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ew & Review] 미국 “반도체 218조원 투자 끌어왔다” 자화자찬…각국 정부 속내 복잡

이희권, 최은경 2023. 8. 11.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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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60억 달러(약 218조3700억원)-. 미국 백악관이 ‘반도체지원법(CHIPS and Science Act·반도체법)’ 시행 1년을 맞아 9일(현지시간) 전 세계 460개 이상의 기업들이 자국 내에 투자를 약속한 금액이라며 발표한 숫자다.

미국 상무부는 이날 “투자 의향서를 제출한 기업에는 반도체 제조에서부터 공급망, 연구개발까지 모든 영역이 포함됐다”고 설명했다. 지난 4월까지 지원금 신청을 검토하던 기업이 200여 곳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2배 이상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날 성명을 통해 “미국을 다시 반도체 제조의 선두로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백악관 역시 “미국 50개 주 중 42개 주에서 반도체법과 관련한 프로젝트가 시작된다”고 밝혔다. 미국 CNBC는 이를 두고 “미국의 반도체 산업이 ‘횡재(windfall)’를 기다리고 있다”고 표현했다.

김경진 기자

반도체법은 미국 내 반도체 생산시설 확대에 총 520억 달러(약 68조원)의 보조금을 지원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단 보조금을 받으면 초과수익의 일부를 공유해야 하며 중국 내 최첨단 반도체 설비를 증설할 수 없다는 독소조항이 논란이 됐다.

하지만 이같은 미국의 자화자찬식 평가를 바라보는 각국 정부와 반도체 업계의 속내는 복잡하다. 중국 견제라는 ‘대의’에는 대부분 동의했지만 새로운 질서 속에서 자국과 기업 이익 극대화를 놓고 각국의 동상이몽은 점점 더 복잡해지고 있다. 당장 미국에 이어 유럽연합(EU)도 올해 ‘유럽판 반도체법’을 승인하면서 430억 유로(약 62조원)를 동원하는 등 제 살길 찾기에 나섰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역시 이를 계기로 전체적인 공급망 관리의 중요성을 깨닫고 글로벌대외협력(GPA·Global Public Affairs) 조직을 강화하는 등 글로벌 공급망 재편에 본격적으로 대응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반도체 공장(팹)이 국가 전략 자산으로 인식되면서 생산라인이 여러 곳으로 쪼개져 칩 생산 비용이 더 늘었다. 이는 애플, 퀄컴, 엔비디아 등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기업)를 쥐고 있는 미국보다는 칩 제조에 특화한 한국과 대만에 부담 요소다. 실제로 그동안 미국에 가장 협조적이었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1위 대만 TSMC는 불만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TSMC는 400억 달러(약 52조원)를 투자해 건설 중인 미국 애리조나 공장 가동 시점을 당초 내년에서 1년 미뤘다. 숙련인력 부족을 이유로 들었지만 높은 생산비용에 대해 부담을 느낀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TSMC 창업자 모리스 창은 “미국에서 동일한 칩을 생산하는 데 드는 비용이 대만보다 50% 이상 비싸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도 5나노미터(㎚·1㎚=10억 분의 1m) 이하 핵심 공정은 여전히 대만에 남겼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TSMC가 최근 첨단 공정 가격을 또 다시 10% 이상 인상했다”면서 “치솟은 생산 비용을 미국 팹리스에 전가하는 한편, 각국 정부의 보조금까지 더해 리스크를 최대한 줄이겠다는 전략”이라고 풀이했다.

미국은 보조금 문턱을 다시 높이는 분위기다. 미 상무부 고위 관계자는 최근 CNBC에 “반도체 지원금을 신청한 모든 기업 중 누군가는 실망할 것”이라고 말했다. 예상보다 많은 기업이 보조금을 신청한 가운데 지원금을 쪼개서 지급하는 방안까지 거론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도체법으로 촉발된 미·중 간 신경전이 이어지며 다른 분야로 확산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지난해 10월 미국 정부는 미국 기업의 중국에 대한 첨단 반도체 장비 수출을 사실상 금지하는 조치를 발표했다. 중국은 ‘자원 통제’로 맞불을 놓았다. 중국 정부는 희토류 영구자석 제조기술의 해외 이전·유출을 금지하겠다고 밝힌 데 이어, 이달부터 갈륨·게르마늄의 수출 통제 시행에 들어갔다. 그러자 미국은 이날 미국 자본이 중국의 첨단 반도체와 인공지능(AI), 양자 컴퓨팅 산업 등에 투자하는 것을 규제하는 행정명령을 내놨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반도체만 놓고 보면 중국은 수요 국가로서 역할이 커 공급망에 큰 타격이 없겠지만 자원을 무기화했을 때 2차전지 등 다른 분야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강준영 한국외국어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는 “내년 미국 대선까지 미·중 간 줄다리기는 계속될 것”이라면서 “기업 입장에서는 최첨단 공정을 손에 쥐고 있는 것 이외에는 다른 대응 방법이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희권·최은경 산업부 기자 lee.heek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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