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갈팡질팡…부동산 침체 막으려다 가계대출 키웠다

김남준 2023. 8. 11.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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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예금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한 달 전보다 6조원 증가한 1068조1000억원으로 1년10개월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증가했다. [뉴스1]

금리 상승으로 꺾일 줄 알았던 가계부채가 다시 늘면서 금융당국의 고심이 커지고 있다. 이미 사상 최대 수준인 가계부채가 고금리에도 증가한다면, 연체율 상승 등 부실 가능성이 커진다. 하지만 정부는 부동산 시장 및 경기 침체를 막기 위해 가계대출을 늘리는 엇박자 정책을 펼치고 있다.

10일 금융위원회는 이세훈 사무처장 주재로 기획재정부·국토교통부·한국은행·금융감독원 등 유관기관과 함께 ‘가계부채 현황 점검회의’를 가졌다. 최근 가계부채 증가세가 예사롭지 않다는 판단에서다.

지난달 모든 금융사가 취급한 가계대출 총액은 전달 대비 5조4000억원이 증가하며 올해 들어 가장 큰 폭으로 늘었다. 특히 은행이 취급한 가계대출은 6월과 비교해 지난달 6조원이 늘며 2021년 9월 이후 월간 기준 최대 증가 폭을 보였다.

금융위는 올해 초 출시한 정책모기지 공급 축소까지 검토하기로 했다. ‘영끌족’ 이자 부담을 덜기 위해 도입한 특례보금자리론은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적용을 받지 않는다는 장점에 이용자가 급증했다. 실제 지난달 말 기준 31조원이 공급되면서 올해 전체 예상 공급액(39조6000억원)의 상당액을 벌써 소진했다. 금융당국은 이번 달 특례보금자리론 금리를 인상(0.25%포인트)하고 공급 추이 등을 보면서 속도 조절을 위한 조치를 강구하기로 했다.

김영옥 기자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과 인터넷전문은행의 비대면 주택담보대출도 점검한다. 금융당국은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이 한 달 원리금 부담을 낮춰 DSR 규제를 우회하는 데 쓰이고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또 최근 급증한 인터넷 은행의 주택담보대출 과정에서 소득심사 등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 살펴보겠다는 방침이다.

금융당국이 대책 마련에 나섰지만 효과는 미지수다. 일부 정책은 오히려 가계부채 증가를 유발하고 있어서다. 대표적인 것이 부동산 규제 완화다. 최근 가계대출은 아파트 매매가격과 거래량이 살아나며 주택담보대출을 중심으로 급증했다. 정부가 전매제한 기간 등 부동산 규제를 푼 영향이 컸다. 특례보금자리론과 전세보증금 반환 대출 등 금융지원을 통해 DSR 우회를 허용한 것도 가계대출 상승을 자극했다.

금융당국이 시중은행의 금리 인하를 유도한 것도 엇박자를 불렀다. 특히 최근 이복현 금감원장은 상생 금융을 내세워 직접 시중은행에 대출금리를 낮추라고 압박했다. 이는 적정 시장금리보다 실제 대출금리를 낮추면서 가계부채 증가를 유발한다.

이런 금감원의 행보에 통화당국은 불만을 드러냈다. 지난 1일 공개된 한은 금융통화위원회 의사록에서 한 금통위원은 “창구지도 등 중앙은행이 통제할 수 없는 정책들이 통화정책 기조와 괴리를 보이면서 통화정책 커뮤니케이션 신뢰성 측면에서 불확실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 기조를 한은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점도 가계대출 증가의 요인이다.

경기 침체 우려가 가시지 않는 가운데 무작정 가계부채 축소 정책을 펼치기 어렵다는 점은 고민이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최근까지 정부가 부동산 시장 경착륙 우려에 대출 규제를 일부 푸는 등 가계부채 증가를 유발한 측면이 있다”며 “지금부터라도 대출 규제 같은 가계부채 축소 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남준 기자 kim.nam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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