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석천의 컷 cut] 자기 자신과 타협하지 않는 성실함
“사람들이 영화음악이 천박하다고 한 것을 설욕하고 싶었다.” 영화음악의 거장 엔니오 모리코네(1928~2020)의 일대기를 그린 다큐멘터리 ‘엔니오: 더 마에스트로’에서 주인공 모리코네는 이렇게 말한다. 그는 왜 그런 마음을 품게 된 것일까.
모리코네가 음악원 졸업 후 영화음악에 손을 댄 것은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서였다. 이 때문에 그는 순수음악을 신봉하는 스승 고프레도 페트라시와 동료 작곡가들에게 “배신자”로 낙인 찍힌다. 모리코네 자신도 영화음악을 하는 게 부끄러웠던 모양이다. 초기엔 영화 엔딩 크레딧에 가명을 사용한다.
그러나 그는 좌절한 음악가로 머물길 거부한다. 오히려 더 악착같이 영화음악에 매달린다. ‘석양의 무법자’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미션’ ‘시네마천국’ ‘헤이트풀8’…. 감독들의 취향을 엉거주춤 따라가지 않고 자신만의 정체성을 추구하면서 음악적 실험을 멈추지 않는다. 휘파람부터 코요테 울음, 시위대 구호 가락까지 영화음악의 경계를 확장해가는 과정 하나하나가 그 자체로 ‘혁신’이다.
모리코네는 고백한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내 작품이 성에 차지 않는다”고. 그는 실제로 자신이 이뤄낸 성과에 만족하지 않고 그 성과를 어떻게 하면 뛰어넘을 수 있을지 매 순간 고민한다. 자신의 선택이 잘못되지 않았음을 증명해 보이겠다는 각오가 그를 안주하지 못하게 만든 것 아닐까. 눈 앞에 놓인 한계를 계속해서 넘어서게 한 것 아닐까.
모리코네의 삶을 한 줄 평으로 요약한다면 이렇게 쓰고 싶다. ‘자기 자신과 타협하지 않는 성실함.’ 스스로와 타협하지 않는다는 건 뚜렷한 원칙과 기준을 가지고 산다는 뜻일 터. 그가 그토록 철저하면서도 유연할 수 있었던 이유다. 그는 우리들과 반대편에 서 있는지 모른다. 생각이 조금이라도 다른 이에겐 차갑게 등을 돌리면서 자신과는 너무나 쉽게 타협해버리는 요즘의 우리들과.
권석천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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