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슬의 숫자읽기] 정신질환 치료명령제
‘묻지마’ 칼부림의 여파가 길다. 처음엔 치안(治安)이 화제였지만, 점차 논의가 정신질환 관리 부실 문제로 옮겨갔다. 많은 피해자를 낸 서현역 사건은 물론 대전지역 고등학교에서 벌어진 교사 피습사건도 치료를 거부한 조현병 환자가 가해자란 게 밝혀져서다. 그런데 일부의 주장처럼 중증 정신질환자를 정신병원에 가둬두는 것이 맞는 해법일까.
과거엔 조현병에 대한 치료법이 없어, 정신병원에 입원시켜두는 게 실질적인 최선이었다. 미국에서 공포영화 소재로 쓰이는 대규모 정신병원(asylum)이 그 시기의 잔재다. 그렇지만 조현병 약물이 개발된 지금은 다르다. 정해진 대로 약만 잘 먹으면 조현병 환자도 일상생활을 영위할 정도로 증상이 개선될 수 있기에, 인권 침해적인 시설 수용을 고집할 이유가 없다. 문제는 이런 입원 강제조치 완화가 반쪽짜리 정책이라는 것이다.
조현병은 주요 증상으로 현실을 왜곡해 받아들이는 망상(delusion)을 동반하기에 환자 자신이 질병을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강제 입원 정책만 해체하면, 사회로 돌아온 이들이 스스로 질병을 관리하기가 어렵다는 문제가 남는다. 실제로 ‘국가정신건강현황’에 따르면, 조현병을 포함한 중증 정신질환자 중 퇴원으로부터 1달 이내에 정신의료기관을 방문해서 재진료를 받는 환자의 비율이 64%에 불과했다. 나머지 36%의 환자들은 거리를 배회하다 문제를 일으켜 교도소에 가거나, 운이 좋으면 다시 병원에 강제 입원이 되는 악순환을 겪는다.
이런 이유로 해외에선 정기적으로 정신의료기관을 방문해 진료받도록 하는 외래치료 명령제도가 강제 입원 완화 제도와 짝을 이루어서 입안됐다. 정신질환이 급격하게 나빠져 강제적 입원 치료가 필요한 상황만이 아니라, 정상적으로 증상이 조절되고 있는 환자들이 평범한 사회생활을 누릴 수 있도록 일상적인 관리도 병행하는 식이다.
그렇지만 우리나라는 명목상 관련 제도만 있을 뿐, 실제로 기능하지 않는 제도 방치(drift) 상태에 가깝다. 최근 여러 매체에서 짚는 강제 입원 요건 강화도 문제지만, 강제 입원 종료 후의 조치는 그보다 훨씬 더 엉망이다.
그래도 가둬두는 게 안전하지 않겠냔 몰지각한 주장도 나오지만, 이건 인권을 고려치 않더라도 틀린 말이다. 조현병은 전체 인구의 1% 정도가 앓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우리나라 인구로 셈해 보면 50만 명 정도다. 2022년 기준 교정시설 수용 인원이 5만여 명이고, 전국 정신의료기관 입원 인원이 11만 명 수준인 걸 고려하면 절대 입원시킬 수 없는 규모다. 현실적으로도 외래 통원 치료가 우선시 될 수밖에 없다. 처벌도 좋지만, 다른 비극을 막으려면 이참에 정신질환 관리방식 자체를 바꾸는 게 훨씬 더 중요하다.
박한슬 약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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