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우세력이 비난할 내용... 이 영화의 '놀라운 선택'
[김상목 기자]
▲ 영화 <파더 앤 솔저> 포스터 이미지 |
ⓒ 찬란 |
'식민제국'의 알려지지 않은 역사
'식민제국'이란 개념이 있다. 단순히 강대국이 주변 국가를 정복하는 수준으로 개별 민족(국민)국가 범위를 초월하는 '제국'과는 다소 차이가 있는 개념이다. 역사상 수많은 나라가 국력이 강성할 때 전쟁을 통해 영토를 넓히고 '제국'을 칭했지만 '식민제국'에 포함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특히 근대 이후 유럽의 제국주의 시기와 직결되는 개념이기도 하다.
예를 들자면 이렇다. 영화 < 300 >에서 자유로운 그리스를 침략하는 초강대국 페르시아는 당시 기준으로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로 '세계제국'이라 불리기에 전혀 문제가 없을 만큼 거대한 판도와 수많은 개별 민족, 그리고 전근대 당시로서는 고도화된 통치 및 행정체계를 갖추고 있었다. 3개 대륙(아시아-아프리카-유럽)에 걸친 판도에 단일 국가로서 페르시아와 일대일로 비길 나라는 멀리 떨어져 있는 중국 정도를 제외하면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페르시아는 주류세력의 우위이긴 해도 상대적으로 관대한 통치와 함께 오리엔트 문명 중심성이라는 확고한 지향이 있었다. 이와 유사하게 역사상 가장 거대한 판도를 차지하고 대부분의 아시아와 함께 동유럽 상당부분을 통합한 몽골제국 역시 '세계제국'이지만 식민제국이란 정의에는 부합되지 않는다. 전통적으로 국력이 강해지자 인접 국가를 침략해 정복하던 스케일이 무지막지하게 확대된 형태이기 때문이다.
중국의 경우 전근대 대부분의 기간 동안 동아시아의 '초강대국'으로 군림해 왔지만 한족 중심의 왕조는 조공외교 외에는 특별한 이익을 꾀하지 않는 한 당시 기술과 행정력의 한계를 수용해 팽창을 자제하는 편이었다. 조공외교 또한 제국주의적이라 볼 여지는 있지만 근대 서구열강의 착취 유형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오히려 강대국이 퍼주는 형태에 가까웠다. '중화제국'의 조공과 책봉 위주의 외교정책은 종주국이자 패권자로서 위신과 문화적 우월주의를 내세우는 방식이었고, 북방 유목민족들이 군사적으로 정복하는 경우는 종종 발생했지만 대개 압도적인 국력 탓에 오히려 흡수 통합되는 결과로 귀결되곤 했다. 거란이나 여진(만주)족이 과연 지금 어떤 상황인지만 봐도 파악 가능하다.
로마제국 역시 거대한 식민지와 노예 경제로 유지되던 세계제국이었지만 근대 제국주의의 결정체인 식민제국 정의와는 온전히 맞아떨어지지 않는다. 반면에 규모는 전근대 세계제국에 비해 작을지언정 사회 형태와 확장 정책의 기반이 상이하기에 우리에겐 그다지 '제국' 형태로 인식되지 않지만 식민제국의 사례는 다양하게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영국이나 프랑스, 스페인, 일본제국의 경우 누구나 식민제국으로 인정하겠지만, 네덜란드나 벨기에를 '제국'이라 호칭하는 건 낯설어할 이들이 많을 테다. 하지만 '식민제국'의 전통적인 '제국' 개념과 상이한 기준을 대부분 충족하기에 이들은 제국으로서의 대외적 이미지는 약할지언정 '식민제국'으로 보기에 무리가 없다. (그만큼 알려지진 않았지만 '패악질'이 만만찮았다는 뜻이다)
▲ 영화 <파더 앤 솔저> 스틸 이미지 |
ⓒ 찬란 |
'식민제국'은 과학기술의 발달로 가능해진 인접국 너머로의 확장을 적극적으로 도모했다. 유럽열강이 근세 초입에 강력한 군사력을 갖췄지만 팽창을 가로막는 오스만 제국이라는 강적 때문에 과거 십자군 전쟁 시절처럼 (부가 집중된) 아시아로 진출하지 못하다 반대쪽인 아프리카와 아메리카 대륙으로 팽창한 것이 시작이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대항해시대를 통해 전 세계에 점점이 흩어진 식민지를 얻어 최초의 '식민제국'이 되었고 뒤를 이어 영국과 프랑스 등이 뒤를 이었다. 서구 열강 사이에 벌어진 투쟁으로 식민제국은 부침을 겪으며 새롭게 등장하고 몰락하길 반복했다. 본국에 비해 어마어마하게 큰 식민지의 자원과 인력은 거의 전적으로 식민제국 종주국으로 블랙홀처럼 빨려 들어갔다. 좋은 일은 초대받지 못하지만 나쁜 일은 '우리가 남이가!' 식으로 강제로 동원되는 게 당연시되었다. 물론 식민제국의 존망을 건 전쟁에도 그랬다.
서구 열강 사이에도 근대 이후 주도권을 쥔 강대국과 후발 국가들 사이의 대립은 심각해졌고 식민지 쟁탈전, 특히 '그레이트 게임'이라 불리는 전 지구적 땅따먹기 경쟁 과정에서 일어난 합종연횡 군사동맹은 결국 거대한 파국으로 치닫고 만다. 1·2차 세계대전이다. 양차 세계대전 시기에 유럽 열강들 중 식민제국을 건설했던 국가들은 적극적으로 식민지 인력을 징집해 전쟁수행에 활용했다. 식민제국의 대명사인 프랑스와 영국이 대표적이다.
영국의 경우는 애지중지하던 으뜸 식민지인 인도가 주요 차출 대상이었다. 중국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인구를 가진 나라인 인도의 인력자원을 대영제국은 놓칠 리 없었고 자신들을 억압하는 지배자를 위해 인도 의용군은 1차 대전 당시엔 5만 명, 2차 대전에선 9만 명 가까운 전사자를 낼 만큼 많은 피를 흘려야 했다. 그런 참상 속에서도 용맹성을 인정받아 오늘날까지 '전투민족' 칭호를 듣는 게 인도 식민지의 일부였던 네팔의 구르카족 용병 탄생배경인 셈이다. 프랑스 역시 자신들이 지배하던 서부와 북부 아프리카 등지에서 대규모 징집을 단행해 부족한 군인을 메웠다. 특히 2차 세계대전 당시 본토를 나치독일에 점령당한 후 괴뢰정권인 '비시프랑스'에 맞서 연합국의 일원으로 참전한 '자유프랑스'는 본국이 통째로 적국 지배하에 있던 셈이라 사실상 대부분의 병력이 식민지 출신일 정도로 의존도가 심했다.
그런 사정 덕분에 2차 세계대전 당시 (훗날 대통령이 되는) 드골의 자유프랑스군 주력은 바로 아프리카 식민지 병사들이었다. 라시드 부사렙 감독의 2006년 영화 <영광의 날들> 속에 묘사된 알제리 출신 무슬림 군인들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들은 본토 수복의 주역으로 많은 피를 흘리며 자신들은 생전 처음 와보는 유럽대륙 전쟁에 참전했지만 정작 개선문 승전 행사에는 초대받지 못했다. 당시 식민지 군인들에 대한 명예와 보상은 전후 식민지 독립과정에서 잊혀져 버렸다. <영광의 날들> 영화 속 주인공들의 실제 사례인 참전용사들은 이후 알제리 독립전쟁에서 전쟁 당시 전우들이 독립군과 진압군으로 총구를 마주하는 비극을 맞기도 했다. <파더 앤 솔저>는 이런 식민지 참전용사들의 비극 가운데 1차 대전 후반에 강제 징집된 세네갈 출신 부자가 겪는 전쟁 경험담이다.
1차 대전 참호전의 현장 속에서
아프리카 서쪽 끝단에 위치한 세네갈 내륙 어느 마을. 원주민 '디알로' 가족은 빈한하지만 화목하게 농사를 지으며 살아간다. 하지만 끔찍한 1차 세계대전의 서부전선 참호전은 그야말로 사람 목숨을 진공청소기로 빨아들이 듯했고, 이러다 프랑스 본토의 젊은이들 씨가 마를 지경이 되자 그동안 혹시나 반란을 일으키지 않을까 염려해 징용을 망설이던 아프리카 식민지인을 차출하기에 이른다. 사전 회유나 설득 따위는 없이 마치 '인간사냥'을 하는 식으로 마을 단위로 포위한 채 한 집에 한 명씩 장정을 강제로 징집하던 상황이 재연된다. 디알로 가족 중 징병대상인 아버지와 아들은 함께 달아나지만 그만 아들이 붙들리고 만다. 여기에서 아버지는 기이한 결단을 내린다. 총알받이로 끌려가는 아들을 지키고자 아버지도 자원입대한 것이다.
부자관계라는 게 들통 나면 둘 중 하나가 타 부대로 전출될 것을 두려워한 이들 부자는 관계를 숨긴 채 기초훈련을 받고 지중해를 건너 악몽과도 같은 서부전선 참호에 투입되기에 이른다. 하필 때는 1916년, 1차 대전 중에도 가장 참혹한 전투로 손꼽히는 '베르됭 전투'가 코앞이다. 아버지는 오직 아들을 빼내 탈출할 궁리밖에 없다. 그에게 이 전쟁(1차 세계대전)은 백인들의 전쟁일 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들은 불어를 배운 덕에 백인 중대장의 주목을 받게 된다. 아들은 중대장이 지목한 덕분에 일반 사병이 아니라 부사관으로 대우를 받기에 이른다. 졸지에 아버지보다 아들이 상급자가 된 것이다. 웃지 못 할 상상이 현실이 되고 말았다.
게다가 아직 전쟁의 참혹함을 경험하지 못한 아들은 프랑스 정부가 참전에 대한 보상으로 제시하는 처우에도 솔깃해진다. 조국을 지키기 위한 전쟁에서 용맹하게 활약하고 살아남는다면 본국 시민과 동일하게 프랑스 국민으로서의 자격과 참전군인 연금 등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백인 장교의 권유는 식민지 청년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대우에 대한 기대감 덕분에 어느 순간부터 아들은 (아버지가 온갖 궁리를 해가며 탈영 계획을 짜는데도) 탈출보다는 출세를 쫓기에 이른다. 게다가 장성인 아버지 뒷배와 함께 군인 집안 출신이라 스트레스도 큰 중대장은 자신을 신뢰하는 것은 물론, 각자의 아버지에 대한 존경과 함께 부담감을 공유하기에 배신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아버지는 어떻게든 아들을 빼내 탈출하고자 갖은 수단을 알아본다. 하지만 뾰족한 수는 없다. 유럽은 낯선 땅이고 전시에 탈영은 즉결처분 감이다. 여기저기 수소문해 보지만 상황은 불확실하고 주변에 딱히 신뢰할 이도 보이지 않는다. 동료라 할 서아프리카 출신 군인들도 서로 부족이 다르고 자기 앞가림도 힘든지라 도움보다는 등쳐먹을 궁리에 바쁘다. 이런 상황에서 아들은 점점 군대 내에서 자신이 지닌 우월적 지위에 맛을 들여간다. 백인 장교들의 신뢰와 고향에서라면 애 취급을 받던 처지를 벗어나 아버지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다는 신분상승 또한 과히 나쁘지 않다. 그래서 부자는 점점 동상이몽을 하며 갈등의 골은 깊어만 간다. 그런 가운데 운명의 대전투가 다가온다.
▲ 영화 <파더 앤 솔저> 스틸 이미지 |
ⓒ 찬란 |
베르됭 전투는 1916년 2월 21일부터 12월 20일까지 무려 10개월 동안 이어진다. 프랑스는 자국 서부 영토 깊숙이 들어온 침략자를 내쫓고자 손실을 감수하고 전투에 임했지만 독일군은 그런 프랑스의 영토 수복 의지를 예측해 의도적으로 프랑스의 전쟁수행능력을 파괴하고 천문학적 손실을 강요하고자 일종의 '알 박기'를 해둔 상태였다. 하지만 당소 예상과는 달리 전쟁이 길어지자 조바심이 난 독일군은 수도 파리를 노리고 결정적 일격을 가하고자 한다. 그 결과 둘 다 물러설 수 없는 결전을 치르게 된 것이다.
"인류는 미쳤다.
지옥도 이보다 더 참혹할 수는 없다.
미치지 않고서야 이런 짓을 할 수 없다.
이 학살극을 보라!
이 공포와 주검들을 보라!
내가 받은 인상을 말로는 표현할 수 없다.
인류는 미쳤다!"
프랑스 육군 알프레드 주베르 보병 중위가 사망하기 하루 전에 적은 일기
(1916년 5월 23일)
- <참호에서 보낸 1460일 - 사상 최악의 전쟁, 제1차 세계대전의 실상> 중에서
결과적으로 둘 중 한 명은 고향으로 돌아가고 한 명은 끝내 돌아갈 수 없는 몸이 된다. 게다가 영영 고향을 보지 못하게 된 한 명은 무명용사 유해로 먼 훗날 발굴되어 프랑스 수도 파리 개선문 바로 옆에 자리 잡은 무명용사 전몰자 추모비의 주인공이 된다. 강제로 징병된 식민지인이 식민제국 종주국의 조국수호영령으로 (생전 전혀 원치 않았을) 숭모의 대상이 되고 마는 기구한 운명이다. 식민지인이라도 차별 없이 추모 대상이 된다 해서 과연 유해의 주인공은 만족했을까? 일본제국군에 강제 징용된 식민지 조선 청년이 야스쿠니 신사에 합장된다 해서 기뻐할 리 없는 것처럼 답은 빤하다.
영화 내내 펼쳐지는 두 식민지인, 아버지 vs 아들의 의견대립은 단지 부자간의 갈등을 표현하려는 장치를 초과하는 기제로 활용된다. 가족 내에서만 놓고 봐도 가부장의 권위와 책임을 다하려는 아버지 대 자신을 인정받고 싶어 하는 아들의 신구 세대 간 대립이 두드러진다. 어느 시대나 어떤 사회나 기성세대와 청년세대의 갈등은 자연스러운 현상이기에 쉽게 전달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잔인한 역사의 아이러니 속에 떨어진 가족 드라마라는 영화의 얼개 덕분에 더 호소력이 짙은 지점이기도 하다.
하지만 영화는 보다 복잡한 단면들을 포착하고 풀어낸다. 이들 부자는 세네갈 원주민이지만 이 세네갈이라는 땅은 서구 열강이 식민지 쟁탈전을 벌이면서 자기들끼리 선과 면으로 분단해놓은 경계에 불과하다. (세계지리 시간에 아프리카 국경은 왜 이렇게 자로 댄 것처럼 쭉쭉 구분될까 의문을 품었던 데 대한 해답이기도 하다) 역사적 배경과 사회적 통합성 따위는 무시한 채로 제국들의 편의에 의해 그어진 국경 탓에 같은 세네갈 출신이라도 각기 다른 부족에다 언어도 다르다. 같은 세네갈 징집군인들로 구성된 부대 안에서도 말이 통하지 않는다. 아버지는 동포들에게 일말의 기대를 해보지만 연줄이 있고 사정에 밝은 그 동포들은 오직 돈만을 요구하며 언제든 등칠 것처럼 믿음이 가지 않는다. 그래서 오늘날 독립 후에도 통용되는 것처럼 제국의 공용어인 프랑스어를 익혀야 차라리 의사소통이 원활한 지경이다.
아들이 끌리는 보다 나은 대접, 프랑스 본토인과 동등한 처우에 대한 유혹은 한층 더 복잡한 양상으로 관객에게 비춰질 만하다. 식민제국이라 통칭하지만 영국과 프랑스, 스페인, 네덜란드나 벨기에 같은 군소국가의 통치형태는 꽤 달랐다. 영국의 경우 종주국이 엄격한 신분사회이다 보니 식민지의 경우에도 전통의 지배계급들을 인정하고 봉건적 사회체제를 유지하는 방향으로 통치정책을 펼치곤 했다. 스페인의 경우 소수 정복자(콩키스타도르)의 무법적인 행태를 억제하고 제국의 신민으로 (아주 조금) 공정한 대우를 하려 하자 식민지의 백인들이 반란을 일으켜 독립해버리는 결말을 낳았다. 군소 식민제국은 본국의 역량 한계로 더 잔혹하거나 투박한 모델을 드러내곤 했다. 당대 식민제국들 사이에서도 논란이 되었던 벨기에의 콩고 지배가 그 대표적인 사례일 테다.
반면에 프랑스 식민제국은 이질적인 요소들의 결합체였다. 1789년 프랑스 혁명 이후 유럽 내에서는 자유와 평등의 상징과도 같던 나라가 가장 거대한 식민지를 보유하고 수탈을 일삼았다는 사실 자체가 모순적이지 않은가. 영국과 쌍벽을 이루던 거대 식민제국 프랑스는 그래서 부의 수탈 외엔 굳이 기존 지배구조에 간섭을 덜한 편인 영국에 비해 적극적으로 '동화정책'을 펼쳤다. 그렇다고 본국과 동등한 대접을 해준 건 아니다. 아직 '미개'하기에, '문명화'가 되지 못했기에 '자애로운' 프랑스가 관리하며 '근대화'시켜준다는 게 프랑스 제국주의의 입장이었다. 그래서 적극적으로 사회간접자본도 설치하고 소수 식민지인에게 교육기회도 제공했다. 드넓은 식민지를 관리하기 위해 현지인의 하급 행정직이나 교사, 경찰, 군인 등용도 상대적으로 넓게 행해졌다. 심지어 개별 식민지 총독 중에도 흑인 원주민이 있을 정도였다. 영국이라면 상상하지 못할 일이다.
하지만 그런 자국 위주의 '관대한' 처사는 식민지인에겐 환영받지 못했다. 결국 제국주의의 자기중심적 시각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적극적인 동화정책에 동조하거나 호응하는 이들이 식민지 사회에서 존재했고, 프랑스 식민통치 또한 그런 현지인들을 우대하는 조치를 취했다. 아들이 보이는 변화 역시 그런 제국주의 정책에 대한 식민지인 일각의 자연스러운 반응을 압축한 것이라 봐도 무방할 테다. 반면에 아버지는 보다 원론적인 입장에서 침략자에 불과한 제국주의에 대한 생리적 거부감과 불신을 견지한다. 전쟁을 배경으로 풀어내는 가족 드라마의 얼개를 한 <파더 앤 솔저>는 일제강점기를 체험한 한국인들에겐 복잡다단한 감정을 추가적으로 제공할 수밖에 없는 영화다.
▲ 영화 <파더 앤 솔저> 스틸 이미지 |
ⓒ 찬란 |
프랑스 식민제국의 그런 독특한 특성 때문인지 그 제국의 해체과정 또한 영국과는 꽤 달랐다. 영국은 식민지를 유지하려던 노력을 어느 순간 포기하고 영연방 유지로 목표를 축소한다. 패권을 지키기 위해 사생결단으로 치른 2차 세계대전은 결국 대영제국 해체를 막을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프랑스는 '반쪽 승전국'이라는 멸칭을 들어가면서도 유독 집요하게 식민지 유지에 집착하는 행태를 보였다. '식민제국' 특유의 사고, 근대 합리성과 문명화의 (이기적인) 선의가 제국주의와 결합되었기 때문이다. 식민주의자들은 자신들이 진정 시간이 지나면 식민지를 제대로 개화시킬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자신들의 차별과 수탈을 합리화하면서 말이다.
그 결과 프랑스는 2차 대전 이후 장기간 식민지 독립전쟁에 휘말린다. 계산기 돌려보고 화끈하게 포기하고만 영국과는 대조되는 방향이다. 인도차이나에서, 알제리에서, 세계 곳곳에서 프랑스는 '제국'을 유지하려 필사적으로 독립을 꾀하는 반란에 맞섰지만 결국 역사가 증명하듯 모두 패배해 망신살이 뻗친다. 전쟁영웅 드골이 오히려 현실을 직시하고 쿠데타를 감수하면서까지 종지부를 찍었기에 이 무저갱 같은 식민지 전쟁은 끝낼 수 있었다. 하지만 끝내 자신들의 식민통치를 공식적으로 사과하길 극도로 꺼리는 영국과 달리 정부의 공식입장은 아닐지언정 프랑스 문화예술계는 유독 잘못된 식민지 전쟁 관련 다양한 창작을 선보이는 중이다. 자국 내에서 꾸준히 과거 식민지 문제나 독립전쟁 과정을 다룬 영화들이 다양한 관점에서 등장하고, 그때마다 사회적으로 격렬한 논쟁을 좌우 구도로 벌이는 건 역시 '혁명의 나라' 프랑스다운 면모라 하겠다.
<파더 앤 솔저>는 거의 대부분 프랑스 영화계의 인력과 자원으로 완성되었지만 식민지인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감독 마티유 바드피에는 근래 국내에서도 가장 인기를 끈 프랑스 영화 중 하나인 <언터처블: 1%의 우정> 촬영감독 출신이며 극중 아버지 '바카리' 역을 맡은 배우 오마르 사이는 바로 그 전작의 주인공이기도 했다. 게다가 영화음악은 아카데미상 최우수음악상의 단골손님인 '거장' 알렉상드르 데스플라의 솜씨다. 영화의 핵심 배경 또한 프랑스인들에겐 잊지 못할 상흔을 남긴 1차 대전 참호전의 현장이다. 전쟁영화로서 고증이나 재현도가 상당한 편이다. 그래서 인물간의 대립이나 대화 뿐 아니라 스펙터클 이미지와 다채로운 미장센 또한 시선을 잡아끈다. 영화 스케일이 제법 만만찮다.
하지만 무엇보다 <파더 앤 솔저>는 예상치 못했던 시각의 변주가 돋보이는 영화다. 한일 관계로 치환하자면 일본 내에서 저예산 독립영화가 아니라 '천만 영화'를 기대할 규모의 작업에 오키나와 전투에 참전한 식민지 조선인을 주인공으로 세우고 강제징용 과정을 가감 없이 묘사하는 것에 진배없다. 프랑스는 물론 유럽 전역에서 기승을 부리는 극우세력들이라면 당연히 거품을 물고 비난할 내용인 셈이다.
<작품정보> |
파더 앤 솔저 Father and Soldier, Tirailleurs 2022|프랑스, 세네갈|전쟁 역사 대작 2023.08.09. 개봉 |100분|12세 관람가 감독 마티유 바드피에 주연 알라산 디옹(티에르노 디알로 역), 오마 사이(바카리 디알로 역) 출연 조나스 블로켓, 바마르 칸, 오마르 세 음악 알렉상드르 데스플라 수입/배급 찬란 2023 24회 전주국제영화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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