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컬처]매일 쓰는 일보다 중요한 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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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매일 쓰는 사람들을 발견하기는 쉬운 일이 되었다.
지하철에서, 휴대폰 천지인 자판으로, 매일 글을 한 편씩 쓰고 있다니.
나는 지금 글쓰기를 직업으로 하고 있지만 매일 쓰지는 않는다.
당장 마감해야 할 글들을 바쁘게 쓰는 게 일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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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피드백에 귀 기울이기
요즘 매일 쓰는 사람들을 발견하기는 쉬운 일이 되었다. 얼마 전 글쓰기 수업에서 만난 50대 남성도 하루에 50분씩 글을 쓴다고 했다. 지하철을 타고 출근하는 50분 동안 휴대폰으로 자신의 일상과 마음을 기록한다는 것이었다. 지하철에서, 휴대폰 천지인 자판으로, 매일 글을 한 편씩 쓰고 있다니. 그가 진심으로 존경스러워졌다.
나는 지금 글쓰기를 직업으로 하고 있지만 매일 쓰지는 않는다. 남들에게는 그게 참 좋다고 말하면서도 쓰는 날은 일주일에 2~3일 정도인 듯하다. 당장 마감해야 할 글들을 바쁘게 쓰는 게 일상이 되었다. 신문이나 잡지 원고 마감, 단행본 원고 마감, 추천사 원고 마감, 강사카드 마감 등등. 내가 매일 쓰던 때를 돌이켜보면 고등학생 때였다. 그때는 학교에서의 일상을 관찰하고, 집에 돌아와 그걸 옮겨서 인터넷 게시판에 쓰고, 아침엔 글에 달린 댓글을 보고 다시 학교로 갔다. 추천이나 댓글 하나에 세상을 가진 듯 행복하던 시절이었다.
한 달 정도 절필했던 때가 있다. 인터넷 게시판에 별것 아닌 글을 쓰는 고등학생이 절필이라니, 지금 생각해도 이불을 뻥뻥 걷어찰 만큼 부끄럽다. 지하철의 풍경과 사람에 대한 글을 쓴 직후였다. 1990년대에만 해도 지하철에 타면 돈을 구걸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그중엔 다리가 없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는 그들을 지칭하며 "신도림역을 지날 때면 늘 하모니카를 불며 기어 오는 고무바지 아저씨"라고 썼다. 그러고도 어떤 부끄러움도 없이 오늘은 어떤 댓글이 달릴까 기대했다. 재미있다, 역시 NAMYLOVE는 최고다, 라는 댓글들이 있었으나, 누군가가 이런 댓글을 달았다. "정말 실망입니다. 그동안 당신의 글을 재미있게 본 제 시간이 아깝습니다. 어떻게 그런 표현을 할 수 있습니까." 그는 나의 글을 모두 읽고 항상 댓글을 달아주는 사람이었다. 그뿐 아니라 여러 사람이 실망이라거나, 그런 혐오 표현을 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의 댓글을 달았다. 그래, 내가 선택한 단어가 누군가를 불편하게 할 수도 있구나. 글이라는 건 어떤 처지의 누구도 조롱하고 웃음거리로 만들어선 안 되는 것이구나. 강자가 아닌 약자를 늘 상상하며 써 나가야겠구나.
사실 한 달이 아니라 다시는 글을 쓰지 않겠다고 절필선언을 했으나, 한 번 쓰는 삶을 시작한 사람은 그것을 쉽게 놓을 수 없는 법이다. 아이디를 다시 만드는 것이야 쉬웠으니까 새로운 아이디로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마침 소재도 떨어진 참이어서 이것저것 고등학교 바깥의 이야기로 눈을 돌렸다.
매일 쓰는 것도, 많이 쓰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매일 쓰면서 얻어지는 것은 자신의 언어다. 어떠한 태도로 써야겠구나, 하는. 그렇게 만든 나의 세계 속에 누군가를 초대하는 것이다. 고등학교 때 썼던 그 부끄러운 글들은 내 세계의 언어를 만드는 과정이었다. 그 글들을 타인에게 보이지 않았다면 그리고 그들의 반응을 보지 않았다면, 나의 글은 지금과 많이 달라졌을 게 분명하다. 계속 쓰는 가운데 타인의 처지에서, 특히 약자의 처지에서 늘 상상하는 일, 그것이 한 세계를 건강하게 만든다고 믿는다.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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