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전환 가속화에 ‘현대차 품’ 벗어나는 부품사들
현대차그룹 부품 계열사도 그룹 내 시장 의존도 낮추고 있어
전동화 시대가 도래하면서 현대자동차그룹의 핵심 부품사들도 해외 진출을 가속하고 있다. 해외 고객사들을 확보하면서 현대차‧기아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독자 생존력을 강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11일 업계에 따르면 HL만도, 성우하이텍, 에스엘 등 현대차그룹의 주요 협력사들은 전기차 시장 성장에 힘입어 전동화 부품 중심으로 고객 다변화를 가속화하고 있다.
HL만도는 지난해 포드에 전기차용 통합 전자 브레이크(IDB) 등을 공급하면서 실적 개선이 전망된다. 전기차 부품 비중을 확대하고 있는 HL만도는 올해도 포드와 GM 등 북미 고객사를 확보하기 위해 멕시코에서 공장을 증설할 계획이다. 이런 고객 다변화로 HL만도의 현대차‧기아의 매출 비중은 2021년 55%에서 지난해 48%로 줄었으며 GM 포함한 북미거점 OEM은 22%에서 28%로 증가했다.
성우하이텍은 기존 고객사인 현대차‧기아, GM 한국사업장 외 폭스바겐, BMW, GM 등 해외 완성차 업체들로 거래를 넓히고 있다. 성우하이텍은 지난해부터 북미 전기차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미국에 생산공장을 짓고 배터리팩 케이스 등을 생산하고 있다.
특히 성우하이텍의 현대차그룹 의존도는 지난해 연간 기준으로 85% 달해 새로운 수익처 발굴이 더 절실한 상황이다. 이를 위해 배터리 외장재 중심으로 글로벌 수주를 확대하고 연구개발 투자를 통해 전기차 부품 라인업을 늘려갈 방침이다.
에스엘은 올해 1분기 현대차그룹 외 GM향 신규 수주로 호실적을 기록했다. 전세계적으로 전동화전략이 빨라지고 있어 LED 헤드램프와 E-시프터 채택비중이 상승하고 있다. 올해는 폴란드, 브라질에서도 신규 전기차 고객사를 위한 생산한다.
에스엘은 1분기 기준 매출에서 현대차그룹이 50%를 차지했다. 지난 3분기 동안 현대차그룹의 비중은 비슷했지만, GM의 매출 비중이 8.5%→13.9%→17.4%로 2배 이상 증가했다.
수직계열화로 현대차·기아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현대차그룹 부품계열사들도 캡티브 마켓(그룹 내 시장)에서 벗어나 외연을 넓히는 데 집중하고 있다.
현대모비스는 폭스바겐에 전기차 핵심 부품인 배터리시스템(BSA)을 공급한다. 지난해 메르세데스-벤츠에 전기차 새시 모듈 공급에 이어 대규모 해외 수주이며 계약 규모는 조 단위로 추정되고 있다. 현대모비스의 전동화 부품 계약으로는 역대 최대 규모로 현대차그룹 외 기업에 처음 체결된 조 단위 공급 계약이다.
현대모비스는 해외에서는 ‘현대’를 떼고 ‘모비스’로 기업명으로 사용하고 있다. 해외에서는 현대차와 혼동하거나 잠재 고객사가 경쟁사의 계열사여서 꺼릴 수 있기에 선택한 전략이다. 아직 지난 1분기 기준으로 현대차‧기아 매출 비중이 80.6%에 달하지만, 신규 매출원 확보를 위해 미국, 인도네시아 등에 거점을 구축하고 있다.
현대케피코는 지난달 말 사우디아라비아 전기차 제조사에 차량 제어장치(VCU)와 DC-DC 컨버터를 공급하기로 했다고 알렸다. 수주액은 2500억원 규모이며 수주 협의 중인 부품 포함하면 총 7000억원 규모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차그룹 의존도가 90%에 달하는 현대위아도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내부 거래 비중이 낮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2020년에 유럽 및 북미 자동차 업체와 전기차 중심으로 맺은 공급계약에 따라 등속조인트 등의 부품 생산이 올해부터 시작된 데 따른 것이다.
현대차그룹 둥지 탈출 배경은
이런 부품사들의 주 고객사 외 다른 납품처와 계약은 내연기관 시대에서는 어려운 일이었다. 핵심 부품이 당사 외에도 공급하게 되면 경쟁력이 희석되거나 기술 유출 등 위험이 있어서 기존 고객사들에게는 예민한 사안이었다.
과거 토요타도 주요 부품들이 다른 업체로 유출되지 않도록 관리하기도 했다. 부품사들이 다른 제조사들에 비주류인 부품들만 판매하고 핵심 부품은 공급하지 않게 했다. 이 전략은 토요타가 세계 1위 기업으로 발돋움할 수 있던 요인 중 하나로 꼽힌다. 현대차그룹도 이 전략을 모방해 부품사들의 공급망을 관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비계열사인 협력사의 경우에는 불리한 구조다. 협력사에는 주 고객사와 장기거래가 절대적인 갑을관계의 을로서 위치할 수밖에 없게 된다. 협력사 내부 문제가 없어도 핵심 고객사의 상황에 따라 막심한 손해나 존폐의 기로까지 갈 수 있어서다. 고객사가 수주 물량을 줄이게 되면 그 여파는 2·3차 협력사까지 미칠 수 있어 협력사에 무리한 요구사항도 들어주는 경우도 발생하기도 한다.
이런 상황을 뒤바꾼 것은 기업문화의 변화와 글로벌 전동화의 가속이다. 완성차 업체들 사이에서도 부품사들의 경쟁력을 높이려면 독립성 강화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자리 잡아가고 있다. 또, 부품사와의 동반성장, 상생이 곧 기업의 경쟁력으로 이어진다는 마인드도 확산되고 있다.
내연기관에서 전기차로 넘어가는 과도기에는 아직 전기차 물량이 적어 단일 완성차 업체에 종속된 구조로는 부품사가 생존하기 힘들다는 점도 변화의 한 요인이다. 부품사가 다수의 고객사를 확보하는 것을 우선으로 경쟁력을 키우는 것이 더 고객사로서도 이득이 된다고 판단할 수 있다.
이항구 자동차융합기술원 원장은 “완성차 입장에서는 협력사들이 자체 역량을 키울 수 있도록 놔준 것으로도 볼 수 있다”며 “아직 초기 단계니까 (완성차) 업체들은 부담스러울 수도 있지만 이 과정을 슬기롭게 극복하지 못하면 우리나라 자동차 부품 산업들은 상당한 위기에 처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현대차그룹은 과거 협력사와 장기거래 비중이 높았지만 4~5년 전부터는 각자도생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내연기관이 아닌 전기차에서 새롭게 역량을 쌓아올려야 하기 때문에 새로운 협력사들을 모색할 수 있어서다.
김필수 대림대학교 교수는 “일반적으로 완성차 업계의 협력사 이익률이 1차 협력사, 계열사들은 3~4%, 2·3차는1~1.5%, 그 밑의 협력사는 더 적어져 열악한 상황”이라며 “(리스크가 크기 때문에)신규고객사를 발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다만 부품사들로서는 기존 매출 비중이 큰 고객사와의 관계를 고려해야 할 상황이라, 당장 신규고객사 확보 움직임이 지나치게 공격적으로 보여지는 것은 부담이 될 것이라는 시각도 존재한다.
황용식 세종대학교 교수는 “오픈이노베이션과 같은 기술 개방 분위기로 가고 있지만, 현재 전기차가 대중화된 시기가 아니고 시장 초기 단계”라며 “기술 표준끼리 경쟁하는 상황에서 조금이라도 핵심 기술 보유하는 게 우위를 점할 수 있어서 완성차 업체로서는 달갑지 않을 수 있다”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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