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광인을 만나면 이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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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교를 건너고 있었다.
인천 서구의 한 카페 야외 테이블에서 광인1이 담배를 피웠다.
광인2는 식당에서 알바생의 뺨을 때렸다.
똥은 피하는 게 낫다는 삶의 태도가 쌓이고 쌓여 세상에 수많은 광인을 양산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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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교를 건너고 있었다. 맞은편에서 덩치 큰 남자가 걸어왔다. 난 그를 봤고 남자는 땅을 보며 걸었다. 부딪힐 것 같아서 가장자리 쪽으로 붙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부딪혔다. “억!” 짧게 신음한 뒤 우린 각자 가던 길을 갔다. 잠시 뒤 남자가 발길을 돌려 나에게 왔다. 씩씩거리며 “부딪혔으면서 왜 사과하지 않느냐”고 따졌다. 화가 많이 난 것 같았다. 내가 그의 존재를 인지하고 피하려 했다는 사실을 그는 몰랐을 수 있다. 그렇지만 상대방을 보지 않은 건 본인도 마찬가지인데 일방적으로 사과를 요구하는 게 황당했다.
“어이쿠, 죄송합니다.” 난 망치로 내려쳐 튕겨 나간 무릎처럼 1초도 망설이지 않고 사과했다. 남자의 덩치가 컸기 때문에 더 빠르게 반응했을 수 있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나란 인간은 사과하고 그냥 넘어갔을 거다. 상황이 완전히 종료된 후에 머릿속으로 상대를 ‘참교육’하는 장면을 상상하며 정신승리한다. 실랑이를 하며 에너지를 쏟는 것보다 이렇게 넘어가는 게 인생 살기 편해서다. 말하자면 ‘똥은 피하는 게 낫다’는 주의다. 남들은 더러워서 피한다는데 난 겁이 많아서 무섭기도 하다. 어떤 짓을 할지 몰라서다. 세상엔 상식을 벗어난 행동을 하는 인간이 적지 않다는 걸 난 알고 있다.
백화점에서 한 고객이 할인가에 구매한 물건을 정상가로 환불해 달라고 했다. 세일기간이 끝났으니 다시 팔면 정상가로 팔 거 아니냐는 논리다. 이를 거부하자 카드와 영수증을 직원의 몸에 던졌다. 내가 직원이었다면 상황이 끝난 뒤 속으로 했을 말을 그 직원은 손님 앞에서 내뱉었다. “당신 같은 인간들 때문에 미치는 거야. 제발 상식선에서 좀 놀아. 이 답도 없는 진상아!”
이건 드라마 속 얘기지만 만약 실제였다면 백화점 매니저가 나와 고객에게 사과하며 상황을 정리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드라마보다 더 많은 광인(狂人)이 현실에도 존재한다. 이건 소름 끼치는 일이다. 인천 서구의 한 카페 야외 테이블에서 광인1이 담배를 피웠다. 직원이 금연구역이라며 담배를 꺼달라고 양해를 구하자 커피를 테이블에 쏟고 길바닥에 던져버리며 난동을 부렸다. 광인2는 식당에서 알바생의 뺨을 때렸다. 대기 손님이 많아 20분 정도 기다려야 한다고 미리 알렸는데 음식이 늦게 나온다며 손찌검을 했다. 20대 남녀 커플인 광인3·4는 영업 중인 카페 소파에 벌러덩 누워 잠을 잤다. 다른 손님이 불편해한다며 말리는 직원에게 30분 동안 욕을 했다고 한다.
최근엔 학부모인 광인5가 유치원 교사에게 “내가 카이스트 경영대학을 나왔다. 당신은 어디까지 배웠냐. 이렇게 나오면 당신 위험할 수 있다”며 협박하는 통화 녹음파일이 공개됐다. 당시 임신 중이던 교사는 극단적 선택까지 생각했었다고 한다. 자동차 블랙박스에 찍힌 장면을 소개하는 유튜브 영상을 보고 있노라면 ‘광인공화국’에 살고 있다는 생각까지 들 지경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들리는 광인들의 에피소드에 마음이 오염돼 갈쯤 지하철에서 다른 승객의 토사물을 치운 청년의 기사를 보게 됐다. 청년은 “단지 가방에 물티슈가 있었기 때문에 제가 치울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분들이 피해를 볼까 걱정되는 마음뿐이었다”고 했다.
더 나은 세상을 생각한다면 똥은 피하는 것보다 치우는 게 낫다. 똥은 피하는 게 낫다는 삶의 태도가 쌓이고 쌓여 세상에 수많은 광인을 양산했을지도 모르겠다. 광인들의 상식 밖 행동은 한결같이 자신보다 약자라고 여겨지는 이들을 향한다. 자신에게 해를 가할 수 있는 상대였다면 하나같이 꼬리를 내린다. 정부에서 진상퇴치전담반을 꾸려 적극 처벌했으면 좋겠다. 앞으로 이들에게 마음에도 없는 사과 따윈 하지 않을 거다.
이용상 산업2부 차장 sotong203@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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