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는 美 흔드는 中…韓 반도체 로드맵 영향 커지나
이번 조치로 韓 영향은 제한적…각국 K반도체 투자 유도로 로드맵 달라질수도
中, 갈륨·게르마늄 등 주요 광물 수출 통제로 가격 부담 높아져…리스크 관리 필요
중국 하이테크 기업과 미국 자본간 공생을 막는 조치가 발표되면서, 첨단 기술을 중심으로 한국 반도체 공급망에도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이번에 미국이 제한한 품목은 국내 기업들이 중국에 투자하는 분야가 아니어서 영향이 제한적이라는 진단이 지배적이다. 다만 중국이 보복 차원에서 맞불을 놓은 갈륨·게르마늄은 차세대 전력반도체와 연관돼있어 중장기적으로 리스크 요인이 될 것으로 지목된다.
11일 업계에 따르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9일(현지시간) 발표한 행정명령은 미국 자본의 중국 첨단 기술 투자를 차단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대상은 크게 첨단 반도체, 양자 컴퓨팅, 인공지능(AI) 등 3개 분야로 사모펀드, 벤처캐피탈(VC), 인수합병(M&A), 법인신설(그린필드), 합작투자 등의 방식으로 투자할 경우 적용된다.
반도체 수출 규제에 이어 투자 제한 카드까지 꺼내들면서 중국의 '기술 굴기'를 원천 차단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미국은 작년 10월 중국 반도체 생산 기업에 반도체 장비 수출을 사실상 금지하고, AI와 슈퍼컴퓨터에 사용되는 첨단반도체의 수출도 제한하는 수출통제 정책을 내놓은 바 있다. 이번에는 미국 자본까지 틀어쥐면서 압박 수위를 높였다.
제재가 심화되자 중국 상무부는 "국제 경제·무역 질서를 파괴하고, 글로벌 생산·공급망의 안전을 심각하게 교란했다"고 반발했다. 중국은 미국 규제에 반발해 지난 5월 미국 반도체 기업 마이크론 제품 구매를 중지한 데 이어, 이달에는 갈륨·게르마늄 등 30개 품목에 대한 수출을 제한하는 방식으로 맞불을 놓고 있다.
서로를 쥐고 흔드는 미·중 갈등에 동맹국들도 속속 합류하면서, 첨단 기술 및 공급망 전쟁은 격화되는 모습이다.
일본은 미국의 대중국 제재에 호응해 지난달부터 첨단 반도체 제조장비 수출통제를 실시했다. 일본에 이어 네덜란드도 내달부터 수출 통제 조치에 합류할 예정이어서 미국의 대중국 정책에 점차 힘이 실리고 있다.
특히 EU(유럽연합)은 9일 발표한 미국의 행정명령에 대해 "미국과의 지속적인 협력을 기대한다"고 밝혀 같은 배를 탈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된다. 앞서 EU는 지난 6월 양자기술, 첨단 반도체 등 민감 기술을 보유한 EU 기업의 과도한 제3국 투자를 제한하겠다고 예고한 바 있다.
갈수록 제재 수위를 높이고 있는 미국이 자신들의 정책을 관철시키기 위해 일본, 네덜란드 등을 끌여들었던 것처럼 이번에도 동맹국들의 참여를 적극 독려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중국에 반도체 제조사와 소재·부품·장비 기업들이 진출해 있는 한국으로서는 또 다시 미·중 갈등 한복판에 서는 처지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우려 제기에 국내 반도체 업계는 영향이 크지 않다고 진단한다. 행정명령을 뜯어보면 투자 주체가 미국인과 미국 법인으로 한정돼있고, 시점도 기존 투자가 아닌 신규 투자가 적용되므로 국내 업계가 받을 피해는 제한적이라는 설명이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9일 미국에서 발표한 제한 범위(첨단 기술) 내에 포함되는 국내 기업들은 거의 없다. 앞으로의 투자 계획도 없는 것으로 안다"면서 "사실상 우리 기업들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다"고 말했다.
산업통상자원부도 전날 보도참고자료를 내고 "미국의 해외 투자 제한 제도는 앞으로 이뤄질 투자에 적용되며, 적용 범위가 미국인 또는 미국 법인으로 한정된다"며 "국내 업계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미국의 제재에 중국이 맞불은 놓는 상황이 격화되거나, 장기화할 경우 국내 반도체 투자 심리를 악화시킬 것이라는 우려는 있다.
나정환 NH투자증권 연구원은 "향후 미국이 한국 등 동맹국에도 중국 투자 제한 조치를 요구할 경우, 중국향 첨단 반도체 투자가 제한되는 점에서 우려 요인"이라며 "결론적으로 미국 정부가 동맹국에 대중 투자 제한 참여를 요구할 지 여부와 중국 정부가 지난 갈륨 및 게르마늄 수출 규제와 비슷한 수출 제한 조치 여부"가 국내 시장에 영향을 미칠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무엇 보다 업계는 미국의 대중국 규제가 중국의 굴기를 넘어, 자국 내 반도체 투자 확대에 방점을 두고 있는 만큼 한국 반도체 로드맵이 영향을 받을 것을 우려 대목으로 꼽는다.
최근 바이든 정부는 반도체 지원법 시행 1년을 맞아 글로벌 기업들로부터 460여개의 투자 의향서와 더불어 219조원 규모의 투자 발표를 이끌어냈다고 밝혔다. 강력한 보조금 정책으로 각국 기업들의 러브콜이 이어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미국은 작년 통과시킨 반도체법에는 미국 내 투자 기업에 25%의 세액 공제 혜택을 부여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미국에 반도체 시설을 짓거나 관련 투자를 검토중이다. 기흥·화성·평택 등 국내 사업장을 운영하고 있는 삼성은 10조원 이상을 투자해 테일러시에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공장을 짓고 있다. 앞으로 미국 지역에만 11개의 삼성 팹이 추가적으로 들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SK하이닉스는 전공정은 아니지만 후공정(Advanced Packaging) 투자를 조율중에 있어 조만간 대미 투자 계획을 확정지을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에는 용인을 중심으로 '첨단 시스템반도체 클러스터' 구축 계획을 공개했지만 미국 등 해외 각국의 당근책이 더 강화된다면, 이후 K반도체의 투자 로드맵은 우선순위가 바뀔 수도 있다.
실제 미국을 비롯해 각국 지원은 막대한 편이다. 일본 정부는 보조금 형태로 파운드리 기업 대만 TSMC 2공장 설립 비용의 30%를 부담키로 했다. 독일 정부의 경우 인텔에 지원하는 보조금 규모를 기존 9조5000억원에서 14조원으로 확대할 전망이다.
프랑스는 반도체 업체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와 글로벌파운드리스가 프랑스에 설립하는 공장에 29억 유로(약 4조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반도체 장악력 확대한 시급한 이들은 세액공제, 인력, 인프라 등에서 혜택 경쟁을 벌이며 우량 기업 모시기에 나서고 있다.
김양팽 전문연구원은 "K반도체가 한국 보다 미국 등에 투자를 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에 국내에서도 세제 혜택 등을 늘려 한국 투자를 유도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중국의 공급망 정책에 따른 리스크도 면밀히 모니터링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최근 중국이 실시한 갈륨·게르마늄 수출 통제는 집적회로와 LED(발광다이오드), 차세대 전력반도체 소재 등으로 쓰인다. 이번 중국의 조치가 길면 길어질수록 제품 가격은 뛰고 수급은 불리해져 공급망이 타격을 입을 수 밖에 없다.
한국무역협회는 '희토류 영구자석의 공급망 현황과 시사점' 보고서를 통해 "희토류 영구자석의 안정적인 확보는 전기차 등 첨단 산업과 친환경에너지 산업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 필수적"이라며 "단기 및 중장기적 관점에서 꾸준한 정책적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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