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워치가 주부에게 알려준 사실, 눈물이 났다 [살림미학]

임은희 2023. 8. 1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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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하려고 했던 살림... 더 잘 하기 위해 대충 하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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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은희 기자]

얼마 전 친구의 SNS에서 재미난 단어를 봤다. '오운완', '오걷완'. 뜻을 알고 보니 오늘 운동 완료, 오늘 걷기 완료를 줄여서 하는 말이란다. 

노화와 노쇠의 이중고에 치이는 나이, 근손실을 걱정해야 하는 40대 중반이라 나도 운동을 결심했다. 걷기 정도는 할 수 있겠지 싶었는데 매일 걷는 것이 이상할 정도로 힘들었다. 에너지를 크게 소모할 일이 적음에도 불구하고 오후 11시 넘어서까지 못 걷는 날이 많았다. 설마 전업주부로 나태하게 살아온 습관 때문에 게을러서 못 하는 건가?
 
▲ 7월의 '집안일' 기록.  7월 27일은 페어링 실패로 나오지 않은 것. 1일 평균 노동 시간은 13시간, 평균 거리는 19.3킬로미터였다.
ⓒ 임은희
 
스마트워치를 착용하고 일상을 점검했다. 기기를 구입한 7월 4일부터 7월 31일까지 스마트워치로 살림 운동량을 측정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집과 집 주변을 돌아다니는 일로만 1일 평균 19.3km를 걸었다. 평균 걸음수는 2만 6355, 걷기 심박수는 99BPM이었다. 

대단한 집안일을 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제대로 쉬거나 나를 위해 운동 시간을 가지는 것조차 쉽지 않을 정도로 집에 매여 살고 있었나 싶어서 아주 조금 눈물이 났다. 누가 하라고 칼 들고 협박한 것은 아니지만, 좋아서 그리고 필요해서 하는 일이 나를 잠식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 일과를 살펴 볼 필요성을 느꼈다. 월평균 활동량과 비슷한 7월의 어느 하루를 복기했다. 

스마트워치로 들여다본 나의 하루
 
▲ 운동 시간은 길고, 활동에너지는 적은 집안일 강도가 낮은 일을 오랜 시간 반복하는 것이 집안일의 실체였다.
ⓒ 임은희
 
아이들 학기 중에 나는 오전 6시 30분 정도에 일어나지만, 요샌 아이들이 방학이라 배우자가 출근할 때에도(오전 7시) 일어나지 않는다. 아침 식사를 전날 밤에 준비해 두면 알아서 먹고 출근한다. 나는 오전 8시에 일어나 스트레칭을 한 후 송풍으로 돌아가고 있는 에어컨을 끄고 창문을 연다. 

빨랫감을 모아 종류별로 그물망에 모은 후 세탁기에 넣는다. 먼지거름망을 조립해 부착한 후 세제를 넣고 작동시킨다. 평소에 열어두고 관리하는 건조기 콘덴서 부분의 먼지를 청소기로 제거한 후 뚜껑을 닫는다.

전날 세척한 건조기 거름망이 말랐는지 확인하고 조립해 건조기에 부착한다. 세탁실에 있는 재활용품 분리수거 통을 치우고 바닥에 있는 먼지를 닦은 후 물세척을 한다. 세탁실 슬리퍼도 세척해 물기가 잘 마르도록 벽면에 세워둔다. 
 
▲ 키보드 청소용 빗자루 다섯 개의 빗자루를 사용하고 있는데 그중 가장 작은 빗자루로 키보드 먼지를 제거하는 용도로 사용하고 있다. 누구도 눈여겨 보지 않지만 청결하고 아름다운 살림을 위한 필수 도구 중 하나다.
ⓒ 임은희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를 들으며 식기세척기 그릇들을 정리한다. 아침 식사에 쓸 그릇들을 챙겨 식탁에 놓는다. 식기세척기 안쪽에서 냄새가 나는지 확인하고 거름망을 분리해 세척하고 소독한다. 세제 찌꺼기가 남아 있어서 젖은 행주로 닦고 마른행주에 알코올을 묻혀 한번 더 닦았다. 

아이들이 일어나 아침식사를 하는 동안 침구를 정리한다. 마른걸레를 들고 가구와 가전제품 상단의 먼지를 닦는다. 하루 3번 닦으면 깨끗하지만 1번 닦으면 안 닦은 것과 비슷하다. 먼지를 닦은 후 바닥을 청소한다. 

로봇청소기가 작동하는 동안 자꾸 다른 집안일을 하게 되고, 작동을 마치면 먼지통과 물통을 세척하는 일이 힘들어서 수동 전기청소기만 쓴다. 스스로 먼지통을 비우고 청소하고 점검하는 수준의 인공지능을 가진 로봇청소기가 나온다면 당장 구입할지도 모를 일이다. 

빗자루로 비좁은 곳의 먼지를 쓸어낸다음 전기청소기로 빗자루에 붙은 먼지를 빨아들이고 넓은 바닥의 먼지까지 청소한다. 식사를 마친 아이들이 식탁을 치우면 식탁을 닦고 바닥에 떨어진 음식물을 손으로 주워 버린다. 

밀대를 쓰거나 발로 걸레질하며 손으로는 자잘한 살림을 정리한다. 세탁기 끝나는 소리가 들린다. 일반 건조용은 베란다에 널라고 아이들 시키고, 기계 건조용은 건조기에 넣는다. 

식기세척기 거름망을 조립한 후 음식물 찌꺼기를 제거한 그릇을 식기세척기에 차곡차곡 넣는다. 그릇을 모아서 세척해야 하기 때문에 그릇에 붙은 음식물을 제거한 후 식기세척기에 넣는다. 행주로 싱크대에 튄 물기를 닦는다. 발에는 여전히 걸레가 붙어있다.

나를 챙기는 건 왜 잊을까
 
▲ 왜 주부만 완벽해야 하나 '전업주부'니까 완벽하게 살림을 살아야 한다고 여겼다. 설거지가 늘어나도 예쁘게 정갈하게 담아야 좋은 식사준비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는 아름다운 살림은 완벽함이 아니라 함께 하는 것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반찬통을 꺼내놓고 밥을 먹어도 행복하게 먹으면 그것이 살림미학이다.
ⓒ 임은희
 
점심으로 방울토마토, 채소 샐러드와 크루아상, 자두를 준비했다. 나만 아침을 건너뛴 것이 이제야 생각나서 요거트에 시리얼을 말아 허겁지겁 먹었다. 어쩐지 배가 고프더라니. 늘 집에서 일을 하지만 나를 챙기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아이들이 점심을 먹는 동안 하는 이야기를 들으며 흘린 음식을 치우거나 물을 따라주는 등의 소소한 일을 한다. 

아이들이 식사를 마치고 양치를 하러 간 사이 건조기 종료 알람이 울렸다. 빨래를 꺼내 거실에 펼쳐놓고 아이들에게 정리하라고 한 후 건조기 정리를 한다. 물통을 제거하고 먼지통을 빼 세척한다. 콘덴서를 열어 열기를 낮춰 곰팡이 번식을 예방한다. 건조기 상단과 틈새 먼지를 닦는다. 

반납할 책, 간식, 노트북, 손수건, 지갑, 스마트폰을 가방에 대충 쑤셔 넣고 도서관으로 향한다. 일어나서 처음으로 의자에 앉는다. 자료 검색이 서툰 둘째 아이를 돕고 책을 읽어주다 보면 어느새 3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오마이뉴스>에 송고할 글을 쓰거나 책을 읽고 있으면 아이들이 와서 조용히 말한다. "엄마 배고파."
 
▲ 차도 서서 마시는 전업주부의 삶 차를 즐기는 편인데 생각해보니 집에서는 늘 서서 마셨다. 16년을 일해도 경력 0년, 차 한잔도 앉아서 먹을 여유도 없이 살아온 지난 날이 생각나서 조금 울었다.
ⓒ 임은희
 
아이들이 노는 동안 저녁 준비를 한다. 밥에 완두콩을 뿌린다. 생선을 찌고 진미채무침과 두부조림을 준비한다. 냉동실에 있던 만두를 꺼내 굽는다. 창밖을 보니 여름해가 기울고 있다. 마음이 초조해진다. 나도 빨리 '오걷완' 해야 하는데!

애벌세척한 그릇들을 식기세척기에 넣는다. 책들을 정리하고 아이들이 만들기 하며 흘린 종이 조각들을 치우라고 잔소리한다. 속옷을 치우라고 했더니, 그건 침대 패드 밑에 가지런히 넣어두고 만화책을 보고 있는 둘째가 나의 인내심을 시험한다. 잔소리를 하며 속옷을 끄집어낸다. 속옷을 서랍에 정리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며 아이를 보니 풀칠을 하다 책상을 풀바다로 만들고 있다.

방학 중 아이들 건강검진 일정을 확인하며 베란다에 널어둔 빨래를 걷는다. 재미없고 답답하긴 하지만 급한 대로 아파트 헬스장 러닝머신이라도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마지막 부엌일을 한다. 다음날 아침에 먹을 것들을 식탁 위에 올려놓거나 냉장고에 정리한다.

거실은 난장판이다. 개다 만 빨래와 아이들이 만들기에 쓴 색종이, 갑자기 공부를 하겠다고 펼쳐둔 학습지가 뒤섞여 잡탕도 이런 잡탕이 없다. 넓지도 않은 집을 다섯 바퀴 정도 돌면서 잔소리하다 보면 그런대로 깨끗해진다. 집을 치운 후 책을 들고 아이들과 외출한다. 

아이들이 포켓몬고를 하는 동안 기어이 책을 읽으며 동네를 한 바퀴 돌고 귀가한다. 어느새 오후 10시가 넘었다. 부랴부랴 아이들을 재운다. 남편이 퇴근했다. 빨래가 쌓이고 야식을 먹고 남은 그릇도 쌓인다. 그릇들을 씻어 식기세척기에 넣고 작동시킨다.

식구들이 욕실을 다 쓰고 나면 마지막으로 들어가 씻고 욕실 청소를 한다. 사용한 수건으로 거울과 수전의 물기를 닦고 청소를 마무리한다. 오후 11시, 아파트 헬스장이 영업을 종료했다. 에어컨을 켠다. 집이 시원해진다. 30분 후 에어컨을 제습으로 바꾸고 2시간 후 송풍으로 전환하고 새벽 2시 정도에 잠을 청한다.

매일 나는 성공한다, 오집완
 
 먹기 좋게 깎아 우아하게 그릇에 담는 대신 알아서 꺼내 먹을 수 있게 씻어만 두었다. 전업주부도 월루 좀 하자.
ⓒ 임은희
 
오늘도 걷기는 실패지만 성공적으로 해낸 것은 있다. 오집완, 오늘도 집안일 완료!

나는 살림을 사랑한다. 아름다운 상차림, 단정한 그릇장, 반듯하게 갠 빨래, 깔끔한 냉장고를 유지하며 사는 것이 내 천직이라 믿는다. 그럼에도 가끔은 살림을 사랑하는 나의 삶이 살림이 스며든 가족의 삶과는 조금 분리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업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들이 해당 분야에서 완벽하게 업무를 처리하고 우수함을 발휘하며 사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럭저럭 일해도 월급은 받고 사는 보통의 직장인들처럼 전업주부인 나도 꼭 완벽한 살림과 육아를 위해 나의 모든 것을 희생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자를 퐁퐁으로 만드는 설거지녀, 취집이라는 말로 비하당하는 전업주부 집단에 속한 사람이기에 잘하면 당연하고 살림이나 육아 중 하나만 부족해도 욕을 얻어먹기 십상인 것은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지속가능한 살림을 위해 덜 완벽해지기로 결심했다.

집은 좀 더러워지겠지만 나는 예전보다 더 많이 웃을 것이다. 과거보다 좋아진 체력으로 아이들과 활동적인 하루를 보낼 것이다. 나의 '오집완'은 오늘이 마지막일 것이라 믿어본다. 내일부터는 나도 '오걷완' 하며 즐겁게 살림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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