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지마 칼부림이 정신질환 때문? 조현병·망상장애가 정말 범죄와 관련 있나?
이런 기사에 자주 노출되다 보면 자연스레 정신질환과 범죄가 연관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범죄 사실을 알리는 기사 말미에 ‘피의자는 과거 조현병 치료를 받았던 것으로 드러났다’는 말이 언급돼도 이질감을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바꿔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피의자가 과거 당뇨병 치료를 받았던 것으로 드러났다’는 말은 어딘가 어색하다. 전문가들은 범죄자의 정신질환을 보도에 언급하는 게 당뇨병을 언급하는 일만큼이나 이상하다고 말한다. 범죄 행위와 직접적 관련이 있는 건 정신질환 그 자체라기보다는 개인의 공격성이기 때문이다.
◇범죄 관건은 ‘공격성’이지 ‘정신질환 그 자체’ 아냐
정신질환 환자는 일반인보다 판단력이 떨어지거나 충동 조절이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범죄의 관건이 되는 건 이런 정신과적 증상이 아니라, 개인에게 사이코패스적 특성이 있는지의 여부다. 동국대 의과대학 정신건강의학과 사공정규 교수는 “똑같은 피해 망상 환자라도 타인에게 해를 입히지 않는 사람이 있고, 타인을 공격하는 사람이 있다”며 “피해 망상이란 정신질환 증상이 단독으로 범죄를 유발했다기보단, 여기에 어려서부터 형성돼 온 본인의 인격, 충동 조절이 안 되는 성향, 공격성, 당시의 감정 상태 등이 복합적으로 엉겨붙어 범죄 행위로 이어졌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대병원 공공진료센터(정신건강의학과) 손지훈 교수 역시 “특정 정신과적 증상이 어떤 행동으로 이어질지는 개인 성향마다 다르다”며 “같은 망상 증상이 있어도 누군가는 숨고, 누군가는 싸우길 택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조현병 환자 대부분은 공격성을 띠기보다 공포에 빠지거나 위축되는 모습을 보인다.
정신질환과 공격성의 연결고리는 그리 단단하지 않다. 정신질환 환자의 공격성에는 개인의 성장 환경과 감정 상태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조현병 환자가 보이는 공격성은 ▲환청, 망상 등 정신질환 증상에 의한 충동으로 갑자기 공격적 행동을 하는 경우(충동적 공격성)와 ▲본래 충동성이 높고 조절 능력이 부족해 외부의 자극에 크게 반응하는 경우(계획적 공격성)로 나뉜다.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연구팀을 비롯한 국내 합동 연구팀이 공격적 범죄행위로 치료감호명령을 받은 조현병 환자들을 조사한 결과, 83명이 충동적 공격성을, 33명이 계획적 공격성을 보였다. 환자의 공격성은 환자의 ▲발달 과정 ▲성장 환경 ▲감정 상태에 큰 영향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계획적 공격성을 보인 환자들은 어린 시절에 성학대를 비롯한 학대 경험이 많았다. 환자의 어린 시절 사회 환경과 잘못된 행동 발달 과정 등이 성인이 된 이후의 계획적 공격성으로 이어진다는 해외 선행 연구 결과도 있다. 충동적 공격성을 보이는 환자들은 분노감 점수가 높았다. 이에 연구팀은 충동성 공격성 집단이 보이는 갑작스러운 공격 행위의 원인이 분노감에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이렇듯 공격성이 성장 환경과 감정 상태의 영향을 받는다면, 정신질환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범죄를 저지를 위험이 커진다고 말하기 어렵다.
전문가들은 행동의 이런 맥락이 지워진 채 특정 정신질환이 범죄 동기로 언급되는 것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 사공정규 교수는 “범죄 동기를 온전히 정신질환으로 단순화해 설명해버리면, 범죄자가 정신질환을 본인의 충동적 성향을 숨기는 방패막이로 삼을 수 있다”고 말했다. 손지훈 교수는 “정신질환과 범죄의 연결성이 강해져 정신질환 환자가 곧 범죄자라는 인식이 생기면 치료를 기피하다 중증으로 악화되는 환자들이 더 많아질 것”이라 우려했다. 조선대 의과대학 법의학과 김윤신 교수는 “범죄자의 정신질환이 언급되는 건 관련 전문가가 범죄자의 정신건강상태를 감정했을 때 범죄와의 관련성이 명확히 확인됐고, 이에 대한 법원이 확정판결이 이루어진 후로 한정돼야 한다”며 “또한 이런 상황이라도 특정 정신질환의 이름 자체를 언급하기보단, 망상이나 환청처럼 범죄에 관련된 증상만 언급함으로써 사건의 핵심사항을 대중에게 알리는 편이 나아 보인다”고 말했다.
◇‘비동의 입원’ 기준 현실화하고, 어린 시절 훈육 강화해야
전문가들은 중증정신질환자의 범죄라는 현상 기저에 크게 두 가지 문제가 있다고 본다. 첫째는 정신질환이 극심해질 때까지 치료받지 않거나, 설령 치료를 받았더라도 중단한 환자가 있다는 사실이다. 사회 보건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했다면 진작에 치료받았어야 할 사람들이다. 정신질환 증상이 갑자기 심해진 급성기 환자는 입원 치료가 필요할 수 있다. 잠깐의 집중 치료를 통해 증상을 완화하기 위함이다. 손지훈 교수는 “급성기 상태가 되더라도 적절한 치료를 받으면 원만하게 잘 넘길 수 있다”고 말했다. 환자 본인의 동의를 구할 수 없을 경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동의 이외에도 부모나 배우자 등 보호의무자 2명 이상의 동의를 받으면 환자를 입원시킬 수 있다.
지역 정신건강심사위원장으로 15년간 활동해온 사공정규 교수는 이 기준이 비현실적이라 말한다. 사공 교수는 “지금은 1인 가구 시대라 보호자 1명을 찾기조차 힘들다”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동의 하에 적극적으로 입원치료를 할 수 있도록 불필요한 서류 심사를 철폐하는 등 비동의 입원 기준을 현실화하고, 퇴원 후에 환자 전담 인력을 배치해 환자가 외래 치료를 이어갈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현재도 외래치료 명령제가 있긴 하나, 퇴원 환자가 이 명령을 따르는 경우는 드물다. 치료비를 내기 어려운 형편인 환자가 많다는 게 한몫한다. 사공교수는 “급성기 증상이 끝난 후에 외래치료를 받지 않으면 급성기 상태가 만성화될 수 있다”며 “만성화돼 ‘보호 환자’로 등록될 경우 국가가 평생 치료비를 책임져야 하므로, 외래치료가 가능할 때 치료비를 100% 지원해 환자를 사회로 복귀시키는 게 경제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비용이 적다”고 말했다.
둘째로, 정신질환자든 일반인이든 개인의 공격성을 조장하는 사회 문화에도 문제가 있다. 앞서 지적한 대로 타인을 향한 폭력적 범죄는 개인의 공격성에 기초한다. 잘못에 대한 적절한 처벌조차 인권침해로 여겨지는 환경에선 개인의 공격성이 강해질 수밖에 없다. 사공 교수는 “잘못에 대한 훈육이 적절하게 이뤄지지 않으면, 초등학생 시기 적대적 반항장애, 청소년기 품행장애를 거쳐 성인기에 반사회적 성격장애로 이어질 수 있다”며 “인격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지 않은 사회에선 타인을 향해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이 많을 수 밖에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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