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에 출근 조정 권고… “권고 말고 강제 해주세요”

유민지 2023. 8. 10. 17:24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제6호 태풍 '카눈'이 전국을 수직 관통할 것으로 예보된 10일 오전 경기 수원시 권선구 수도권기상청에서 예보관이 기상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   사진=임형택 기자

제6호 태풍 카눈이 한반도에 상륙하기 하루 전날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행정·공공기관 및 민간기업·단체의 출퇴근 시간을 조정하라는 ‘권고’를 발표했다. 하지만 이를 본 다수 직장인들은 실효성이 없다며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9일 오후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는 “태풍 카눈이 출근 시간인 10일 오전 남해안에 상륙해 전국 내륙을 관통해 11일 새벽 북한으로 이동할 것이 예상된다”라며 “태풍 내습 시 야외 이동인구 최소화를 위해 각급 행정기관 등에 출퇴근 시간을 조정해 줄 것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또 유관 민간기업·단체가 상황에 맞게 출퇴근 시간을 조정하도록 적극 독려해달라고 요청했다.

출퇴근 시간 조정 권고 소식을 접한 직장인들의 반응은 좋지 않았다. “권고할 바엔 차라리 말하지 말라”는 반응도 나왔다. 권고로는 강제성이 없기 때문이다.

9일 오후 5시쯤 출퇴근 시간 조정 권고를 기사로 접한 직장인 신모(30)씨는 “권고라고 하면 누가 따르겠냐”며 “그냥 출근하라는 말과 뭐가 다르냐”고 반문했다. 또 다른 직장인 김모(31)씨는 “해당 기사를 회사 단톡방에 공유했더니, 관리자급이 ‘이런 건 어디서 들고 왔냐’고 타박했다”고 털어놨다. 박모(27‧공무원)씨는 “‘권고’는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우린 권고하지 않았느냐’며 정부가 빠져나갈 구멍”이라고 비판했다.

태풍 '카눈'이 북상 중인 10일 오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시민들이 비바람을 맞으며 힘겹게 걸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권고하면 누가 듣나” “재난 문자 보내달라”

다수의 직장인들은 10일 오전에도 평소와 다름없이 출근하는 모습이었다. 국가적 비상 상황에도 재택근무를 하거나 출‧퇴근 시간 조정을 하지 못한 이들이 많았다. 근무 환경이 유연한 편으로 알려진 카카오 계열사에 근무 중인 김모(29)씨는 “중대본 권고 때문인지 코어타임(필수 근무 시간대)이 해제됐다”고 전했다. 하지만 “코로나 시기처럼 재택근무나 유연근무를 기대했으나 달라진 건 없었다”며 “권고만으론 회사를 움직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재택근무가 가능한 개발 직종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서울 공덕동 한 회사에서 개발자로 근무하고 있는 이모(29)씨는 “9일 출퇴근 시간을 탄력적으로 조정하라는 공지를 받았지만 바뀐 건 없었다”고 했다. 말뿐인 권고로는 실효성이 없었다는 얘기다. 이씨는 권고에도 구체적인 내용이 담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말로만 할 거면 자세하게라도 해줬으면 한다”며 “지역별, 권역별로 큰 피해가 예상되는 시간대를 알려줘서 특정 시간대는 피하라는 내용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출퇴근 시간 조정에 대해 듣지 못한 이들도 많았다. 특히 아무 언급도 듣지 못한 행정기관과 공공기관 근무자들도 있었다. 서울 한 박물관에서 근무 중인 정모(28)씨는 “야외 전시물 걱정만 하지, 직원들에게 출근길 조심하라는 말조차 없었다”고 털어놨다. 그는 “퇴근길에 하천을 지나야 하는데, 물이 불어날까 무서워 오후에 반차 휴가를 쓸 예정”이라며 “태풍이 오는 날 안전 때문에 개인 연차를 쓰는 게 아깝다”고 토로했다. 

출퇴근 시간 조정 권고를 전달하는 방식에 대한 지적도 나왔다. 시민들이 언론 기사로 알아서 접하는 것 대신, 안전문자나 재난문자 등을 활용해 강력하게 공지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행정부 한 산하기관에 재직 중인 신모(30)씨는 “평상시 재난문자는 잘 보내더니 왜 어제, 오늘은 안 보냈는지 모르겠다”라며 “태풍 때문에 목숨 걸고 출근하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권고보다 더 강력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신씨는 “기관에 보낸 공문도 없이 기사 한 줄 나온 걸로 누가 재택이나 출퇴근 시간 조정을 해주냐”며 “이행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주는 등 강력한 페널티가 있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제6호 태풍 카눈 한반도 상륙으로 바람이 점차 강해지는 가운데 10일 오후 서울 노원구 광운대학교에서 학생들이 우산을 쓰고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사진=박효상 기자

“누구는 조기 퇴근, 누구는 정상 퇴근”

퇴근길도 문제다. 한반도를 관통할 것으로 전망되는 태풍 카눈은 10일 오전부터 느린 속도로 북상하고 있다. 퇴근 시간인 오후 5~7시에는 경기 남부까지 올라올 것으로 예측된다. 퇴근길 수도권에 많은 비와 강풍을 동반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일부 회사에선 조기 퇴근도 진행하는 분위기다.

10일 오후 X(구 트위터)의 실시간 트렌드엔 ‘퇴근하래’가 올라왔다. 누리꾼들은 “특별한 일 없으면 4시에 퇴근하래”, “웬일. 조기 퇴근하래”, “날아갈지도 모른다고 오후 3시에 퇴근하래” 등 상황을 전했다. 동시에 조기 퇴근 이야기를 듣지 못한 직장인들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기도 했다. 일부 누리꾼들은 “나도 데리고 퇴근해줘”, “다들 배신이다. 우리는 (조기 퇴근) 하란 말 없었다”, “나 빼고 다 퇴근하냐”, “우리는 회식도 한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10일 오전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전국이 태풍의 집중 영향권에 들어올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이 시간 이후부터는 국가적 비상 상황으로 생각하고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국민께서도 다소 불편함이 있으시더라도 정부의 사전 통제와 대피조치에 적극 협조해 주시고, 태풍이 지나갈 때까지 외출을 자제하는 한편, 안전한 실내에 머물러 주실 것”을 당부했다.

유민지 기자 mj@kukinews.com

Copyright © 쿠키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