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패션공룡 탄생…코치, 11조원에 베르사체·지미추 품었다
미국 패션브랜드 코치의 모회사 태피스트리가 베르사체, 마이클코어스 등의 브랜드를 보유한 카프리홀딩스를 85억달러(약 11조1700억원)에 인수한다. 최근 수년간 글로벌 패션업계에서 이뤄진 인수합병(M&A) 중 최대 규모다.
태피스트리는 10일(현지시간) 카프리홀딩스의 지분을 주당 57달러에 현금으로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전날을 기준으로 카프리홀딩스의 30일 거래량 가중평균 가격에 59% 프리미엄을 얹은 수준이다.
이로써 태피스트리 산하 브랜드인 코치·케이트스페이드·스튜어트 와이츠먼, 카프리홀딩스 산하 브랜드인 베르사체·지미추·마이클코어스까지 총 6개 패션 브랜드를 거느린 미국 패션공룡이 탄생하게 됐다. 양측은 이번 합병으로 전 세계 75개국 소비자들에게 제품을 판매할 수 있는 기반을 구축할 수 있게 됐다고 강조했다. 양사의 글로벌 연간 매출은 총 120억달러를 웃돈다.
조앤 크레보세라트 태피스트리 최고경영자(CEO)는 "6개의 상징적인 브랜드와 탁월한 글로벌 팀을 하나로 묶은 카프리홀딩스 인수 사실을 발표하게 돼 기쁘다"면서 이번 인수를 통해 보다 광범위한 고객 타깃과 경쟁우위를 갖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태피스트리는 3년 안에 2억달러의 비용 절감 효과가 있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미국의 패션 디자이너 마이클 코어스가 설립한 카프리홀딩스는 디자이너의 이름을 딴 브랜드 마이클코어스 외에도 각각 2018년, 2017년 인수한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베르사체, 지미추 등을 보유하고 있다. 마이클코어스를 앞세운 대중적 전략으로 2014년까지 기업가치 200억달러를 돌파하는 등 승승장구했으나, 이후 사업 악화, 실적 부진 등을 겪으며 현재 시장가치는 40억달러 수준까지 떨어진 상태다. 올 들어서만 주가가 40% 하락했다. 인수 주체인 태피스트리의 시장가치는 약 100억달러로 평가된다. 최근 실적 발표에서는 올해 매출 전망을 상향하기도 했다.
태피스트리와 카프리홀딩스는 이번 인수 건을 두고 수개월간 협상을 진행했고, 양측 이사회는 만장일치로 이를 승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초 지난 8일 분기 실적발표를 예고한 카프리홀딩스가 이유도 밝히지 않고 이를 이날 오전으로 연기한 것도 이번 인수건과 관련된 것으로 분석된다. 카프리홀딩스의 존 아이돌 CEO는 "이번 인수를 통해 우리 브랜드의 고유 DNA를 유지하면서도 글로벌 영역 확장을 가속화할 더 큰 자원, 능력을 가질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전문가들과 현지 언론들은 미국 패션공룡의 탄생으로 명품 등 고가 시장에서 유럽 패션브랜드를 상대로 한 경쟁력이 더 높아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컨설팅기업 커스노머 그로스파트너스의 크레이그 존슨 사장은 뉴욕타임스(NYT)에 "태피스트리가 유럽의 케링, LVMH와 마찬가지로 진정한 '럭셔리 하우스'가 됐다"고 평가했다. WSJ는 "여전히 유럽 패션공룡들에 비하면 왜소하다"면서도 "유럽 패션브랜드를 상대로 경쟁력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최근 LVMH, 구찌, 케링 등 유럽 패션기업들은 각종 브랜드를 사들이며 몸집을 한층 키워가는 추세다. 앞서 LVMH는 2021년 쥬얼리 업체 티파니앤코를 인수했고, 케링은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발렌티노의 지분을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케링은 미 패션 브랜드인 톰포드도 인수하고자 했으나, 뷰티브랜드인 에스티로더와의 경쟁에 밀리기도 했다.
글로벌 데이터의 닐 손더스 전무는 이번 인수합병이 북미 시장에서 고가제품 판매가 둔화하는 시점에 이뤄졌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는 "태피스트리와 카프리홀딩스 모두 성장을 위해 글로벌 시장을 찾고 있다"면서 "더 큰 기업으로 과감한 글로벌 계획을 추진하는 데 있어 많은 안정을 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인수 발표 이후 이날 오전 뉴욕증시에서 카프리홀딩스의 주가는 전장 대비 56% 뛴 수준에서 거래되고 있다. 올해 낙폭 상당부분을 상쇄한 것이다. 반면 태피스트리의 주가는 12%가량 밀리고 있다.
뉴욕=조슬기나 특파원 seu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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