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준봉의 시시각각] 정부와 출판계의 거친 말싸움

신준봉 2023. 8. 11. 01:05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신준봉 문화디렉터

요즘 국내 출판계는 말들의 성찬이다. 대표적인 출판단체인 대한출판문화협회와 문화체육관광부 사이에 오가는 말들이다. 가뜩이나 출판 불황, 책의 소멸 진단이 예사롭지 않은데, 이들이 주고받는 언어는 생산적이기보다 소모적이고, 우아하기보다는 거칠기 짝이 없다. 최근에는 두 달 전에 끝난 서울국제도서전(6월 14~18일)을 두고, 탄식이 절로 나올 정도로 ‘초현실적인’ 언어들을 쏟아냈다.

「 “서울도서전 상세 수익 누락 보고”
정부 지적에 출협 “장관 해임 촉구”
양측 극한 대립에 ‘문화강국’ 무색

지난 7월 24일 문체부가 포문을 열었다. 도서전을 주최하는 출협(대한출판문화협회)이 도서전 수익금의 상세 내역을 일부 누락한 채 문체부에 보고했다고 박보균 장관이 직접 공표했다. 그러자 출협이 세게 받아쳤다. “파탄 난 출판문화정책, 장관의 해임을 촉구한다!” 이튿날인 25일 문체부의 재반박. 보도자료 제목이 ‘출협 윤철호 회장의 교묘한 왜곡과 변명, 책임회피에 대하여’였다. 출협이 아니라 회장 개인을 콕 집어 거론한 게 시사적이다. 급기야 문체부는 이달 2일 윤 회장과 서울도서전 주일우 대표를 경찰에 수사 의뢰했다. 보조금법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정부는 끝을 보겠다는 심산인 것 같다. 이런 가운데 출협은 17일 범출판문화계 거리 집회를 예고했다. 태풍이 지나면 다시 더워질 텐데 출판인들이 뙤약볕 아래 나서겠다는 것이다. 꼼짝없이 거친 말들을 다시 듣게 생겼다.

정부가 도서전 수익금을 문제 삼는 것은 국고를 지원해 줬기 때문이다. 출협에 따르면 서울도서전은 15억~16억원 규모의 행사다. 출협의 ‘자부담’, 그러니까 자기 주머니에서 나오는 돈은 2000만~3000만원 정도다. 정부 지원금이 7억원가량, 나머지를 도서전 입장료와 도서전 참가 출판사들에 부스를 판매한 수익 등으로 충당한다. 정부 돈을 가져다 썼으니 사용 내역을 제대로 보고하는 건 당연하다. 그런데 최근 5년치(2018~2022년) 장부를 들여다봤더니 수익금을 줄여서 보고했더라는 게 정부 주장이다. 정부 보도자료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국민의 피와 땀, 눈물의 담긴 세금이 들어간 사업에 치명적인 도덕적 타락이 포착될 경우, 정부가 이의 내막과 진상을 밝히는 것은 혈세를 마련해 준 국민에 대한 도리이며 책무입니다.”

이 문장의 대원칙에 반대할 사람은 없다. 하지만 이번에 정부가 너무 나갔다고 보는 출판인이 적지 않다. 출협 측 주장대로 수익금 내역을 누락해 법을 어겼다면 “(정부는) 시정을 명하거나 보조금의 삭감 또는 이를 위해 필요한 조치를” 해도 될 일이었다(보조금법 26조 2항). 수사 의뢰했으니 그 결과가 나와 봐야 알겠지만, 한 출판인은 “(정부 주장에) 동원된 수사가 거친 거에 비해 사실이 되게 빈약하다”고 했다. 누구 보라고 일하는 거 아니냐는 거다.

결국 문체부의 ‘과잉’ 대응은 출협, 특히 윤철호 회장에 대한 해묵은 감정이 작용한 결과라고 볼 수밖에 없다. 단순히 감정의 문제가 아닌 것이, 윤 회장이 최대 출판단체인 출협을 이끌며 문체부 산하 기관인 출판문화산업진흥원 인사에 영향을 끼쳐 왔다고 의심하는 시각이 출판계에는 존재한다. 가령 2018년 이후 진흥원 원장을 친(親)출협 인사들이 맡아서 해왔다고 한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은 원장을 추천하는 임원추천위원회에 출협 소속 출판인과 또 다른 출판단체인 한국출판인회의 소속 출판인이 다수 포진해 있기 때문이다. 진흥원 이사회와 임원추천위원회를 장악해 원장 인사에 영향을 끼치는 구조다.

누구보다 출판을 잘 아는 출판인들이 진흥원 업무에 도움을 주는 게 잘못된 건 아니다. 하지만 출판산업 생태계에 출판인만 있는 건 아니다. 진흥원 노조는 진작부터 서점 관계자, 인쇄업자, 저작권 전문가 등 다양한 직군을 이사회에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출판인들의 직역 선민의식, 이기주의 아닌가.

해법은 쉽고도 어렵다. 양쪽이 조금씩 내려놓고 물러서면 된다. 그보다 말부터 순화하자. 텍스트(책) 속의 말처럼 말이다. 그게 문화강국의 시작이다.

신준봉 문화디렉터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