전체 사직서 내라" 명령
지하주차장에 무량판 구조가 적용된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철근 누락’ 아파트가 기존 15개 단지에서 5곳이 추가된 20개 단지로 늘어났다. 지난달 전수조사 결과 발표 때 아파트 단지 5곳을 ‘철근 누락 정도가 경미하다’고 자체 판단해 발표에서 제외했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철근 누락’ 아파트 단지를 축소 발표한 셈이 됐다. LH는 상임이사 이상 전체 임원의 사직서를 제출받고, 근본적인 개혁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이한준 LH 사장은 11일 서울 강남구 LH서울지역본부에서 긴급 기자회견에서 열고 “지하주차장에 무량판 구조가 적용된 102개 단지 가운데 전단보강근(보강 철근)이 누락된 단지가 기존에 발표한 15개 단지를 포함해 총 20개 단지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앞서 LH는 지난달 30일 지하주차장에 무량판 구조를 적용한 91개 LH 발주 아파트 단지에 대한 전수조사 결과, 15개 단지에서 철근 누락이 확인됐다고 발표한 바 있다.
LH는 추가로 확인된 5곳이 누락된 것을 미리 알았지만 발표에선 제외했다. 이 사장은 “누락된 철근이 5개 미만이고, 즉시 보강이 완료돼 안전에 우려가 없다는 담당자들의 자체 판단으로 (사장에게) 보고조차 안 됐다”며 “참담하고 실망스러운 마음을 감출 수 없다”고 고개 숙였다.
추가로 확인된 5개 단지는 ▶화성남양뉴타운 B10블럭(386개소 중 3개소 누락) ▶평택소사벌 A7블럭(156개소 중 3개소) ▶파주운정3 A37블럭(654개소 중 4개소) ▶고양장항 A4블럭(1507개소 중 4개소) ▶익산평화(1325개소 중 4개소) 등으로 지난달 20~21일 보강 공사가 완료됐다. 이한준 사장은 “추가된 5개 단지에 대해서도 관련 업체 등을 경찰에 수사 요청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LH가 진행한 전수조사의 허술함은 이 뿐만이 아니다. 지하주차장에 무량판 구조가 적용됐으나 전수조사에서 누락된 무량판 아파트 1개 단지가 이날 또 추가로 확인됐다. 지난 9일 10개 단지가 조사 대상에서 누락된 것으로 확인된 데 이어 이틀 만에 또다시 추가 누락 단지가 나온 것이다. 이에 따라 전수조사 대상 아파트 단지는 당초 91곳에서 102곳으로 확대됐다. 철근 누락 아파트가 또 늘어날 수 있다는 얘기다. LH는 추가된 11개 단지에 대해 착공 이전 단지는 구조설계 적합여부를 확인하고, 착공 단지는 추가 정밀안전진단을 시행할 계획이다.
또한 LH는 민간이 설계·시공한 ‘민간참여 공공주택사업’ 70곳과 ‘재개발 사업’ 3곳 중 무량판 구조가 적용된 19곳에 대해서도 조속히 긴급 정밀점검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국민 안전과 직결된 상황에서 무량판 아파트에 대한 기본적인 현황 파악조차 안 되고 있는 게 속속 드러나면서 LH는 위기를 맞고 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 9일 전수조사 대상에 무량판 아파트 10개 단지가 누락된 것을 보고 받고 LH를 강하게 질타했다. 원 장관은 “작업 현황판조차 취합이 안 되는 LH가 이러고도 존립 근거가 있느냐”며 “LH 사장이 직을 걸고 조치하라”고 질책했다.
이한준 사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LH를 근본적으로 혁신하고자 하는 의지의 표현으로 전체 임원에 대한 사직서를 받고 새 인사를 통해 LH를 변화시키겠다”고 밝혔다. 본인의 거취에 대해선 “국토부 장관을 포함한 정부 등 임명권자의 뜻에 따르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다만 “이 AS(애프터서비스)는 반드시 제가 수행해야 한다”며 먼저 LH 개혁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이 사장은 지난해 11월 임명됐다.
이 사장은 “LH가 2009년 10월 1일 통합 이후 14년이 흘렀지만, 조직의 지나친 비대화로 보고 체계가 원활히 작동하지 못하고 책임 소재가 불분명해졌다”면서 “간부 직원 중심으로 통합 전 주택공사, 토지공사 출신별, 각 직렬, 직종별 칸막이로 서로 소통하지 못하는 문화가 만연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구조견적단을 예로 들며 “통합 후에 자리 나눠 먹기를 해 건축직이 아닌 건축도면을 볼 수 없는 토목직이 구조견적단에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LH 혁신에 외부의 힘이 필요할 수 있다고도 했다. 이 사장은 “내부적으로 혁신을 외친다고 누가 믿어주겠느냐”며 “경찰, 공정위, 감사원 등의 조사를 토대로 인적, 조직 쇄신을 단행하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조직의 비대함, 업무 구조조정 필요성도 지적했다. LH는 신도시 조성, 공공주택 건설, 주거복지 등 정부 정책사업을 독점하는 공기업으로 임직원 8885명이 일하는 거대 조직이다.
이 사장은 “지난 정부에서 비정규직의 정규화를 두 차례 걸쳐 진행하면서 2400여 명의 정규직이 늘었는데 내부 갈등요소가 많다”며 “주거급여 업무와 인력 등을 지방공기업에 이관하려 했지만, 지자체 등에서 인수를 주저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주택분양 등을 할 때 설계, 시공, 감리 선정을 LH가 직접 하지 않고 위탁형태나 민간에 넘겨서 전관 특혜 가능성을 차단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김원 기자 kim.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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