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 조선, 아인슈타인에 열광하고 양자역학에 빠지다

김남중 2023. 8. 10.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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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길] 조선이 만난 아인슈타인
민태기 지음
위즈덤하우스, 316쪽, 1만8500원
1937년으로 추정되는 시점에 일본 교토에 모인 조선인 과학자들. 왼쪽부터 우장춘, 이태규, 리승기다. 육종학자인 우장춘은 1950년 한국으로 들어와 한국 토양에 맞는 배추와 무, 고추, 벼 등의 종자를 개발했다. 양자화학을 전공한 이태규는 미국 유타대에서 아이링 교수와 함께 ‘리-아이링 이론’을 발표해 노벨상 후보가 되었다. 일본 최초의 합성섬유 비날론을 개발한 리승기는 서울대 공대 학장을 지내다 한국전쟁 중 월북해 김일성종합대학에 합류했다. 위즈덤하우스 제공


다 읽고 나면 조금 섭섭해지는 책이다. 조금 더 읽었으면, 다른 얘기가 더 있을 것 같은데, 그렇게 아쉬워하다가 앞부분으로 다시 돌아가 느슨하게 읽었던 페이지를 또 뒤적이게 되는 책이다.

‘조선이 만난 아인슈타인’은 20세기 전반기 조선 과학자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갑신정변 실패 후 미국으로 망명해 최초의 서양식 의사가 된 서재필의 1895년 귀국 장면으로 시작해 우리 민족에게 처음으로 아인슈타인을 소개한 물리학자 황진남의 외로운 죽음으로 끝난다.


책에는 우리가 잘 몰랐던 이야기들이 수두룩하다. 예를 들면, 1922년 식민지 조선에 아인슈타인 열풍이 있었다. 그 해 아인슈타인의 일본 방문을 계기로 국내 언론에서 아인슈타인과 상대성이론을 소개하는 연재 기사들이 이어졌다. 이듬해에는 도쿄 유학생들이 귀국해 전국에서 상대성이론 강연회를 열었다.

“100년 전 우리 선조들은 나라 잃은 유대인이 어떻게 과학으로 나라를 되찾는지 파고들었고, 그리고 그 중심에 있던 과학 스타 아인슈타인에 주목하고, 또 열광했다.”

1930년대 세계 과학계의 트렌드는 양자역학이었다. 조선에서도 1936년에 양자역학 기사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1938년 1월 동아일보에는 무인비행기, 즉 드론을 소개하며 미래는 무인 기술이 지배할 것이라는 기고문이 실렸다.

전 세계에서 현대물리학이 성립되던 그 때 한반도에서도 과학의 향연이 펼쳐졌다. 조선의 엘리트 과학자들은 대부분 유학생 출신으로 과학의 최신 흐름을 꿰뚫고 있었다. 책은 100년 전 조선의 과학자들을 소개한다. 상대성이론 해설을 7편의 시리즈로 연재한 나혜석의 오빠 나경석, 국내 최초 이학박사인 천문학자 이원철,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노벨상 후보에 올랐던 양자화학자 이태규, 남대문시장에서 주운 미국 수학학술지에 논문을 투고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국제 무대에 선 수학자 이임학, 대학야구 스타이자 물리학박사였던 최규남, 다윈의 ‘종의 기원’을 수정하게 한 육종학자 우장춘….

그 시대 과학은 항일운동, 계몽운동의 수단이었다. 책은 당시의 과학자들이 항일운동과 어떻게 연결돼 있는지 그려냄으로써 애국계몽론의 핵심에 과학이 있었다는 점을 알려준다.

20세기 전반기 한국 과학사는 역사책에서도 과학책에서도 제대로 다뤄진 적이 없다. 그 이유는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들과 월북 문인들이 우리 역사에서 지워진 사정과 비슷하다. 과학자들 역시 친일과 좌우의 굴레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아인슈타인을 알린 황진남은 임시정부에서 외무부 참사로 일했고, 여운형과 함께 좌우합작을 추진했다. 황진남은 한국전쟁 때문에 일본으로 간 뒤 1970년 오키나와에서 홀로 죽음을 맞았다. 세계적인 수학자 이임학은 북쪽에 남겨진 친적들과의 교류가 문제가 되어 국적을 회복하지 못했고 캐나다에서 눈을 감았다. 1939년 일본 최초의 합성섬유 비날론 개발에 성공한 유학생 리승기는 월북해 북한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과학자가 되었다. 1930년대 조선에 양자역학을 소개한 도상록은 월북해 북한에서 핵물리학을 이끌었다.

저자는 “우리 근대사 속의 인물들은 서로 얽혀 있다”고 말한다. 친일과 항일, 좌익과 우익이 서로 얽혀 있다는 것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70년대 초 일본에 망명해있던 박헌영의 비서 박갑동을 만났다. 이 자리에서 박헌영의 1945년 ‘8월 테제’가 자신의 인생관을 바꾸었다며 박헌영의 일대기를 써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반공이 국시였던 1973년, 중앙일보에 박헌영의 남로당 이야기가 무려 178회에 걸쳐 연재된다.

해방 이후 남한의 배고픔 문제를 해결하는 데 기여한 우장춘의 아버지 우범선은 명성황후 시해 사건에 가담한 친일파였다. “대한민국의 1960∼70년대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끈 과학 발전은 거의 모두 그의 리더십으로 만들어졌다”는 평가를 받는 최형섭의 부친 역시 대한제국의 군대 해산을 주도한 공로로 일제 하에서 출세한 인물이었다.

100년 전 조선의 과학운동과 과학자들을 조명한 이 책은 당시 한국에 과학이 부재했다는 편견을 깨트린다. 그 시절 한국에 과학이 있었고, 과학자들이 있었고, 그들이 해방 후 한국 산업의 기반을 만들었다는 걸 증언한다.

저자 민태기 에스엔에이치 연구소장은 한국형 발사체인 누리호 엔진 개발에 참여한 공학자다. 2021년 첫 책으로 유체역학의 과학사를 다룬 ‘판타레이’를 출간해 주목을 받았는데, 이번에 선보인 두 번째 책은 같은 저자가 맞나 싶을 정도로 대중적이다. 과학사의 숨겨진 이야기를 쓰는 뛰어난 저술가가 나타났다.

김남중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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